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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Apr 25. 2024

[육아대화법] 훈육 대신 멈추고 호기심

비폭력육아의 첫 단추를 끼워보세요.

훈육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앞서 글에서 구체적인 상황을 내어 놓았어요.

https://brunch.co.kr/@giraffesister/206

이번 글을 통해 비폭력대화를 실천하려고 제가 했던 노력을 회고해보려고 합니다.


비폭력대화에 대해 매우 짧게 설명드리자면 우리가 하기 쉬운 습관적인 반응(판단/평가-생각-수단/방법-명령/지시) 대신 '관찰-느낌-욕구-부탁'을 선택하는 대화법입니다. 자극이 되는 상황에서 바로 반응하지 않고 그 사이에 공간을 가지길 권합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습관적인 반응이 수시로 튀어나옵니다. 우선 제가 의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 볼게요.


당시 제 마음속에 떠오른 말을 솔직히 적자면 (이제와 생각하니 참 민망하지만) '아니, 도대체 왜 갑자기 길에 눕지? 무슨 정신이야?' 였어요. 이건 잘못된 행동이야. 이 아이는 별나다. 같은 판단과 평가도 올라옵니다.


그리고 주변을 살핍니다. 아이들과 있으면 종종 눈치가 보여요. 남한테 폐 끼치진 않나, 날 이상하고 미숙한 양육자로 보진 않을까 하고요. 이 날도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과 더불어 남의눈을 의식했던 것 같아요. 슬슬 불안하고 짜증이 나면서 당위(눕는 것은 이상한 행동)와 함께 그에 따른 수단과 방법(스스로 일어나기)을 하라는 명령과 지시로 직행합니다. 그래서 흔히 이렇게 말하죠.


일어나! 길에 눕는 거 아냐.


한 번 말했는데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약간의 협박과 불안감 자극을 곁들입니다.

'길이 얼마나 더러운 줄 알아? 비둘기가 똥도 싸고, 다른 사람들이 발로 밟고 다니는 곳이잖아'

'바닥 만진 손으로 눈 비비고 빨고 그럴 거지? 그러면 몸이 아야 해.'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불편해.'


어떤가요? 자주 듣고 또 하는 말 아닌가요? 보시다시피 이때 절대진리인 '건강'과 '질서'가 아주 유용합니다. (뒤에 이야기를 이어가겠지만 이 두 가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비폭력대화에 기반해 이 대화를 바꿔볼게요. 어떤 말이 예상되세요?


'비폭력'대화를 한다고 말하면 흔히 '착하고 예쁜 말투'를 상상하며 '눕고 싶었구나? 일어나자~'라고 말할 거라 추측합니다. 저게 공감이고 느낌을 읽어주는 거라고요. '일어나! 길에 눕는 거 아냐'와 무엇이 다른가요? 내 의식의 흐름은 그대로인데 어미만 바꾸고, 어금니 꽉 깨문 채로 비언어적 요소를 친절하게 하는 게 비폭력인가요?


비폭력대화는, 오냐오냐하고 다 받아주고 예쁘게 말하는 대화법이 아닙니다.  비폭력대화의 근간인 아힘사나 평화와 연민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글로 써야 할 만큼 묵직합니다. 이번 글에선 실제 대화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우선 떠오르는 여러 판단과 평가를 내려놓고, '관찰'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요. 아이가 길바닥에 드러누웠습니다. 별나거나 잘못된 게 아니라 그저 바닥에 드러누운 겁니다.

저는 이때, 당황되고 민망하고 염려되었습니다.(느낌) 좀 지치기도 했어요. 놀이터에서 이미 열심히 놀고 킥보드도 탔잖아요. 머리카락 쫄딱 젖은 거 보이시나요. 제게 필요한 것(욕구)은 휴식과 순탄함, 여유였어요. 한편 이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고 잘 연결되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고...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뭘 원하고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어떤 부탁을 하기보다 호기심을 갖기로 합니다. '(아니 도대체 더러운 길바닥에) 왜 드러누운 거야?'가 아니라 순수한 궁금증을 담은 '왜'입니다.


이렇게 짧게나마 제가 자기 공감을 하는 동안, 아이는 바닥에 누워 손을 팔랑거립니다. 그리고 제가 호기심을 담아 묻자 이렇게 답하죠.


어떻게 들으셨나요? 당시 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유였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답이 정말 진심임을 실감합니다. 아이들은 이 세상을 배우는 중이니까요. 제가 묻지 않았다면 스스로 이렇게 표현할 기회가 있었을까요? 비로소 아이의 욕구가 보입니다. 그 순간 주변과 연결되고, 재미있고 싶었겠지요. 배움과 생동감, 살아있음이 채워집니다.


저의 욕구(휴식과 순탄함, 여유)도 중요했기에 5분 정도는 기다려보겠다고 한계를 설정하고 아이 옆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3분 정도 누워있더니 스스로 일어납니다. 아이에게 '그래서 무엇을 느꼈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이 조금 어두워졌고 (해질 무렵이었거든요.) 등이 축축해졌다(그날 오전에 비가 왔었어요)고 대답하더군요. 아이가 오감으로 세상을 흡수할 기회를, 여차하면 저의 섣부른 판단과 수치심과 불안으로 가로막을 뻔했습니다. 아이를 억지로 일으키거나 언성을 높였다면 저도 에너지를 소모하고, 아이도 억울하고 답답했겠지요.


그리고 건강과 질서 말씀인데요. 제게도 이 두 가지는 훈육의 절대 원칙입니다. 아이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는 행동,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불편하게 하는 행위는 바로 제지하고 가르칩니다. 이 날도 이 두 가지에 해당되나 즉시 생각해 봤어요.


건강 : 길바닥이 드러눕기에 좋은 곳은 아닙니다만, 이미 놀이터에서 뒹굴고 온 터라 아이가 길바닥만큼 지저분했었어요.

질서 : 다행히 보행자가 별로 없었고, 이따금 자전거가 다녔지만 길이 워낙 넓고 시야가 트인 곳이라 제가 사전에 보호하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건강과 질서라는 절대 진리를, 아이가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무기로 쓰고 있진 않나 돌아봅니다. 실은 별 상관없는데 확대하고 상상해서 말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들으며 자랐나요! '남들이 흉봐', '그러다 큰 일 난다!', '어디 부러져 봐야 알지' 같은 표현들요.

다만 이 경험이 잘못 반복될까 봐 (역시 저의 염려) 아이에게 '차가 안 다니는 길이라 괜찮았지 사람이 많거나 좁은 길에서는 누우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자기도 안다더군요.


비폭력대화는 상대(비록 갓 태어난 아이일지라도)에 대한 존중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연결의 의도를 가지고 나누는 대화입니다. 나 자신을 솔직하면서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고, 상대의 비극적 표현도 그 안의 욕구를 찾아 공감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연결이 중요하지요. 비폭력대화는 상대의 욕구도 나의 욕구도 두루 충족시킵니다. 표현은 강건하고, 관계가 깊어집니다. 평화롭고 안온합니다.


아이와 나란히 걸으며 세상을 어떻게 느꼈는지 이야기 나눈 그날의 풍경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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