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전 아기를 낳았다. 친정 부모님은 출산 직후 녹초가 된 딸도 손녀도 바로 만나지 못했다. 재작년 큰 병을 앓고 여전히 회복하고 있는 엄마 그리고 막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서였다. 아이가 태어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손녀를 보여 드리기 위해 친정에 왔다. 원래는 잠깐 지내다가 다시 올라가려 했지만... 남편과 고심 끝에 주말 가족이 되길 선택하면서 친정에 잠시 눌러살게 됐다. (출산 후 체력이 많이 떨어진 내가 독박 육아를 면하고자 한 선택이었다) 친정에 내려와서 지낸 지 어느덧 100일이 흘렀다.
아이는 이제 생후 7개월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수유를 하거나 안아서 재워야만 잠이 든다. 개월 수만큼 아이의 몸무게는 날로 늘어 꽤 무거워졌다. 시린 손목과 뻐근한 무릎으로 아이의 몸무게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계속해서 이리 재우는 것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수면 교육을 해보자 마음먹었다.
사실 수면교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초보 부모에 갓 입성한 남편과 함께 책, 블로그, 유튜브를 통해 육아를 공부할 때였다. 아이 생후 40-50일 때 ‘수면교육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라는 포스팅을 본 게 그 시작이었다. 당시 우리는 수면교육을 한답시고 아이를 30분 이상을 울렸다. 으아앙~ 지칠 줄 모르고 목이 쉬어라 울던 아이가 행여 잘못될까 지레 겁을 먹고 수면교육을 시작한 지 며칠 못 가 포기했다. 그 뒤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을 아기띠로 아이를 업고 재웠다. 밤마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일은 우리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친정에 와서 수면교육을 다시 시작한 첫날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 한 시간 만에, 둘째 날은 삼십 분 만에 잠이 들었다. 아이가 수월하게 따라와 주자 좋은 예감이 들었다. 왠지 이번엔 쉽게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교육을 시작한 지 셋째 날 새벽 4시에 아이는 울면서 깨더니 말똥말똥한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엄마 나 잠 깼어요, 놀고 싶어요.’
그때부터 아이와 나의 기나긴 씨름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놀고 싶어 하고 난 아이를 재우려는 팽팽한 줄다리기. 아침 8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은 이 기나긴 경기에 저질 체력인 난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했다. 결국 아침에 아이를 부모님에게 맡기고, 난 지쳐 잠이 들었다.
“교육해야 하니? 때가 되면 다 알아서 자는데, 무슨 교육이야.”
“난 더 안아서 못 재우겠어. 몸이 만신창이야.”
“너 어릴 때도 그랬어. 자연스러운 과정인 거야. 봐! 너도 크니깐 잘 자잖아.”
며칠 동안 잠자리에서 아이를 울리고 씨름하던 내 모습이 못마땅했던 엄마는 참았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 난 엄마 없는 밤이 무서웠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할머니 집에서 오빠와 함께 지냈던 적이 있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밤이 되어 잠이 들 때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울었다. 솨 아아아~ 매섭게 불어오던 겨울바람에 반투명 유리창은 덜컹거리고, 불 꺼진 깜깜한 방, 눈을 감으면 어디선가 도깨비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끼익~ 하고 바람에 이는 문소리에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낮이면 오빠랑 눈싸움도 하고, 붕어빵도 사 먹고, 동네 천에서 놀면서 즐겁게 지냈다. 그 시간은 엄마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하늘이 어둑해지고, 바람이 매섭게 추워지는 밤이 되면 내 눈에서는 뚝뚝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였다. 열 밤을 자고 데리러 오겠다는 부모님은 열 밤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엄마 없는 밤은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았다. 낮이면 재밌게 놀던 오빠의 존재도 할머니의 자장가, 따스한 손길도 쓸쓸하고 무서운 밤의 여백을 채우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눈물로 지새웠던 밤은 끝이 났다.
그러던 내가 엄마 없는 밤이 괜찮아진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졸업여행을 가면서였다. 모두 엄마와 떨어진 채로 함께 놀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가족들과 떨어진 동질감을 느낀 친구들과 같이 잔 그날의 기억이 좋았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여서 무섭지 않았다. 이제 나도 다 큰 어른 같았다.
‘엄마랑 떨어져 있어도 괜찮은 거구나.’
그때 이후로 신기하게도 엄마 없는 밤이 무섭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여행을 시작으로, 친척 집에서 잘 때도, 수련회를 가서도... 엄마 없는 밤의 좋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괜찮아졌다. 더 무섭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도 내가 없는 이 기나긴 밤이 무서웠는지 모른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겨우 7개월에 지나지 않은 아인데. 얼른 이 밤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무언으로 다그쳤는지도 모른다.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 없는 밤을 무서워했으면서... 아이에겐 관대하지 못했다.
‘너도 이 밤이 무서운 거구나. 너에게도 이 밤이 익숙해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이는 내 품에서 온기를 느끼며, 엄마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며 잠자려 했던 것은 아닐까. 예전의 나처럼 엄마 없는 밤이 무서워서.
난 결국 수면 교육을 중단했다. 아이에게 교육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서다.
엄마 없는 밤의 여백들이 좋은 추억으로 하나씩 쌓여 갈 때쯤 아이는 자연스럽게 괜찮아질 것이다. 어릴 적 내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