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신 알렉사? 인공지능 쓰기 전에 인간지능부터
오늘은 AI시대에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매거진 첫 글에 밝힌 대로 2020년 전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중심에 둘게요. 여기서 AI는 특정 서비스뿐 아니라 인공지능이 탑재되는 미디어, 인터넷, 스피커를 아우릅니다.
이렇게 연령대와 대상을 구체화하는 이유는 AI와 아이들의 관계에 AI의 발전과 활용범위, 발달 단계(생애초기 3년, 4-7세, 초등 저/고학년, 중고생), 포커스(교육, 정서, 놀이, 미디어 등등)가 종횡으로 엮여있기 때문입니다. 연령과 대상을 정의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엇갈리기 쉽습니다.
2020년생 아이들은 코로나 시기에 생애초기(만 3세 이전)를 보냈습니다. 언어환경의 대부분이 양육자와 집안에서 나눈 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반면 학령기 친구들은 또래집단과 사회화가 중요했기 때문에 코로나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펼쳐집니다. 세밀하게 나누어 접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른들은 30대나 50대나 코로나의 영향이 엄청나게 다르지 않지만 아이들은 한 해 한 해가 어마어마하게 다르니까요.)
그러다 아이가 겨우 기관에 다니거나 외출이 자유로워진 4살 즈음엔 AI가 쓰나미처럼 밀어닥쳤습니다. 인지능력이 폭발하는 이때, 하루 평균 3시간 6분* 미디어를 이용하는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요?
미국 시카고대학병원 소아외과 교수인 데이나 서스킨드 교수가 최근 아래와 같은 글을 기고했어요. 그는 청각 장애 아동에게 듣는 능력을 돌려주는 인공와우 수술의 권위자인데요, 생애초기 언어환경의 차이가 아이의 정서발달이나 인지능력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TMW(Thirty Million Words) 센터를 설립하여 아이들이 풍성한 언어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https://thehill.com/opinion/technology/5373324-ai-threats-child-development/
제목의 'rewire'에서 시작해 볼까요? 재구성, 직역하자면 배선을 바꾼다는 의미네요. 저는 아이들의 뇌가 발달하는 시기에, AI가 신경망을 재배선할 수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데이나 서스킨드 교수는 이미 AI가 아이들의 뇌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글에 링크된 CNN의 2018년 기사에 20개월인 캐머런의 사례가 등장하는데요. 이 아이가 처음 알아들은 네 단어는 엄마, 아빠, 고양이 그리고 ‘알렉사‘였다고요.
알렉사 외에도 오케이 구글이나 시리 같은 명령어로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물건을 사고, 원하는 것을 이루는 세상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이 상호작용을 그저 보고 배울 뿐 아니라 이 상호작용의 주체가 됩니다. 데이나 교수는 AI가 아이들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상하다시피 산업 혁신의 속도는 연구나 규제의 속도를 훨씬 앞지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발달이나 행복은 이러한 혁신의 목표나 핵심이 아니죠.
해외에서 눈을 돌려 대한민국의 현실을 들여다볼까요? '에잇 포켓'이란 단어를 들어보셨지요? 출생률은 떨어지지만 일단 한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와 양가 조부모 그리고 삼촌 이모고모까지 최소 여덟 개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온다는 의미인데요. 이렇게 구매력이 있는 시장이다 보니 AI스피커, 태블릿 교육 등 다양한 업체가 AI를 끌어안고 영유아 시장에 달려듭니다. 미래시대엔 AI를 활용하는 능력이 필수라고요. 어떤 상품은 양육의 어려움을 덜어준다는 미명아래 양육자와의 상호작용까지 대행해 줍니다.
https://biz.chosun.com/it-science/ict/2024/12/08/GQLCL2YT4ZBHJHMBR26Y4XWDAM/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902225464g
저는 개인적인 호기심과 더불어 분별력을 가지기 위해서 여러 디바이스, 서비스들을 직접 사용해 보고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완고하게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영점을 조정하듯 유연하게 작은 결정과 실험을 해보고 있지요. 데이나 교수는 이 상황에 대해 뭐라고 조언했을까요?
적어도 당분간은 당신(양육자)을 대체하는 기술들은 거부하세요.
생애초기 상호작용은 그냥 대화나 의사소통기술이 아닙니다. 세상이 안전하다는 믿음의 토대, 누군가에게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존중받는 경험입니다. 이 경험 없이 세상에 나가고, 인간의 지능을 복제해 낸 인공지능과 만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데이나 교수도 그래서 위와 같은 조언을 한 거겠죠.
2025년 7월 현재, 취학을 앞둔 아이들과 AI에 대한 저희 원칙은 '먼저 인간지능을 갖추게 돕는다'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다음 글에 써볼 생각입니다.) 인간지능이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잠자리 독서, 힘듭니다. 읽어주다 졸아서 제가 책을 떨어뜨리면 아이들이 그제야 '에휴, 엄마 그냥 자자, 자!‘할 때도 부지기수죠. 하지만 오늘도 저는 책을 펴 들고 나란히 눕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문자를 읽어주는 음성만은 아닐 테니까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간 2023년 어린이 미디어 이용조사 결과입니다. 만 3세에서 9세 아동을 대상으로 조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