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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Mar 23. 2023

[육아대화법] 이렇게 돌보자. 그럼 괜찮아질 거야.

'여보 얘 괜찮대' 대신 / [육아 편]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기억한다. 눈이 간지러웠다. 그래서 비비기도 자주 비볐다. 엄마에게 말씀드리니 같이 안과에 가보자고 하셨다. 안과는 치과보다는 덜 무섭지만, (아마도) 처음 가 본 곳이라 낯설었다. 문틈으로 소리가 나는 기계와 장치들이 보였다. 눈은 '앞이 보이냐 안 보이냐'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걸린 부위라서 괜한 상상도 했던 것 같다.

  
내 이름을 부르고 진료가 시작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밝은 불을 들이대어 내 눈을 살피더니 보호자인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래 속눈썹이 눈동자를 자꾸 찔러서 생기는 일인데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눈이 크게 찍힌 사진을 보며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장면이 생생하다.


길지 않은 진료가 끝나고 돈을 치른 후 병원을 나왔다. 약국도 들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얼핏 저녁에 엄마와 아빠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대충, '병원에서 뭐래?' - '얘 괜찮대'로 이어지는. 정작 나는 진료 중에도, 진료를 마친 후에도 의사 선생님이나 양육자인 엄마로부터 내 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눈을 크게 뜨고 깜빡이지 말라고 해서 시키는데로 한 후엔 투명인간처럼 앉아 있었다.


내 귓가를 맴돈 단어는 '수술'이었다. '수술? 무슨 수술이지? 근데 왜 수술 안 하고 그냥 나오는 거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엄마는 내 눈을 포기한 건가?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이면 어떻게 하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고작 속눈썹이 눈동자를 찔러서 간지러운 것뿐이었지만 당시엔 꽤 심하게 마음앓이를 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앞이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두려워서 잠이 깨고도 한참 눈을 감고 있었다. 한두 달 지나고 자연스럽게 눈이 간지럽지 않고, 눈을 대신할 걱정거리가 생기면서 이 일은 자연스럽게 잊혀갔다. 지금 적어보니 어이없는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어린 나는 했다.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얼마 전 영유아 검진 때였다. 막바지에 의사 선생님이 '뭐 또 궁금하신 건 없어요?'라고 물었다. 아이가 눈을 자꾸 비비는 게 떠올랐다.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 여쭈니 '지금 눈밑살이 포동포동 봉긋해서 아래 속눈썹이 눈동자 쪽으로 향하는 거'라고, 골격이 커지고 그래서 눈 아래 살이 평평해지면 자연스럽게 괜찮아질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혹시 불편하면 뽑는 시술을 할 수 있지만 권하진 않고, 눈을 비비는 게 좋을 리는 없으니 손을 수시로 깨끗하게 씻겨주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병원을 나서며 아이에게 물었다. 동그란 눈으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OO야, 선생님이 OO눈을 살펴보셨지?
아래 눈썹이 눈동자를 찔러서 간지러운 거래.
자라면서 괜찮아질 거지만 불편하면 의사 선생님이 도와주실 수 있어.
눈을 비비면 안 좋으니까 되도록 참으면서 기다려보자, 어때?

아이가 '그래도 눈이 간지러우면?' 묻길래 '그럼 병원 가서 선생님한테 도와달라고 할까?' 되물었다. 그랬더니 '아니~ 참아볼게'라며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이후로 눈을 비비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면 힛! 하고 얼른 손을 내리거나 잠시 눈을 감고 간지러움을 참았다. 하루는 하원할 때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들었다. OO가 '저 눈이 간지러운데요, 의사 선생님이 형님 되면 괜찮아진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고.


어린 나는 어딘가 아프면 왜 아픈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내 몸에 어떤 치료를 하는지 듣지 못했다. 많은 의사 선생님과 양육자가 어린아이들의 마음까지는 살피지 않던 시절이었다. 꼬치꼬치 캐 물으면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드는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가 되는 시대였다. 그래서 참 많이 불안했다. 내 몸을 아끼고 존중하는 방법도 뒤늦게 배웠다.


당시의 나도, 지금의 나도, 예측가능성과 안전과 존중과 참여와 편안함이 중요하다. 아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들을 안심시켜 주고 몸의 주인인 아이들을 존중해서 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켜주고 싶다.


비록 병원과 약국에서 뽀로로 비타민을 받는 게 제일 중요한 아이들이지만 여유가 될 때마다 이야기해 주어야지. 네 몸이 어떤 상태고, 의사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고(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그래서 양육자인 엄마아빠는 이러저러하게 해주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떤지. 그리고 병원에 다녀가며 네 마음은 어땠는지. 앞으로 이렇게 같이 돌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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