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전화

엄마의 병명

by 꿈꾸는기리니

'지~지지~'


퇴근길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막내 이모로부터 온 전화였다.


“네 이모~”

“전화받을 수 있어? 일 끝났니?”

“네 저 퇴근 중이에요. 괜찮아요.”

“놀라지 말고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네 엄마... 엄마가 백혈병이래...”


잔뜩 코 먹은 소리, 가늘게 떨리는 이모의 음성이 내 심장 한가운데 찌릿 파고들었다.

순간 푸쉬쉬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고, 뒤통수를 누군가 세게 후려친듯했다. 누군가 ‘이건 꿈이야’라고 말하며 난 이 악몽에서 깨어나길 바랐다.




내가 대학생 때, 엄마가 쓰러진 적이 있다. 그때부터 엄마에겐 지병이 있었다.

엄만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걸음을 뗄 때마다 땅이 파도치는 것 같다 했다. 몸이 많이 쇠약해졌을 땐 평행감각을 잃고 휘청대는 몸 때문에 지팡이 없이는 잘 걷지 못했다. 엄만 혼자 걷는 걸 두려워했다. 그때 엄마의 병명은 ‘메니에르’. 귓속 평행기관에 문제가 생겨 어지러움, 난청을 호소하는 병이었다.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했지만 6-7년 전부터 엄마의 어지러움에 대한 호소는 유독 심해졌다. 동네 병원을 가도, 3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큰 차도가 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자 엄마는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나의 지인으로부터 어지럼증 치료로 유명한 이비인후과를 소개를 받았다. 우린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병원을 가보기로 했다.


그 병원에서 또한 진단 내린 병명은 ‘메니에르’였다. 약을 먹고 셀프 운동법 밖에 딱히 치료법은 없었다. 더 악화할 때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료진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 했다. 한 달분의 약을 처방해줬다. 우리 가족은 드디어 지긋지긋한 어지럼증에서 탈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병을 고쳐보려고 약을 열심히 먹었지만, 엄마에겐 별 효력이 없었다.


짜게 먹으면 더 악화하는 병이었다. 엄마는 어지러울 때마다 겁이 나 습관처럼 물에 맨밥을 말아먹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엄마의 체력은 더 떨어져만 갔다. 혼자 거동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엄마는 삶에서 자신감을 잃어갔다. 당시 난 서울에 있었고, 아빠는 일해야 했기에 낮에 엄마를 돌볼 사람은 없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무서웠던 엄마는 나에게 잠시만 당신 곁에 내려와 같이 지내 달라고 했다. 난 서울에서의 생활을 잠시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 때부터 엄마와 함께 병원 쇼핑을 시작했다. 엄마는 주기적으로 동네 단골 병원들을 돌아다니며 영양 링거를 맞았다. 큰 차도는 없었다. 하지만 체력이 바닥날 대로 바닥난 엄마에게 영양주사만이 유일한 대안이자 위로였다. 나 또한 엄마 곁에서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마음에 안도가 있었다. 그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엄마가 좀 더 건강했으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서울에 두고 온 남자 친구도, 삶도, 내 꿈도 모두 중단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1년 남짓 고향에 머물면서 난 결혼 준비를 했다. 그리고 결혼하고 서울에 살게 되어 엄마 곁을 다시 떠나게 되었다. 서울에 와서 신혼 생활을 한창 하는 때였다. 여전히 엄마는 어지러움을 호소했지만, 난 늘 엄마에게 있던 지병이기에 그러려니 했다.




“딸, 엄마가 3주 전에 배탈이 났는데... 여전히 아파.”

“약 먹었어? 병원은? 병원 가야지.”

“병원을 가도 똑같아.”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수박을 먹고 배탈이 났는데, 한 달이 다 되도록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 걱정했지만 심각하지 않게 여겼다. 나에게 엄마는 늘 아픈 사람이었기에. 몸이 약한 엄마에게 당연하게 찾아오는 그렇고 그런 병인 걸로만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미리 예방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엄마의 지병이 원인이 되었던 걸까. 어지럼증을 빨리 치료했더라면 이런 큰 병이 오지 않았을까.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병을 고쳤어야 했는데...'


이모와의 통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 거짓말 같은 일들이 벌어진 시작점을 찾으려 의미 없는 질문만 스스로 토해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 눈물이 났다. 엄마가 그동안 아프다고 수없이 토로해왔는데...

그냥 그렇고 그런 일로만 취급한 것 같아서.

엄마의 아픔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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