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 대한 판단 대신 욕구 읽어주기
지구야,
요즘 네가 자꾸 다른 사람 옷을 잡아당기거나 밀어. 너는 웃으며 신나 하는 걸 보니 장난으로 그러는 것 같아.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넘어질 수도 있으니 위험하고, 갑자기 그러면 상대방은 정말 놀라고 화나.
그래서 너에게 다른 사람을 밀거나 옷을 잡아당기는 건 하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 그런데도 계속 그 행동을 반복해서 엄마는 슬슬 짜증이 났어. 도저히 말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들었지만) 네 옷을 잡거나 가볍게 밀면서 느낌이 어떻냐고 물었어. 너는 '싫어', '불편해'라고 대답했지.
그런데도 놀다가 신이 나면 같은 행동을 반복해. 언젠가부터 이 문제가 작은 고민이 되었고, 너와 다른 아이가 같이 뛰어나가기라도 하면 미리 걱정하게 되었어. 심지어 지구가 '머리가 나쁘다'거나 '반항적'이라거나 '공격적'이라는 판단도 올라왔지.
하루는, 또 우주를 밀길래 쫓아가서 둘을 분리하고 네 앞에 엄마가 몸을 낮춰 앉았어.
지구야, 방금 우주를 민 걸 엄마가 봤어.(관찰)
밀면 안 된다고 알려줬는데 또 그런 걸 보니까 엄마가 답답하고 걱정 돼.(느낌)
여기까진 했는데, 네 욕구를 추측하기가 어려운 거야. 아니 도대체 하지 말라고 수차례 말하고, 너도 위험하단 걸 이해한 것 같은데 왜 또 하는 걸까. 재미? 신남? 서로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채워서는 안 되는 건데, 더구나 상대방은 전혀 재밌지도 신나지도 않는다는 걸 알잖아. 아직 '왜'냐는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나이라고 들었어. 하지만 너무 막막하고 궁금해서 물었지.
"근데 지구야. 도대체 왜 민 건지, 엄마가 이해하고 싶어. 재밌어서 그래?"
그러자 지구는 곰곰이 생각하더라. 그리고 대답했어.
"이기고 싶었어"
맞아. 너는 주로 같이 달릴 때 그 행동을 해. 네가 이기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상대를 밀거나 당긴 거였구나. 앞서나가고 싶고, 더 빠르게 달리고 싶은 건 결코 공격적이거나 나쁜 마음이 아니지. 엄만 미처 그 생각은 못했어.
"지구야, 달리기 하면서 앞서나가고 싶었어?"
"응"
"그랬구나. 이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어. 나쁜 게 아니야. 그런데 이기고 싶을 때 옷을 잡거나 미는 방법은 안 돼. 대신, 다른 방법이 있어."
"뭔데?"
"다리랑 어깨를 좀 더 힘차게 움직여서 네가 더 빨리 달리는 거야. 친구 몸이나 옷에 손을 대지 않고"
지구는 잠자코 듣더니, 눈을 크게 뜨고 밝은 표정으로
"아! 그러면 되겠네. 그건 지구가 몰랐네!" 하는 거야.
그리고 개구쟁이 표정을 지으며
"엄마가 안 가르쳐주니까 지구가 몰랐지~"하더라.
네 대답을 듣고 엄마는 정말 많은 걸 느꼈어. 우선 미안했어. 네 행동이 어떤 욕구 때문인지 사려 깊게 살피기보다는 너에 대해 함부로 판단했으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그걸 충족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엄마 역할이란 걸 잠시 잊었던 것 같아.
엄마가 안 가르쳐주면 네가 숱하게 시행착오를 겪고,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도 받을 거야. 물론 그 시간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겠지. 하지만 아직은 엄마가 같이 고민하고 가르쳐줘야 하는 시기란 걸 기억할게.
얼마지 않아 또 달리는 상황이 되었어. 출발하기 전에 넌 엄마를 힐끗 돌아봤어. 엄마도 빙긋 웃으며 지켜봤지.
어깨를 겨누며 달리더니, 너는 상대의 옷을 잡거나 밀지 않고 조금 더 힘을 내더라. 그리고 앞서 나가서 가고 싶은 곳까지 달린 뒤 엄마에게 들릴만큼 크게 외쳤어.
"엄마! 나 밀치지 않았어!"
맞아. 밀거나 옷을 잡아당기지 않고, 네 힘으로 더 빠르게 달려 나갔어. 안전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이뤄낸 거야.
지구야, 어떤 상황에서도 넌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비밀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엄마도 같이 고민하면서 무척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어. 욕구를 잘 알아채고 표현해 주는 네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