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가 되었다

by 꿈꾸는기리니

엄마를 간병하기 위해 아빠는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아빠 혼자 엄마를 간병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었다. 남편과 의논 끝에 나 또한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왔다.


‘000 환자 보호자’


보호자 출입증 카드를 발급받았다. 병원에서 나는 그렇게 보호자가 되었다. 보호자란 누군가를 보호해야 할 의무,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간병을 잘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전에 난 먼저 보호자로 불러졌다.


“오늘 보호자님은 암 환자 식단 및 주의사항 교육이 있으세요.”


병원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엄마는 암 환자라는 호칭을 부여받고, 장기입원 환자로 분류되었다. 살면서 난 누구의 보호자가 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보호자라는 호칭은 내게 더욱더 낯설게 느껴졌다.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해야 할 일들은 꽤 많았다. 치료할 동안 주의할 사항들, 치료 중 먹어도 되는 음식과 금지된 음식들에 관한 교육이 있었다. 그 외에 입원 병동과 호실로 이동하는 일, 각종의 시술과 검사들, 병원에서 앞으로 쓰게 될 물품들을 준비하는 일 등등 파도처럼 밀려왔다.


병원 생활에서 필요한 물품은 제법 많았다. 블로그를 통해 혈액암 환자에게 필요한 병원 물품들을 찾아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진짜 엄마가 암 환자라고 다시 한번 각인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최선을 다하자는 결의를 다지곤 했다. 그런데도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었다. 보호자가 된 것은 한순간이었지만 그 역할은 단순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어떤 날은 희망적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어떤 날은 두려움과 슬픔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환자인 엄마 앞에선 슬퍼도 크게 울 수 없었고, 이따금 약해지는 마음을 붙잡아야만 했다. 보호자이기에. 내가 무너지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더 힘들어할 사람이 엄마라는 걸 알기에. 강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가끔 무너지는 마음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는 내가 엄마 지켜줄게. 보호자가 돼줄게. 그동안 엄마가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가 내 보호자가 돼 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돼주기로. 무뚝뚝한 딸에 대한 외사랑을 30년 넘게 해왔던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보답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잔인하게도 이번 일이 나에겐 기회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늘 그냥 해왔던 대로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사랑만 받으며 무뚝뚝한 딸로 평생 살아갔을 거다. 난 무엇보다 내가 그리고 내 인생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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