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재작년 혈액암을 진단받았다. 8개월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항암치료를 했다. 세 번의 항암 치료 끝에 의료진은 혈액검사에서 더 이상 나쁜 놈들이 보이지 않는다 했다. 감사했지만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는 없었다. 드디어 지겨운 입원생활이 끝났다는 생각과 함께 또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공존했다. 그렇다 엄마는 여전히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한 암환자이다. 아직까지 한 달에 한 번 외래를 다니며, 재발 여부를 체크한다. 시한폭탄까지는 아니어도 그냥 폭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언제고 터질 수도 불발될 수도 있는 그런 폭탄.
처음 병명을 진단받았을 때, 엄마에게 삶에 대한 의지는 찾을 수 없었다. 삶을 반쯤 포기한 사람 같았다. 엄마는 암 진단을 받고 울지 않았다. 드라마 속 ‘신도 참 무심하시지. 고생만 한 나에게 왜 이런 시련까지 주시냐.’는 그 흔한 대사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올 것이 왔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받아들였다. 원망하고,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대신 삶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은 것처럼 보였다. 치료를 시작해보기도 전 엄마는 유언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없어도, 아빠 잘 모셔.’
‘이렇게 되기 전에 너를 짝지어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우리 사위, 늘 고맙네. 서로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
불쑥 던져진 말들은 미쳐 준비되지 않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그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엄마가 안타깝다가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때마다 난 인상을 팍 쓰고, 그런 소리하지 말라며 소리쳤다. 왜 그런 약한 소리를 하냐. 친지, 주변 지인 모두가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 하고 있다. 아빠와 내가 엄마가 나을 수 있도록 최선으로 도울 거라는 포부 어린 말들을 했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 담대한 척했지만 사실 두려웠다. 진짜 엄마의 말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간병하기에 앞서서 혈액암환우회 카페에 가입했다. 틈 날 때마다 비슷한 환우분들의 투병기를 찾아보았지만... 희망적인 결과는 소수였다. 우리의 바람은 이곳인데, 현실은 저쪽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간담이 서늘해지곤 했다. 엄마와 이별해야 할 순간이 당장이라도 올 것만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은 어둡고 깊은 웅덩이로 날 획 잡아 끌어당겼다. 두려움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되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후로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투병기를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당시 아빠와 난 2교대 간병 체제로 엄마를 돌봤다. 밤에는 주로 내가, 낮에는 아빠가 간병을 했다. 어느 날밤이었다. 여느 때처럼 보호자용 보조침대 누워있을 때였다. 잠들려고 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는데 순식간에 무서운 상상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난 나쁜 꿈에서 빨리 깨고 싶은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무서운 상상은 눈앞에서 산산조각이 되어 사라졌지만 심장은 여전히 쿵쾅 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세차게 뛰던 심장이 옆에서 자고 있는 엄마의 숨소리를 확인한 후에야 잦아들었다. 그리고는 무서워서 한동안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난 휴대폰 화면을 새벽녘까지 바라보았다. 그 날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싶지 않았다.
병원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내겐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해 질 녘 창밖을 좀 더 오래 바라보게 된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해 질 녘 풍경이 좋다 못해 아련하게 다가왔다. 붉게 물든 하늘이 병실 창 밖으로 보일 때면,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전과 똑같은 일상일 뿐인데, 특별하게 느껴져서였을까 아님 이렇게 흘러가는 일상이 다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병원에서의 아침은 혈액검사를 하러 오는 의료진의 인사로 시작한다. 난 아침 인사를 건네는 엄마의 목소리가 새삼스럽게 좋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이랬던가. 30년을 넘게 듣고 살았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유독 듣기 좋았다. 오늘도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내게 언제나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한 것들이 아닐 때... 나는 감사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이 소중했다.
엄마가 퇴원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다. 아이가 태어난 지 4개월 됐을 때, 아이와 함께 친정에 내려왔다. 난 남편과 상의 끝에 다시 한번 장거리 가족을 기꺼이 선택했다. 출산 후 엄마가 아이를 한 번도 실물로 보지 못했다는 이유가 컸다. 엄마가 얼마나 아이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알기에.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계획은 3개월만 머물 자였다. 그러다 한 달만 더, 추석 때까지만... 하다가 지금까지도 친정에서 지내고 있다.
엄마가 퇴원을 한 지 21개월 차다. 엄마는 손녀와 함께 선물 같은 매일을 보내고 있다. 바람 불면 픽 하고 쓰러질 것 같은 체격을 가진 엄마가 9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아기를 번쩍번쩍 안는다. 손녀를 향한 사랑가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른다. 그것뿐인가. 삶에 대한 의지라곤 없던 엄마가 웃기 시작했다. 하하 호호 엄마의 웃음소리와 아이의 웃음이 한데 뒤섞여 집 안 가득 채운다.
"난 참 감사해. 내가 우리 손녀 태어난 걸 볼 줄 어떻게 알았겠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야. "
"엄마, 우리 감사하자."
"그래야지. 엄마한테는 정말 기적이야."
엄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이라 했다. 당신이 오늘을 살고 있는 것도, 그래서 사랑하는 손녀를 안고 입 맞출 수 있는 것도.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우린 폭탄을 가지고 살아간다. 언제 터질지, 불발될지 모르는 폭탄을. 하지만 우린 선택하기로 했다. 주어진 폭탄보다 선물에 더 집중하기로.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의 선물에 감사하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