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과 돌봄에 대한 소중하고 용감한 기록
몇 년 전부터 아이들을 돌보며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언젠가 공동양육자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이 예측불가능하고 빡센 일을 해낼 수 있는 건 아이들이 매일매일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끼는 ‘뽕‘때문인 것 같다고. 어제는 하지 못하던 것을 오늘 해내고, 거기에 용기를 얻어 또 도전하는 이 생명체 앞에서 이따금 할 말을 잃곤 하니까. 게다가 보드랍고 통통하고 촉촉하고 달콤하다.
그리고 다만 추측하며 이야기 나눴다. 삶의 끝자락은 아마도 모든 것이 반대이지 않을까… 어제는 되던 것이 오늘은 되지 않고, 그 무력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몸도 말도 지난 기억도 거칠고 딱딱하고 메마르기 쉽다. 그저 하루하루가 소멸과 죽음이라는 결론으로 가는 여정이다.
두 시절의 공통점은 누군가의 절대적인 돌봄이 필요하다는 점과, 진솔하고 상세한 경험을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낭만적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글에 비해 ’진짜‘ 어떤지를 알려주는 글은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
작가는 어머니 삶의 끝자락을 함께하며 그 경험을 아주 상세하고 솔직하게 기록했다.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이며 돌봄에 깃든 편견과 사회적 이슈도 그대로 녹아있다. 서늘한데 위로가 된다. 읽으며 때론 속이 시원했고, 종종 먹먹했다. 작가 자신의 혼란과 모순도 그대로 표현해 주어 독자로서 무척 고맙고 힘이 됐다.
책이 두껍지 않은데도 읽는 데 꽤 오래 걸렸다. 하루의 노동과 그 뒤에 이어지는 돌봄 노동을 마치고, 곧 다시 이어질 돌봄 노동의 틈인 새벽에 조금씩 읽어야 했으니까. 글에 흡인력이 있어 단숨에 읽기 쉬운데 이렇게 천천히 읽을 수 있어 더 좋았다.
어떤 날은 몇 장 읽다 보면 내 기척에 잠이 깬 녀석(들)이 안겨들었다. 불을 끄고 품에 안아 다시 재우며 방금 읽었던 문장들을 되뇌었다. 세세한 일에 지나치게 줌인되어있던 내 의식이 줌아웃된다. 내가 삶의 여정 어디쯤 있는지, 좌표를 찍어본다. 이 책을 읽은 새벽과 이어지는 아침엔, 좀 더 너른 마음으로 나와 아이들을 돌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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