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하고 수줍은 예비엄마도 할 수 있는 노하우 (Feat. 비폭력대화)
아이가 생기면 기쁨과 더불어, 어떻게 안전하게 낳아서 잘 키울까 막연한 두려움이 싹트지요. 맞아요. 앞으로 공부하고 찾아볼 게 산더미입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 첫 미션은 '태담... 을 해줘야겠지?'였어요. 왠지 아이와 내가 이미 같이 있는 것 같은 뻘쭘한 느낌을 잊을 수 없네요. 뱃속에 있으니 같이 있는 게 맞긴 합니다만, 아직 직접 본 적은 없잖아요. 2-3주에 한 번 진료받으며 초음파로 볼 때뿐, 아이가 본격적으로 태동을 하기 전까지 사실 실감이 안 나요. 내가 말을 걸 순 있지만, 아이가 말을 할 순 없으니(말을 하기 위한 기관은 열심히 만들고 있나, 아기?) 혼잣말에 가까운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고요.
아무것도 안 하긴 좀 머쓱해서 좋다는 음악을 들어보고, 책도 읽어봤지만 그래도 한편 '엄마, 말은 언제 걸어주실 건가요?' 하는 압박을 무시할 수 없었어요. 내향형 엄마가 어렵게 어렵게 입을 뗍니다.
OO야, 잘 있니?
일단 시작은 했는데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저만 막막하고 답답했던 거 아니지요? 하물며 한 몸이 아닌 아빠 양육자들이 태담 하려면 더 머쓱하실 겁니다. 태담, 이렇게 해 보세요.
1. 양육자들끼리 대화 나누되 아이에게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주고 함께 있음을 느껴보세요.
아이가 존재하고 있고, 양육자들도 의식하고 있음을 말로 표현해 주세요. 아직 실감 나지 않으실 테니 양육자가 되었음을 알아채는 연습도 할 겸요.
'네가 태어나면 코~ 잘 곳을 엄마랑 아빠가 찾아보고 있어. 어떠니? 요건 후기가 별로다.'
'할아버지가 네 선물을 해주신다고 해서 뭐가 좋을까 상의하고 있어. 넌 무슨 색을 좋아할까?'
'엄마랑 아빠는 이렇게 드라마 몰아보는 걸 좋아해. 좀 야한 장면이 나왔는데, 너도 같이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괜찮나 싶었지 뭐냐'
2. 주변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들려주세요.
이때, 선입견이나 평가를 가급적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이야기해 보세요. 아이가 태어나면 이 '관찰'하기가 아주 유용한 스킬이 될 거예요.
막상 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순식간에 주변을 해석하고, 과거의 상처에 투영해서 대상을 보는지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필터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요. 태담 때부터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연습, 꼭 해보세요.
'택배가 8개 와 있네.'
(2개는 내가 샀는데, 나머지 6개는 뭐야? 저 양반이 충동구매 했나? 하는 의심과 판단은 내려놓고)
'와, 이게 무슨 냄새야? 새로 도넛 집이 생겼나 봐!'
(임신했다는 핑계로 많이 먹어버렸어. 난 참을성이 없어 스스로 비난하지 말고)
'버스를 탔어. OO 초등학교랑 슈퍼를 지나 세 정거장 뒤면 내릴 거야.'
(아이고 언제 집에 가나~ 지긋지긋하다 하는 신세한탄은 좀 접어두고)
3. 양육자의 기분을 나눠주세요.
행복함, 기쁨, 기대... 아이를 기다리며 이런 감정이 많이 들죠? 그걸 아이와 나눠주세요.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고 내 성대를 울려서 발화해 보면 그 감정이 더 풍요롭게 우리 삶에 퍼질 겁니다.
반면 걱정, 불안, 염려... 이런 느낌도 무시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나눠보세요. 비폭력대화는 우리가 소위 부정적이라고 부르는 느낌들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를 권해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소중한 신호니까요.
'엄마가 지금 놀랐어. 오토바이가 쌩하고 지나갔거든'
'와, 최선을 다해 건넜는데도 시간 안에 신호등 건너기가 힘드네. 숨이 차구나. 이럴 때면 당연한 거 알면서도 좀 낙심 돼. 나중에 가벼운 몸으로 너랑 같이 가뿐하게 건너는 날이 오겠지?'
'병원에 다녀왔는데 엄마 당 수치가 높다고 해서 조금 걱정이 돼. 너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4. (3번에 이어서) 양육자가 욕구를 찾고, 그 욕구가 충족된 상황을 그려주세요.
비폭력대화는 모든 느낌에서 욕구가 보내는 신호를 읽어보라고 해요. 좋은 느낌은 어떤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인지, 나쁜 느낌은 어떤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좀 살펴봐 달라는 아우성인지 말이에요. 흔히 말하는 나쁜 느낌도 이렇게 중요한 신호임을 알게 되면 편안하게 모든 감정을 다 환영하게 됩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예민하고 약해지는 임신 시기엔 이렇게 불편한 감정이 많이 들기 마련인데 괜히 아이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염려되시죠. 하지만 나의 일부로, 더 나아가 내가 바라는 것을 알아채는 디딤돌로 삼아 보세요.
'엄마가 지금 놀랐어. 오토바이가 쌩하고 지나갔거든'
-> 엄마는 편안하게 지내길 원해. 너랑 함께니까 안전한 게 더욱 중요하고
'와, 최선을 다해 건넜는데도 시간 안에 신호등 건너기가 힘드네. 숨이 차구나. 이럴 때면 당연한 거 알면서도 좀 낙심 돼. 나중에 가벼운 몸으로 너랑 같이 가뿐하게 건너는 날이 오겠지?'
->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 홀가분하고 효율적인 게 좋아.
'병원에 다녀왔는데 엄마 당 수치가 높다고 해서 조금 걱정이 돼. 너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 임신 기간 내내 걱정 없이 안심하고 지내고 싶어. 너도 나도 건강하게, 수월하게 출산하고 싶어.
편안함, 안전, 자유로움, 홀가분함, 효율적, 안심, 건강, 수월함.
위에서 찾은 욕구들에 머물러 보세요.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가요!
아이를 만나는 과정에서 모든 예비양육자들이 원하는 욕구들일 겁니다.
위의 태담은 비폭력대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존과 존중, 그리고 비폭력대화의 네 가지 요소인 관찰-느낌-욕구-부탁을 자연스럽게 아이와 나누는 방법이랍니다. 이 과정 자체가 자기 연결과 공감이기도 하고요.
눈치채셨나요? 이 태담은 아이를 위한 대화이면서 동시에 양육자를 편안하게 하는 시간이란 걸요. 톤을 높여서 예쁘게 말하거나 꾸밀 필요 없어요. 그저 내 마음을 따라가며 아이와 함께하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어떠세요?
아이의 존재를 의식해서 말을 건네기 (현존과 존중)
주변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들려주기 (관찰)
순간순간의 내 느낌을-부정적인 느낌 포함-찾아서 읽어주기 (느낌)
그 느낌이 어떤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살펴본 후 충족된 상황에 머물기(욕구)
아이를 만난 후의 대화로도 이어지는, 이 비폭력대화의 원리들을 태담부터 녹여서 사용해 보세요. 그 어떤 출산준비보다도 중요합니다. 몸에 익혀두시면 든든하고 유용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