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울고 나는 달렸다
"얘들아 오늘은 엄마 출근 하는 날이야. 빨리 서둘러줘."
라는 말이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매번 당하는 이 일이 영 익숙하지 않다.
특히 혼자 고군분투하는 등원 시간에는 더 그렇다.
아이들 유치원 옆의 학교에서 독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방학 중에도 수업은 이어졌고, 시작 시간은 오전 9시.
적어도 수업 10분 전까지는 도착해 있어야 한다.
아침마다 시곗바늘을 힐끔거리며 조마조마 해지는 건 늘 나의 몫이었다.
집 안에서는 아이들을 깨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빨리해"라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한다.
아이들을 재촉하고, 다그치고, 채찍질한다.
집 밖에서 유치원까지는 빠른 어른 걸음으로 10분.
아이들 걸음으로는 매번 다르다.
예닐곱 살 아이 둘의 손을 양쪽에 붙잡고 길거리를 전력질주하는 아침이 반복된다.
"긴 바늘이 숫자 3까지 오면 그만 먹고 양치하러 들어가!"
으름장을 놓듯 던진 말에도 둘째는 빙그레 웃으며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했다. 매번 속고도 그 해맑은 웃음에 늘 마음이 약해진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높아지는 나의 목소리 톤에
첫째는 식사를 재빨리 끝내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반면 둘째는 늘 자기만의 속도로 움직인다.
깨우는 것부터 쉽지 않고 씻는 것도, 옷 입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모든 과정에 버퍼링이 걸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속에서 조급함이 천천히 끓어오른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다림, 엄마에게 필요한 건 인내심이라 했던가. 하지만 우리의 아침은 늘 기다림과 인내심의 전쟁이었다.
'딸깍딸깍'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는데 아이는 방바닥 위에서 느긋하게 뒹굴거린다.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며 투덜거리고 도와주겠다 하면 혼자 하겠다고 버티고 다그치면 그제야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점점 시계를 더 자주 보게 되고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둘째는 세수하며 젖은 내복 윗도리를 갈아입겠다고 했다. 위아래 세트로 맞춰 입고 싶은데 서랍장에 있는 내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빨래통에 있는 내복을 내놓으라고 떼를 부렸다. 서랍장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고 가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는 떼를 썼다.
살살 달래도 보고 다그쳐도 보았지만 아이는 엄마의 말에 설득당해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나가도 출근시간이 간당간당했다. 시간은 가고 아이는 꼼짝하지 않고, 조급함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그럴 거면 넌 혼자 집에 있어. 언니랑 엄마는 시간이 돼서 나갈 거야." 하자 아이는 울며불며 헐벗은 채 거실로 뛰어나왔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는 점과 엄마가 가 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왜 맨날 이러니. 몇 번을 말해~ 빨리 나가야 한다고. 엄마 정말 힘들고 미칠 것 같아!"
여과되지 않은 감정들이 봇물처럼 아이에게 터져버렸다.
말이 튀어나온 순간 스스로도 놀랄 만큼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다. 아이는 얼어붙은 채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결국 아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집을 꺾고 옷을 입고 나왔지만, 난 지각 확정이었다.
길거리로 나서는 순간 마음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등원 길 내내 둘째는 안아달라며 울었고 나는 그 손을 붙잡은 채 빠르게 걸었다. 울고 있는 아이와 그 울음을 외면한 채 이내 달리는 엄마. 그 장면이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아이들을 유치원으로 들여보내고 부랴부랴 교실로 뛰어갔다. 이미 교실에 도착해 있던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지각이에요."
그 말 한마디에 아침의 풍경이 다시 떠올랐다.
더 많은 것을 해주는 엄마 보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남겨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오늘 아침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난 정말 좋은 엄마일까?
초보딱지를 아직 떼지 못한 7년 차 엄마라서 아침은 여전히 어렵다. 내일 아침의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