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 오프라 윈프리, 브루스 D. 페리
나는 오늘도 유튜브에서 <금쪽같은 내 새끼> 요약본을 검색한다. 금쪽이와 우리 아이가 비슷한 면은 없는지, 그럴 경우 국민멘토 오은영 선생님은 어떤 처방을 내리는지 체크하기 위해서다.
다들 이미 눈치챘겠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금쪽이가 아니라 그 부모들에게 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상황은 달라도 처방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 육아 환경 재정비, 가족 대화법 바꾸기, 필요한 치료나 활동들.
애초에 출연한 이유는 아이든 부모든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전문가인 오은영 선생님의 '진단'을 받아 거기 맞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보고 나면 늘 어딘가 아쉽다. 주인공인 아이와 진짜 문제인 그 부모 모두 실은 다 금쪽이이며, 그 금쪽이들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왜’ 그런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 트라우마 전문가인 브루스 D. 페리와 오프라 윈프리가 함께 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는 수년간 금쪽이를 보며 답답했던 내 마음을 뻥! 뚫어 줬다. 열 번의 대화로 구성된 이 책은, 삼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프라 윈프리는 스무 살 이전의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동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젊은 연구자였던 페리 박사도 초대받았지만 그 의도와 효과에 대해 의심하며 처음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프라가 거듭 초대연락을 하고 소수의 사람만이 모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자 페리도 이에 응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 후 그들은 이 문제에 천착하여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1993년 미국 전국아동보호법 제정을 지지하는 등 현실의 변화도 이끌어냈다.
초반부의 대화는 왜 아동기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페리는 이 문제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평생 연구해 왔다. 사람의 뇌가 파충류의 뇌에서 포유류의 뇌로 진화하고 급기야 이성과 창의성의 영역에까지 이르렀으며 각각의 발달단계와 그 시기별 트라우마가 인간의 뇌, 그리고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오프라는 그의 설명에 질문을 더해 독자들이 이 문제를 잘 이해하고 각자의 기억을 소환하게 돕는다.
페리 박사는, 아이들이 왜 '문제'를 일으키는지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치유와 변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들에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하는 호기심과 돌봄을 통해 사람은 성장하고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주장을 그저 주관적 의견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설명한다.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는 역사적 트라우마, 위협에 맞서는 우리 뇌의 대처법에 이르기까지 어렵다면 어려운 뇌과학 이야기에 오프라의 경험과 두 사람이 지난 시간 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오프라는 유년시절에 뿌리를 둔 문제에 발목을 잡혔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싶고, 잘 다루고 싶어서 이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다. 그녀의 경험은 상처이자 핑계일 수 있지만 도리어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나 역시 거의 20년을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채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남들에게 보이는 여러 조건이나 성취는 그럴듯해 보였으나 내면은 피폐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묻고 공부하느라 정작 성장하거나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주고받을 겨를이 없었다. 모래성 같은 자아에 계속 물과 모래를 쏟아붓고,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씨름하느라 진이 빠졌다.
한 육아전문가는 엄마들에게 '저의 유년시절은 이랬어요', '원부모는 저를 이렇게 양육했어요'라는 말은 한마디로 핑계라고 말한다. 맞다. 그 뒤에 숨고 피하면 핑계가 된다. 하지만 직면해서 알아채고 그것과는 다르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납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부모가 나를 어떻게 키웠고, 그래서 나는 뭐가 문제인지... 가 아니라 나와 나의 원부모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라고.
외연이 넓어져,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며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들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얕은 수준에서 이해했던 여러 사건들의 뿌리가 보였다.
‘당신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서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로 질문을 바꾸는 것에서 회복은 시작된다. 이 질문의 대상을 타인으로 확장할 때, 회복 역시 확장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사람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순간, 분석과 평가의 잣대로 위에서 내려다보던 내가 연민과 수용의 마음으로 그들의 곁에 서게 된다. 책의 표현을 빌리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의 난파선 같은 내면을 다시 찾아가 부서진 파편들을 살피고 그중 어떤 것들은 현재의 새롭고 안전한 피난처로 옮기는 작업'을 함께 혹은 스스로 하게 도울 수 있다.
열 개의 챕터 하나하나에 지혜와 온기가 가득해서 읽는 내내 행복한 한편 가슴이 저렸다. 내 '개인적 경험의 목록 혹은 암호책'의 존재를 인지하고 펴보는 귀한 계기였다. 더불어 30여 년간 이어진 두 저자의 진심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와 작가들의 경험이 여러분 각자를 건드리고 성장시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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