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만에 작가의 서랍에서 꺼낸 생후 6일 차 일지
작가의 서랍에 글이 많이 쌓여서, 정리하다가 무려 3년 전 글을 찾았다. 세돌을 맞고서야 본격적으로 육아일지를 쓰고 있는데, 예전에도 써보려고 애썼구나. 출산하고 일주일이 안되어 쓴 이 글이 참 새롭다.
이제 겨우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뭐라고 끄적일 여유가 생겼다. 그나마도 열흘 남짓이겠지만. 하루 종일 돌봐주시고 수유만 부지런히 하면 되는 조리원의 신생아실 같은 곳이 집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남편이 '내가 실장님 할게'란다. 말이라도 고맙다.
어제서야 싹 짐 정리를 하고,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조리원 일정도 슬슬 몸에 익숙해진 덕에 하루하루를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 했고, 예상치 못한 이슈라고 해봐야 뇌 초음파 검사와 우주의 황달 광선치료 정도로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퇴원과 조리원 입소까지 에너지가 많이 쓰였다. 출근한 남편도 아마 몸이 천근만근일 것 같다.
출산은 바랬던 최상의 조건(자연분만, 진통시간 짧음)이었지만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는 결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강도였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진통을 몇 번 경험하고 나니까 다음 진통이 시작될 즈음엔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남편은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해주었으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옆에서 하품을 하거나 눈을 감고 엎드려있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진통이 오면 놀라면서 깨서 어쩔 줄 몰라하며 팔다리를 문질러 주거나 손을 잡아주었다. 조는 모습을 보고 순간순간 화도 났지만 '새벽에 갑자기 깨서, 진통 없이 날을 새려니 얼마나 피곤하고 지루할까' 이해가 되기도 해서 웃기기도 했다. 남편에 대한 아쉬움이나 분노라기보다 다른 몸이라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실감했다. 내가 남자고 남편이어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첫째를 자연분만으로 낳고도 둘째나 셋째를 또 가진 분들이 존경스럽다. 더불어 현대 과학기술이 이렇게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은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지 또 한 번 의문이다. 아직은 다수일 남자 의사들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해서가 아닐까. 여자 (산부인과, 마취과 등등) 의사 선생님들 힘 내주시길.
우주와 지구는 닮았으면서도 조금 서로 다르다. 낳기 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구분이 잘 되는데 여러 아이들을 같이 봐야 하는 병원이나 조리원 신생아실 간호사, 관리사 분들은 조금씩 헷갈리나 보다. 나라도 둘을 잘 구분하고 알아채 줘야겠다.
편의상 우주가 첫째고, 지구가 둘째지만 나는 그냥 두 아이라고 생각하고 키우려 한다. 첫째와 둘째를 나누는 기준도 상대적이다. 우리나라는 출산 순서에 따라 먼저 나온 녀석이 형이고 나중에 나온 녀석이 동생이지만, 서양에서는 발생 기준으로 나중에 나온 아이가 형이라고 한다. 7분 차이인데 첫째냐 둘째냐 나누어서 '네가 형이니까 양보해'라는 식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쌍둥이가 아닌 첫째 둘째 사이에서도 저런 말이 유효한지 의문이고)
우주는 약간 까탈스러우면서도 섬세하다. 아직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아서 신생아 중에서도 붉은 편이다. 뱃속에서 내내 아래쪽에 있으면서 더 크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남편이 자꾸 '관우주(삼국지의 관우가 얼굴이 빨갰다고...)'라고 부르는데 행여라도 놀림 같아서 하지 말라고 말린다.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배냇짓이 활발해서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지구는 무딘 듯 잘 자고 잘 먹는다. 문득 쳐다보면 늘 한결같은 표정이라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신생아 답지 않게 뽀얗고 토실토실해서 벌써 잘생김이 묻어난다. (Feat. 아들바보) 뱃속에서도 자기 페이스대로 놀고, 입체 초음파 카메라를 향해 결코 고개를 돌리지 않더니, 아니나 다를까 고집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먼저 애태우지 않는 게 고양이 같아서, 양육자인 우리를 애타게 만든다.
이 친구들과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되고 설렌다. 하지만 수면과 식사라는 가장 기본적인 삶을 챙기지 못해 힘들다. 잠도 들쑥날쑥이라 하루가 어떻게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구분하기 위해 매일 아침 7시, 양말을 갈아 신는다. 수유를 하니까 옷은 수시로 갈아입게 되고, 샤워나 목욕도 짬이 나야 겨우 가능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양말이다. 이 루틴으로 어제의 육아를 끝내고, 오늘의 육아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