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엄마가 될게
아이는 생후 130일 즈음, 뒤집기를 시도했다. 똑바로 보는 세상이 궁금했나보다. 하루에 수백 번은 넘게 뒤집기를 해댔다. 그간 누워만 있었던 시간들이 답답했다는 듯이. 이제 아이는 도무지 누워있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자면서도 뒤집기를 했다. 잠들었을 때 뒤집으면 행여나 위험한 상황이 초래할까 베개로 뒤집기 방지 벽을 만들어야 했다.
그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뒤집기가 시시해졌는지 아이는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꿈꿨다.
바로 '엉덩이 높이 들어 자세'
본격적인 배밀이를 하기 전 준비자세였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엉덩이는 하늘에 닿아버리겠다는 듯이 쳐든 자세. 그런 자세로 고꾸라지기를 여러 번. 그래도 아이는 지치지 않았다. 아이의 의지는 대단했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으~잉~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대단했다. 그런 자세를 열심히도 했다.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은 그런 자세로 있었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났다. 아이는 흡사 개구리 자세처럼 뒷다리를 오므리고,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면서 폴짝 뛸 준비를 했다. 그렇게 수백 번 아니 수 천 번의 연습 끝에 아이는 생후 185일 즈음 배밀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0일째 즈음이 되자 배밀이와 네 발로 기는 것 모두 할 수 있게 되었다.
생후 240일 즈음, 아이의 도전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가구를 붙잡고 서기 시작한 것이다. 기는 것을 완벽히 연마한 후 이제는 붙들고 일어서는 연습을 매일 했다. 아이는 하루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법이 없었다. 실패했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의 사전엔 '이제 이만하면 됐다.'라는 말은 없는 것 같았다. 매일 부지런히 움직이고, 도약하는 아이를 보니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 어린아이도 좌절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시도하는데... 매일 투덜대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 갔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호기심으로 아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들이 보이면 손을 뻗어 잡고 싶어 했다. 그다음은 입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구한다. 새로움을 대하는 아이의 손길엔 거침이 없다. 두려움도 없다.
'올해 난 무엇을 이뤘지. 무슨 일들을 했지?'
며칠 전 책상 앞에 앉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매 연말마다 기대를 가지고 사는 새 다이어리 위로 빼곡히 적히는 나의 바람들, 버킷리스트, to do 리스트들... 하지만 정작 이뤄지는 것들은 소수였다. 지켜지지 못한 계획과 이뤄지지 않은 버킷리스트들은 종이 위로 나뒹굴었다.
'다이어리는 왜 샀지. 어차피 지켜지지 못할 약속들만 무성할 거면서.'
'내가 그럼 그렇지. 올해도 똑같네.'
포부에 차서 썼던 꿈들은 흰종이 위의 무색함이 되어있었다. 그 무색함이 이내 부끄러움이 되어 내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용기 대신 좌절하고 포기했었다. 나에 대한 실망이 쌓이고 쌓여 단단한 딱지가 되었다. 무감각한 내가 되었다. 그리고 무기력해졌다.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 게 어쩌면 시간낭비 덜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난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니깐.
난 끝까지 해내지 못할 테니깐.
결국엔 실패해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고 말 테니깐.
애초에 기대할 것들을 만들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경험치가 쌓일수록... 호기심은 사라지고 도전할 수 없는 겁쟁이가 되어갔다. 그리고 나의 삶을 제한하게 됐다.
올해도 어느덧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이어리를 훑어보았다. 내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힌 to do 리스트, 버킷리스트들이 보였다. 필라테스 강의 듣기, 켈리그라피 배우기, 경제 공부해보기, 매일 글쓰기, 영어공부, 엄마와의 여행 등등... 그러나 역시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변한 것이 있다면 올 해는 좌절하지 않았다.
매일이 도전이었던 아이가 떠올랐다. 고꾸라지고 엎어져도 아이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좌절하거나 낙망하는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는 하루도 그저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매일이 도전인 아이처럼 나 또한 도전하는 엄마로 살고 싶어 졌다. 매일 도약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리고 훗날 아이가 자라서 새로움에 대한 용기가 필요할 때 이야기해주고 싶다.
네가 아기였을 때 얼마나 용감했는지,
매일 도전하는 너를 보며 소심한 엄마도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