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년 함께 육아하며 아쉽고 후회되는 일과 감사하고 축하할 일
쌍둥이 육아 3년, 부부가 함께 육아하며 아쉽고 후회되는 일과 감사하고 축하할 일을 적어봤어요. 우선 이런 게 참 아쉬웠어요.
캥거루(아빠)
#1. 화를 너무 냈어요
왁! 화를 못 참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루에 '왁'의 수를 새기도 했지요. (ex : 화 안 낸 날은 No왁, 세 번 화낸 날은 3왁!)
아이들을 때려서 손자국이 남게 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손이 올라가다 하늘로 승천하는 식으로 바꾸었지만 그래도 찰싹하고 손이 먼저 나가기도 해요. 세 돌쯤 되니까 아이들이 벌써 거기에 대해 직접 말하고 반응해요. 한 아이가 '아빠는 화를 내니까 사탕을 안 줄 거야'라고 말했답니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서건 체벌은 안 하기로 약속!
#2. 진짜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어요
무작정 같이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아이들 입장에서 즐겁게 노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아빠가 공룡으로 변신해서 공룡 탈출 게임해주면 재밌어한다고 해서 해봤는데 무서워하며 울음을 터뜨렸지요. 아이들마다, 상황마다 달라서 어려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동차 놀이에 적극 가담 못하고 있어요.
놀아주는 것도 배우고 연습해야 하나 봐요. 연구가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지인의 자녀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요. 아이들과 너무 신나게 놀더라고요. 아이들도 그날이 기억에 남았는지 'OO형은 언제 또 놀러 와요?'라고 물어요. 하지만 당시 저희는 아이들이 노는 의식의 흐름과 인과관계 (도대체 갑자기 왜? 저게 왜 재밌어?)를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아~ 못하겠다' 확인한 계기인지도요.
두 돌 쯤부터 놀이의 스펙트럼이 넓어져서 점점 중요해지는데 마음껏 푹 빠져서 놀아주지 못한 게 내내 후회됩니다. 앞으로 반복되지 않았음 해요.
다람쥐(엄마)
#1. 도움을 적극적으로 청하지 못했어요
시터나 친척, 지인들 무관하고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했어야 했는데 너무 저희끼리 무식하게 버틴 것 같아요. 물론 코로나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면, 그래서 양육자들의 몸과 마음을 돌볼 시간을 더 확보했더라면 그럼 좀 덜 곯았을까요?
#2. 돈을 더 모아둬서 육아휴직을 더 할 수 있었더라면
저희는 둘 다 육아휴직을 하다 보니 1년 반즈음이 되었을 때 통장잔고가 바닥나서 생계형으로 복직했어요. 6개월 정도라도 더 육아휴직을 하면서 양육자들 스스로를 돌보고 한숨 돌렸더라면 어땠을까요? 병원도 다니고, 운동하고,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복직과 함께 일도 육아도 전력 질주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1년 반 달렸더니 정말 체력도 마음도 여유가 없어요.
#3. 기록-기록-기록
넋 놓고 있으면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하루하루가 그냥 빠져나가요. 3년?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사진, 영상, 글. 뭐든 좋으니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겠어요. 한 선배 양육자가 '용량이 큰 가로영상으로 남기라'라고 조언했는데, 업체에 맡기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정신줄 잡고 기록 자체를 많이 해두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이들에 대한 기록도 좋지만 양육자들이 배운 점, 축하할 것들, 감사도 잘 남겨두면 소중한 기록이 됩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양육자들도 엄청나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시기니까요.
반면, 이런 점은 잘했다고 자축하고 싶어요.
캥거루(아빠)
#1. 육아휴직
회사 1호로 육아 휴직서를 냈어요. 그 선택 자체를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어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3년이 지나 보니 새삼 깨달아요.
아이들이 '아빠, 나는 아빠를 무지무지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도 그 시간의 힘 덕분 같아요. 육아엔 꼼수가 없어요. 함께하는 시간과 노력만큼 아이들은 다 알아요.
#2. 숨 막히는 육아 중에도 뽈뽈 쏘다니기
아이들이 6개월이 되었을 즈음 코로나라는 단어가 처음 들렸어요. 다들 의아하던 때 마침 오키나와 여행을 준비 중이었어요. 갈까 말까 고민하다 떠났습니다. 사람 없는 곳만 찾아다니며 굳이 더 여건이 어려운 이국땅에서 육아를 하려니 여행이라기보다 전지훈련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 후로 제주도를 비롯해 각종 절(종교는 다릅니다만), 산, 공원을 사람 없는 평일에 틈틈이 돌아다녔어요. 아이들이 좀 크고 나서는 숙소에 도착하면 '여기가 오늘의 집이야?'라고 물어요. 마음에 들면 '다음에 여기 또 오자!'라고 피드백을 하기도 하고요.
어차피 해야 하는 육아, 집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기 어려울 때 부지런히 쏘다녔던 게 원동력이 되었어요.
#3. 직접 했던 것 : 이유식, 러닝 타워
아이들 이유식을 제가 직접 만들어 먹였어요. 계속되는 육아로 이미 체력이 바닥난 아내는 시판 이유식을 사 먹이 자고 했지만 저는 그때까진 버틸만했나 봐요.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에 일어나 조용조용 재료를 손질하고 익혀서 이유식을 만들었어요. 그걸 맛있게 먹어주면 그렇게 보람찰 수가 없어요. 파프리카를 비롯해 여러 채소를 잘 먹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믿어봅니다.
그리고 육아휴직 기간에 뭐라도 배워보자, 내가 좋아하는 걸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목공을 배웠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몇 달이었지만 공방에 가서 집중하는 시간이 참 소중했어요. 그때 필요한 가구들을 몇 개 만들었는데 아이들 러닝 타워(키친 타워)를 직접 만든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베싸TV와 몇몇 육아 선배들을 통해 러닝 타워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쌍둥이용은 없거나 수입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그렇다고 한 아이용을 두 개 들이자니 비용이나 공간이 만만찮고요. 그래서 일인용 러닝 타워를 보고 두 아이용으로 직접 설계를 했어요. 아이들이 여기 올라와서 눈을 마주치며 같이 차를 마시고 수다 떠는 걸 좋아했어요. 여러 놀이도 하고, 생일 축하도 하고요. 18개월 즈음부터 지금까지 매일매일 잘 쓰고 있으니 이만큼 가성비 좋은 육아 템도 없지요.
다람쥐(엄마)
#1. 엄마와 아빠가 육아에 함께 참여
저도 둘 다 육아휴직을 한 게 정말 잘한 결정이라 생각해요. 쌍둥이 육아는 혼자 하기엔 정말 만만치 않은 데다가 어떻게 겨우 한다고 해도 한 사람의 체력과 마음이 버텨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같이 이야기 나눌 어른이 함께하고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닌 아이들 아빠라서 저나 아이들은 비교할 수 없는 안정감 속에 지냈어요. 육아에 있어서 누가 메인이고 누가 서브, 이런 차이도 없었고요.
같이 육아휴직을 하기 힘들다면 적어도 낮동안의 일과 워크 플로우를 육아 시작 전에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한쪽이 퇴근해서 도와주는 형국에서도 갈등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뭐가 어딨고, 왜 이걸 해야 하고... 한낮에 육아한 사람이 낮동안의 일이나 의사결정을 설명하고 인수인계하려면 에너지가 들어요. 반대로 퇴근한 사람 입장에서는 '도와준다는 데 왜 짜증이야'하고 서운할 수 있겠지요. 정보의 편향성에서 오는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줄이기 위해 회사일 하듯 해야 둥이 육아는 겨우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2. 영상 노출 줄이기
영상 노출의 시기와 유해성에 대해 논란이 많지요. 사람들은 마치 영상 보여주는 부모가 게으르고 무책임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저희 생각은 달라요.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 '같은 시간에 아이에게 짜증내고 화내는 것보다는 영상을 보여주는 게 훨씬 유익할지도 모른다'는 구절을 봤는데 무척 공감했어요. 저희는 영상이 좋냐 나쁘냐, 어떤 영상을 보여주냐를 떠나 생애 초기 삼 년, 1096일(2020년이 윤년), 26304시간, 1578240분이라는 시간을 어떤 경험으로 어떻게 채우느냐의 고민으로 봤습니다.
TV는 아이들 태어나기 전에 이미 거실이 아닌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분리가 되었고요. 휴대전화는 아이들과 책을 보거나 이야기 나누다 찾아볼 게 생기면(ex : 중장비, 시베리아 횡단 열차 등) 같이 검색하는 용도로 썼어요. 혹은 본인들의 지난 영상이나 사진을 보여주고요. 가급적 TV보다 더 재밌는 다른 것(자동차, 블록 등등)을 제공해서 손과 눈을 마음껏 움직이게 도왔어요.
가끔 외식할 때 영상을 안 보여주고, 어르고 달래서 겨우 식사 마치면 사장님이 '영상 안 보고 밥 먹는 가족 보기 드물다'라고 이야기해주셔서 그제야 알아챘지요. (보여주고 편히 먹을걸 ㅎㅎㅎ)
#3. 수다 많이 떨기
아이들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말을 많이 걸었어요. 제 기분이나 상황을 혼잣말하듯 들려주고요. 태어난 후부터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성인의 대화 내용이나 정서를 중간중간 설명해줬어요. 가령 주말 일정을 이야기하면 우선 아이들에게 '엄마랑 아빠랑 이번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상의하고 있어. 너희도 자라서 같이 의논하자.'라고 이야기해줍니다. 굳이 쉬운 아가 말로 바꾸어 말하지 않고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해줬어요. 그 자체가 아이들에 대한 존중이고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말문이 터진 이후 실제로 같이 의논하고 있어요.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오늘) 갔다 오자'거나 '영국에 가서 킥보드를 타고 런던 브리지를 보고 싶다'는 둥 (다소) 실현 불가능한 의견이 주를 이뤄요. 때로는 '동네 작은 도서관에 걸어서 가자'거나, '과일형 네(=동네 단골 과일집) 가서 바나나를 사자'는 실현 가능한 의견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자기 의견이 있고 그걸 말로 표현해주는 게 참 신기하고 기특해요.
이렇게 각자 세 가지씩 꼽으며 서로의 아쉬움을 돌봐주고, ‘그래도 애썼다’ 격려했어요. 저 역시 선배 양육자들위 시행착오에서 큰 도움을 받기에 무려 5편에 걸쳐 정리해봤는데요. 매일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을 조금 멀리서 바라볼 여유가 생기셨길, 방향을 체크해보는 계기가 되셨길 바랍니다.
(1편부터 정주행 하실 분 ^^;)
이제 저희는 4-7세의 시기로 떠납니다. 예상한 대로 또 새로운 숙제가 많이 생겼어요. 자기 조절력, 놀이의 힘, 문해력... 이게 다 뭐랍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이런저런 환경을 마련하고, 진득하게 지켜보며 기다립니다. 요즘은 몸도 힘들지만 목이 너무 아프네요. (글 정리하며 '저렇게 작고, 조용하게 잠 많이 잘 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이제 다시 달립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렇게 다시 정리해볼 수 있으려나요. 그럼 그때까지 아이들과 재밌게 놀고 자라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