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머리가 너무 지저분해. 머리도 너무 많이 빠지네. 엄마가 다듬어줄게.”
“엄마가 내 머릴 잘라준다고? 싫어. 나중에 미용실 가서 할게.”
“엄마 잘 잘라. 예전에 아빠 머리도 엄마가 다듬어줬잖아. J 중학생 때도 내가 다 잘라줬어.”
“그게 언제 이야긴데... 흠 미용실 가서 자르고 싶은데...”
“글쎄. 엄마한테 맡겨보라니깐.”
출산을 하고 부쩍 머릿결이 푸석해졌다. 원래 머리숱이 많았지만, 임신 동안 휴지기였던 머리카락들은 평소 머리숱보다 배는 더 많아졌다. 출산을 하고, 휴지기를 마친 머리카락들은 생을 다했다는 듯 하루에도 수 십 가닥은 우습게 떨어졌다. 내가 걸어가는 곳마다 흔적을 남겼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어디가 장판이고 어디가 머리카락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 꼴을 보고 엄마가 먼저 머리를 다듬어주겠다고 나섰다. 내가 영 못 믿어하자 엄만 20년도 더 된 사촌 언니 J의 중학생 때, 아빠 머리 다듬어 준 소싯적을 들먹였다. 싫다고 몇 번 튕겼지만 엄마의 설득에 못 이겨 어느 순간 목덜미에 금빛 보자기를 두르고 있었다.
푸우 푸우 분무기의 가차 없는 공격에 난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언제 구입해뒀는지, 다이소 표 집게핀과 가위가 든 가방을 엄마는 펼쳐 보였다. 돋보기안경을 코까지 걸쳐 쓰고, 비장한 각오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순간 안심이 되었다. 정말 전문샵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순간 들 뻔했다. 이내 쑥덕쑥덕 엄마의 현란한 가위질 소리가 들려왔다. 자칭 경력 20년 미용사 앞에서 머리카락들은 가볍게 흩날리며 금빛 보자기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엄마, 조금만 잘라. 조금만. 많이 자르면 절대 안 돼. 기를 거란 말이야.”
“알겠어. 걱정도 많다. 어련히 알아서 해 줄 텐데.”
“그리고 숱 많이 치지 마. 전에 미용실에서 숱은 많이 쳐놨어.”
“알겠어. 거 참”
엄마의 전문가 저리 가라 가위질 소리에도 안심이 안 돼, 난 계속 당부의 말을 해댔다.
사실 엄마가 내 머리 미용사를 자처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며칠 전 꺼내 본 앨범 속엔 양갈래 파마머리를 한 꼬마가 있었다.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사진을 보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때 나 몇 살 때야?"
"네 살이었을 거야. 아마"
"파마도 했었네."
"그거 엄마가 해준 거잖아."
"엄마가 해줬다고?"
내가 네 살 무렵, 엄마는 집에서 파마해줬다. 파마약과 로뜨를 직접 사서. 엄만 손수 딸 머리에 파마약을 바르고, 로뜨로 딸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말았다. 그리고 적당히 빠글 하게 나온 컬에 매우 만족해했다.
“네가 그때 얼마나 예뻤는데... 어린것이 머리를 말고 그 시간을 잘도 참더라.”
“내가 그랬어?”
“응. 네가 어렸을 때 그렇게 참을성이 많았어.”
그러고 보면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내 전담 미용사였다. 꼭 파마나 머리를 다듬어주는 것 외에도 엄마는 내 머리를 예쁘게 땋아주고, 묶어주었다. 어릴 땐 그게 당연했다. 학교 가기 전 머리를 들이밀며 엄마에게 머리를 묶어달라고 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땐 엄마의 솜씨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엄마는 나의 전용 미용사였으니까.
언제부터 스스로 머리를 잘 묶게 되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자라면서 전담 미용사를 찾는 일은 줄어갔다. 아마도 똑 단발을 해야 했던 중학생이 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 또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외모 꾸미는 일에 관심이 커져가면서 엄마에게 머리 맡기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다 됐다. 마음에 들어? 네가 거울 봐봐."
"응. 괜찮네."
"딸, 다음에는 또 언제 머리 해줄까"
"벌써 뭘 다음을 이야기해."
오랜만에 만난 고객이 반가웠을까. 경단녀(경력단절 여성)를 벗어난 기쁨을 맛보아서였을까. 벌써 엄마는 다음 예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난 엄마가 쥐어주는 손거울로 머리를 요리조리 살폈다. 머리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8점 정도는 됐다. 오랜만에 느껴본 그녀의 손길이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다 무려 공짜였다.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나 또한 다음 예약을 언제로 할지 날짜를 헤아려보고 있었다. 앞으로도 공짜로 금빛 보자기를 목에 두르는 그 일을 기꺼이 몇 번이고 할 예정이다. 전담 미용사가 건재하는 한 나는 계속 머리를 맡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