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B 미용실 다니고 싶어요'에서 시작한 상념
아이가 미용실을 바꾸잔다. 태어나서 줄곧 집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다가 남편이 다니던 집 근처 A 미용실에 처음으로 같이 갔던 게 생후 18개월쯤. 그러다 얼마 전 시간도 없고 A 미용실 예약도 어렵고 해서 어린이집 근처 B 미용실에 처음으로 갔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나 머리가 길었다.
'OO 이제 미용실 가야겠네, 아님 집에서 옆이랑 뒷 머리만 잘라줄까?' 물었더니, '엄마, 나는 B 미용실 다니고 싶어요'란다.
이런 경우 양육자가 대화를 이어가는 반응이 네 가지 정도 떠올랐다.
1. 네가 무슨 미용실을 고르겠다는 거야.
2. 그래 알았어. 근데 미용실 어디 갈지는 엄마가 정하는 거야.
3. 왜? (=거기 비싼데, 솜씨 별론데)
4. 왜? (=네 의견이 궁금해)
각각을 들여다보자.
1. 네가 무슨 미용실을 고르겠다는 거야.
대놓고 아이를 무시하는 말이다. 너는 미숙하며, 의견 따위는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전해진다. 너무 심한 말 같지만 소재가 달라지면 종종 등장한다. 식당에 가거나 쇼핑을 가보면 메뉴, 디자인(옷/신발) 같은 기본적인 것도 스스로 고를 기회를 주지 않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기껏해야 장난감 정도가 아이가 선택가능한 물건이다. (그래서 그렇게 장난감에 고집을 부리는 지도)
2. 그래 알았어. 근데 미용실 어디 갈지는 엄마가 정하는 거야.
얼핏 '알았'다면서 아이의 뜻을 수용해 주는 듯 보이지만 그건 엄마의 생각과 같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는 거지 궁극적으로는 '너의 의견이 궁금하지 않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이면에는 육아를 좀 편하게 하고자 하는 엄마의 고단함이 배어 나온다. 더불어 내가 너보다 세상을 더 오래 살았고, 정보가 많기 때문에 너는 내 말을 듣는 게 편하다는 조종과 명령의 의도도 있다. 기본적으로 아이의 생각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 흠... 왜 수많은 직장상사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걸까?
3. 왜? (=거기 비싼데, 솜씨 별론데)
아이에게 물어보지만 앞에 '도대체'가 숨겨져 있다. 거기 비싸고, 솜씨 별로인데 '도대체 왜' 거길 가고 싶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다는 반문이다. 이런 '왜'에 대답하면 어김없이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서 반박하는 말이 돌아온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나쁘고... 더 나가면 '니 취향은 이 정도' 같은 조롱이나 비난이 따라오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1번이나 2번이 차라리 낫다. 1번이나 2번은 그냥 한 대 깔끔하게 맞고 끝나는 거라면 이 '왜'는 마치 덫과 같아서 물정 모르고 대답했다가 두 배 세 배로 깊은 내상을 입게 된다.
돌아보니 나는 이런 '왜?'를 참 많이 들었다. 회사에서나 학교에서나 몹쓸 친구에게서도. 그래서 의견을 내지 않고, 의견을 어렵게 내도 상대가 왜냐고 물어오면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 슬퍼.
4. 왜? (=네 의견이 궁금해)
아이가 의견을 내준 것에 대한 기쁨과 순수한 호기심을 담아 묻는다. 이것이 진짜 '왜'다. 정말 궁금하고, 그래서 듣고 싶은 마음이다.
뭐 보나 마나 정답은 4번이다. 육아하다 보면 나도 어김없이 1~3을 오가는데 다행히 알아차리고 거르기도 한다. 애써서 4번으로 대화를 이어가 보면 이런 놀라운 배움과 연결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이 : 엄마, 나는 B 미용실 다니고 싶어요.
나 : 그래? 왜? (4번입니다 여러분!)
아이 : 거기가 샴푸를 잘해요. (풉)
나 : 샴푸 받는 게 좋구나?
아이 : 응. 집에서 엄마가 자르고 나면 샤워기로 막~ 그냥 이렇게 하는데 (니가 따갑다고 난리 치잖아) 거긴 누워서 요로케요로케 (샴푸 하는 손 흉내 중)
나 : 맞아. 진짜 힐링되는 시간이지.
아이 : 힐링이 모예요?
나 : 편안하게 돌봄 받아서 행복해지는 기분 말이야.
아이 : 맞아 맞아. 샴푸 하면 그런 기분 들어요.
나 : 근데 미용실 가면, 그 순간만 힐링하는 게 아니라 멋져져서 계속 기분이 좋잖아.
아이 :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봄)
나 : 샴푸 잘하는 그 형은 샴푸만 잘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맞는 스타일을 권해주고 또 멋지게 머리카락을 자르는 능력이 있어.
아이 : (옆에 있던 거울 쓱 봄)
나 : 미용실은 힐링도 하고, 우리를 더 멋지게 꾸며주는 전문가가 우릴 도와주는 곳이지.
아이 : 오~
나 : OO가 말한 B미용실 가자. 가기 전에 어떤 스타일로 자르고 싶은지 고민했다가 형이랑 같이 상의해 보는 거 어때?
아이 : 좋아요!
아이에게 이제 미용실은 돌봄을 받을 수 있고, 멋진 스타일을 갖게 도와주는 전문가가 환대해 주는 공간이 되었다.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았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도 수용받았다. 그곳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후로 아이가 '스타일'에 대해 묻길래 몇 가지 커트 디자인을 같이 찾아봤다.
'미용실'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미용실에 대해 내가 살면서 들었던 말은 '미용실 아줌마는 말을 잘 옮기니 가서 입조심해라'와 '사기꾼들(=시술 가격이 제 멋대로)'이었다. (누구로부터 들은 말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그래서 나는 꽤 긴 세월 동안 미용실에 가면 긴장했다. 어설퍼 보이면 호구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미용실뿐이겠는가. 내게 세상은 전쟁터고 내 편은 없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두려움과 불안으로 너무 긴 시간 살았다. 내가 듣고 한 말은 1~3 무한반복이었다.
그 악순환이 8년 간 열심히 읽고, 배우고(누적 수업료 따져보니 어지간한 대학원 수준), 연습모임하고, 저널을 쓰고, 급기야 책까지 내니 겨우 끊어진다. 나처럼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애써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타인과 연결되고 존중하며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부럽다.
아이가 툭툭 던지는 말과 행동이, 나의 상처를 자극한다. 꽁꽁 싸매두고 이제 괜찮다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펄펄 날뛰어 놀라곤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미처 다루지 않고 쟁여놓은 여러 상처를 다시 다룰 기회기도 하다. 나의 성장점이다. 내 육아지표는 AR/SR도 아니고, 아이가 한글을 떼는 것도 아니다. 나의 성장이다. 내 상처를 아이에게 그대로 토해내지 않는 것이다.
아이와 대화를 나눌 때 내가 보이는 반응으로 아이는 평생 어렵게 풀어가야 하는 짐이자 상처를 얻을 수도 있고, 배움과 존중을 경험하기도 한다. 부모와 아이의 대화가 그 어떤 사교육이나 돈주고 하는 경험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복적이고 일상적이라 아이에게 깊고 단단하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 순간 아이와 대화 나눌 때, 현존하고 정성을 다하려고 애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용실' 대화는 선방이다.
며칠 뒤 아이와 B 미용실을 찾았다. 샴푸뿐 아니라 내어주시는 간식과 드라이 시간도 꽤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잘라줄까?'라는 스타일리스트 분의 질문에 아이는 '자동차 스타일로 해 주세요'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