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걷기로 했다

by 꿈꾸는기리니

출산 직후 나의 관절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내 관절들은 출산에도 끄떡없는 애들인가 보다 안심했다. 병원에서도 조리원에서도 손바닥으로 짚는 일은 삼가라고 주의를 줬다. 당시 난 그 의미를 잘 몰랐다.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는 둘째 출산이 그리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윽!’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대단한 착각이었다. 출산 후 50일, 내 관절들의 반란은 시작되었다. 특히 무릎 통증이 심했다. 수유하기 위해 아이를 안고 앉았다 일어서는 일은 고역이었다. 어느 순간 무릎을 구부리는 일이 무서웠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누군가 무릎을 도끼로 팡팡 내리찍는 기분이었다.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이러다 곧 나아지겠지. 어차피 지금은 운동도 할 수 없는 몸이니까.’


난 미련하게도 고통을 참으며 기다려보는 쪽을 택했다. 당시 산후보약을 먹는 중이었기에 괜찮아질 거다 생각했다. 운동 또한 산후 100일 후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100일 전에는 몸이 부서질까 두려워 집 앞 슈퍼나 카페 정도 가는 것을 제외하고 꼼짝하지 않았다. 그게 약해진 내 몸에 대한 나만의 최선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7개월이 되어도 내 무릎은 그대로였다. 아니 더 심해졌다. 앉았다 일어설 때 고통은 극에 달했다. 심지어 무릎이며 허벅지, 장딴지가 아파서 잠을 설친 날도 있었다. 미련하게 고통을 잘 참는 나였지만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 7개월 된 아이를 맡겨놓고 정형외과를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혹시라도 무릎에 이상 있어 수술해야 한다면 어떡하나, 행여 큰 문제라도 있을까 조마조마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긴장하며 오만가지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 이상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문제없어 보이네요. 아직 젊으니, 주사 처방은 안 할게요. 오늘은 물리치료받고 가세요."


3분도 채 안 되는 진료시간, 심플하고 건조한 처방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의사 양반! 제대로 좀 봐주실래요. 저 너무 아프다고요. 저 출산한 여자예요.'라고 마음속 울분이 치솟았지만... 소심한 나는 '네' 하고 힘없이 대답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30분의 물리치료, 무릎 영양제를 처방받고 돌아왔다. 집에서도 온찜질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그 뒤로 병원을 찾지 않았다. 당연히 무릎은 그대로였다. 난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원했다.


며칠 후 동네에서 꽤 소문난 한의원을 찾았다. 한 시간을 기다렸다. 괜찮았다. 내 무릎만 나아질 수 있다면 이 정도의 대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몸이 60대네. 골반도 몸도 다 비틀어져있고, 그래서 무릎도 아프고 몸이 다 아픈 거예요. 산후풍이에요.”


원장은 내 몸을 진료하더니... 나의 현 상태로는 둘째도 낳기 힘들다, 7개월이 다 되도록 왜 방치했냐, 60대 몸을 가지고 있다는 둥 겁을 잔뜩 줬다. 원장의 촌철살인 앞에 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결국 얇은 지갑을 열었다. 원장은 몇 달은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약발이 듣는 몸뚱이라고 겁을 줬지만 몇 달간의 약 값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고민 끝에 일단 10일 치의 약만 짓기로 했다. 10일 간 약을 꼬박 빼먹지 않고 열심히 복용했지만 다이내믹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몇 달간 먹었으면 효과를 봤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만한 돈을 지불할 마음도 능력도 없었다. 난 결론을 내렸다.

‘돈도 없는 60대 몸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운동뿐이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운동센터를 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뒷심이 약한 내가 홈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운동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난 집 근처 공원에서 걷기로 했다. 사실 난 친정에 와서 줄곧 걷기를, 아니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날씨가 안 좋아 빼먹고, 이 날은 기분이 안 좋아서 빼먹기를 여러 번이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걷는 일은 점점 뒷전이 되고 있었다. 이런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런 핑계는 놓기로 했다. 매일 빠지지 말고 더 많이 걸어보자 결심했다.





무릎이 아파 시작한 걷기였지만, 무릎 통증이 감소하는 일 외에도 내겐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삶이 걷기를 시작하고 활력이 생겼다.


출산 후 여기저기 늘어나고 들러붙어 있는 살, 쩍쩍 갈라진 피부, 탈모 후 새로 난 머리카락은 잔디밭을 이루었다. 거울을 보기가 무서웠다. 눈에 보이는 변화들로 자신감은 날로 하락했다. 출산 후 내 모습도, 내 삶도 송두리째 바뀐 것 같아 쉽게 짜증이 났다. 무언가 할 욕구는 쉽사리 생기지 않았다. 세수만 겨우 한 부스스한 몰골로 하루를 지낼 때가 많았다. 그런 날들이 반복될수록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편한 대로, 무기력한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곧 우울해졌다. 반복이었다.




매일 아침, 반쯤 감긴 눈꺼풀, 부스스한 머리로 이불속을 채 나오기도 전, 휴대폰으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날씨에 따라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하루 공원 13-15바퀴를 돈다. 처음엔 크지 않은 공원을 반복해서 걷는 것은 그리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지루했다. 공원을 걸으며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아기와 함께 있을 때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기로 했다. 가령 친구와 전화통화, 영어 듣기, 유튜브 듣기, 생각 정리 등등.... 더불어 만보를 채우면 포인트를 주는 어플을 깔았다. 운동도 하고 푼돈이지만 돈도 벌고 일석이조다. 작지만 동기부여가 되었다.


기 후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뜨거운 물과 수증기가 몸을 감싸고 지나간 흔적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개운함을 느낀다. 번뜩 깬 정신과 동시에 에너지를 충전한 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몸에 에너지가 생기니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삶에 활력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아이에게 짜증 내는 빈도도, 스스로를 보고 우울해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하고 싶은 일들, 해야 할 일들은 더 많아졌다.


아직 걷기 5개월 차에 불과하다. 하지만 난 걷기 후 내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늘어가는 근육량만큼 긍정적인 내가 되어갔다. 빠져가는 살만큼 무기력함이 조금씩 지워졌다.


난 매일 걸을 것이다.


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우산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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