-34년 전 오늘

고마워 엄마

by 꿈꾸는기리니

2020년 6월 나의 서른네 번째 생일이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난 태어날 당시 3.8kg의 우량아였다. 꼬박 18시간 생 진통을 겪고 난산이었지만 수술이 아닌 자연분만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양수가 터져서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뱃속에서 도통 나올 생각이 없었던 나 때문에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엄마의 고통스러운 발길질에 곁에 서 있던 증조할머니가 뒤로 넘어지셨다는 일화는 친척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어려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우리 엄마 고생 많았네.’라는 생각보단 ‘시트콤 같은 일화네.’라며 웃어 넘기기 일 수였다.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엄마는 제대로 된 몸조리도 하지 못했다. 출산한 지 20일도 안 지난 몸으로 일을 해야 했다. 엄마가 이따금 몸조리를 못해 몸이 아프다고 푸념할 때마다 지겨운 이야기가 또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잊을 만할 때 즈음 반복하는 엄마의 뻔한 레퍼토리라 생각했다. 그런 철없던 날들이 있었다. 엄마니깐 당연한 희생, 당연한 삶인 줄 알았다. 그래서 엄마의 한 섞인 푸념들을 내심 지겨워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엄마의 삶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자식을 낳기 전에는 엄마의 희생이 당연한 거라 여겼다.




난 2020년 1월 딸아이를 낳았다. 집에서 7시간의 진통을 겪고 병원에 가서 2시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초산임에도 진행이 나름 빨리 된 케이스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출산을 하려면 배로 힘을 줘 아이가 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나는 배로 제대로 된 힘을 주지 못했다. 아니 배만 빼고 다른 모든 곳에 힘을 주었다. 팔, 다리, 얼굴, 목.... 엉뚱한 곳에만 자꾸 힘이 들어갔다. 의료진은 이렇게 힘을 주지 못하면 아이가 힘들다며 엄포를 놓았다. 나도 아이를 위해 또 나를 위해 잘하고 싶었다. 젖 먹던 힘까지 힘을 줬지만 그럴수록 호흡만 가빠지고 제대로 된 힘은 주지 못했다. 급기야 호흡을 잃어버린 나는 산소호흡기를 껴야 했다. 넋이 나가 힘을 더 줄 수 없었다.

하늘이 샛노래지고 나비 서너 마리가 머리 위에서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내 안에 살고 있던 공룡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굉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병원에서의 괴로웠던 두 시간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의료진도 상황을 빨리 끝내야 되겠다 판단했는지... 내 배를 주먹으로 힘껏 눌러댔다. 난 내 힘이 아닌 타인의 물리력으로 아이를 낳은 셈이었다. 아이의 출산 신고를 의료진에게 전해 듣고서 마침내 이 괴로움이 끝이 났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몸무게는 3.04kg. 절대로 큰 아기가 아니었음에도 너무나 힘이 들었다. 출산 후에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온몸은 갈기갈기 찢긴 마냥 힘이 없었고, 정신은 혼미해져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의 기쁨과 감격은 나중 문제였다.


가족분만실에 한동안 힘없이 누워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드디어 아이를 만났다는 감격보다 엄마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엄마는 이 힘든걸 18시간이나 겪었다니... 몸소 겪어보고서야 깨달았다. 나도 엄마가 되고서야 비로소 철이 들었다. 그간 엄마의 수고를 너무나도 가볍게 여겼던 것만 같아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 시간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고 있을 엄마가 무척 보고 싶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20일 즈음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내려왔다. 그간 아이를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친정부모님께 아이를 보여드리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엄마가 해 준 밥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출산을 하고 남편이 정성스레 요리를 해 주었지만 엄마가 손수 지어준 밥이 그리웠다. 엄마가 해 준 음식들을 먹으면서 몸조리를 하면 몸이 금방이라도 회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에 내려와 지낸 지 2주가량이 흘러 내 생일을 딸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맞이했다. 아침부터 엄마는 성치 않는 몸으로 미역국과 잡채 등등 분주하게 딸 생일상을 차렸다.


“엄마, 아빠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일상을 앞에 두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먼저 전했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축하받을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엄마의 정성스러운 생일상 마저도.

'정작 축하받아야 할 사람은 엄마인데... 34년 전 오늘, 고생 많았던 엄마. 고맙고 미안해...'


마음속으로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삼켜냈다.

미역 국물이 맛있고 따뜻해 연신 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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