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지능 갖추기

by 이진희

지난 글에서 ’아이들이 인간지능을 먼저 갖추게 돕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많은 양육자가 어렴풋이 동의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글은 인간지능을 구체화하고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https://brunch.co.kr/@giraffesister/281


인간지능을 먼저 정의해야겠지요. 말 그대로 인간이 가진 인지능력을 의미합니다. 미국 하버드대 인지교육학 교수 하워드 가드너(Howard Earl Gardner , 1943~)는 아홉 종류(언어, 논리수학, 음악, 신체운동, 공간, 정서, 자기 이해, 자연친화, 실존)의 다중지능이론을 제안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역사학자, 철학자이자 작가인 유발 하라리가 구분한 지적, 정서적, 신체적 기술에 기반해 '배경지식', ’문제해결능력‘ 그리고 ’사회정서와 체력‘으로 나누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배경지식

얼마 전, 호쿠사이 작품을 주제로 한 미디어 전시를 봤습니다. 유키요에가 목판화인만큼 나무를 깎고 면을 다듬어 그 위에 종이를 덮고 물감이 스미는 과정이 화면 안에서 펼쳐졌습니다. 그걸 보며 순식간에 초등학교 미술 시간으로 돌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조각도를 쥐고 조마조마해하며 고무판을 깎는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 위에 종이를 덮고 롤러로 잉크를 묻히니 이상한 부엉이(?)의 모습이 드러났던 순간 말입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긴 했지만 제 손발과 옷과 책상 여기저기가 온통 잉크 투성이었습니다. 몇 분 몇 초만에 그 기억이 소환되게 목판화의 특질을 재현해 낸 기획력이 놀라웠습니다.


현실에서 목판화를 경험하지 못한 친구가 이 미디어 작품을 본다면 어떨까요. 과연 제가 느낀 경이로움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요? 태블릿 화면에 손가락으로 RGB 컬러만 채워본 경험으로 저 다양한 색감과 제작과정을 온전히 감상하긴 어려울 겁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제가 후지산 주변을 여행한 적이 있고,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를 체험하고, 당대 사람들의-척박하지만 자연 앞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삶을 이해했다면 감동이 더 컸겠지요. 이렇게 글과 경험으로 폭을 넓힐 때, 감상은 물론이고 창작이나 기획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충분히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를 거치며 배달과 온라인 서비스가 강화되면서 기회가 더욱 줄어들었죠. 그래서 전 '일부러' 아이들과 현실 세계로 뛰어듭니다.


가령 배달로 주문할 수 있는데도 굳이 시장과 마트에 갑니다. 장 보며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머, 이걸 모르다니' 싶은 대목을 발견하곤 하죠. 예전(농경사회 -> 공업사회)에 애들이 '쌀은 공장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요'했다는 일화처럼 말입니다.


세탁소에서도 아이들이 놀라더군요. 누군가가 다 수거해 가고 빨아서 갖다 주니 본 적이 없지요. 세탁소 천장에 설치한 행거, 다른 사람들이 맡긴 옷을 왜 비닐로 싸두는지, 세탁기계는 집에 있는 세탁기와 스타일러와 뭐가 다른지, 다리미엔 왜 줄이 달려있는지 등등 다양한 질문을 주고받습니다.


책 읽기나 여행은 세상 경험의 진수죠. 글을 읽으며 전혀 만날 일 없는 사람을 만나고 가보지 못할 곳을 갑니다. 책장을 펼치며 자신만의 여정을 떠납니다. 여행을 종종 가고, 가서도 맛집 기행보다는 시장이나 골목을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꼭 팸플릿이나 굿즈, 뮷즈 등으로 실물을 확보합니다. (박물관, 미술관 관계자 분들 감사합니다.)



#2. 문제해결능력

이른 시기에 스스로 키워야 하는 중요한 능력, 바로 문제해결능력입니다. AI는 바로 이 문제해결능력을 대행해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챗GPT를 검색이나 글 쓰는데 활용하는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https://m.ddaily.co.kr/page/view/2025040918084705949

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문제가 무엇이지? (발견)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지? (설계)
그 방법을 실행하는데 무엇이 필요하지? (검색)
해결! (실행)
결과가 어떤지 (평가)

흔히 인공지능 모델을 검색용으로 많이 사용하지만, 설계와 평가도 너무 훌륭하게 해 냅니다. 그럼 사람은 문제제기만 하면 되겠네요? 아니요. 문제도 스스로 찾아냅니다. 일부 실행(문서 작성 및 업로드, 데이터 분석, 챗봇 통한 24시간 CS 등)도 자동화할 수 있지요. 이렇게 인공지능이라는 또 하나의 두뇌(듀얼브레인)를 갖추면 엄청난 효율과 생산력이 나올 줄 알았는데 왜 전 점점 노 브레인이 돼 가는 기분일까요?


이 과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미래가 판이하게 달라질 겁니다. 아이들이 이걸 할 수 있게 돕는 건 역시 대화와 독서입니다. 대화는 특히 답이 있는 닫힌 질문보다, 순수한 호기심을 품은 열린 질문을 중심에 두지요. 어떤 이야기든 평가-분석하지 않고, 공감자로서의 역할을 할 때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설계해서 해결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주로 하는 질문에 문제해결 과정이 그대로 담겨있네요.


네가 보기엔 뭐가 문제 같아? - 발견

너희 각자가 원하는 건 뭐야? - 발견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 발견, 설계

아,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설계

그걸 하려면 뭐가 필요해? - 설계, 검색

엄마가 뭘 도와주면 될까? - 실행

이제 뭘 하면 될까? - 실행


독서가 왜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주냐고요? 일차원적으로는 글이라는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할 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책은 저자가 문제를 발견하고 거기에 대한 논리적 틀을 설계한 후 필요한 지식을 적절히 끌어와서 자신만의 답을 만든 결과물입니다. 그 결과를 읽으며 메타인지하고 평가해서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게 진정한 독서지요.



#3. 사회정서와 체력

유발 하라리가 <넥서스>를 통해 손과 두뇌, 머리와 가슴, 신체적 능력을 골고루 균형 잡히게 갖추기를 권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적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비추어보면 사회정서와 체력이 단단한 근간이 되리라고 봅니다.


최근 AI시대 삶의 필수 기술을 연습하는 콘텐츠, <가지가지연습실> 제작을 위해 교육 관련 전문가들을 두루 만났는데요. 한 분이 농담처럼 요즘 아이들 키우기 정말 쉽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같은 기본적인 인사말을 하는 아이들이 드물다고요. 수업시간에 제자리에 앉아, 교사와 눈을 마주치고, 숙제를 해오고, 질문에 대답을 하기만 해도 훌륭한 학생으로 평가받는다고 해요. (사회정서에 대한 고민은 이어지는 글에 따로 담겠습니다.)


체력은 다소 의외이실 수 있는데 여러 전문가가 강조합니다. 예전부터 공부든 일이든 관계든 체력에서 비롯된다는 게 삶의 진리죠.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이 신체적 능력이 무엇보다 인간 고유의 것이 돼 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이들은 뇌뿐 아니라 몸이 한창 발달하는 중이니 미디어나 게임이나 인공지능에 '시간'을 빼앗겨 이 신체발달이 더뎌지지 않게 신경 써야 합니다.


저희는 아이들과 한 달에 한두 번 장편물을 함께 보는데요. 예전에 <월-e>를 보고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특히 영화 속 인간들이 이렇게 이동기기에 앉아 각자의 눈앞에 펼쳐진 태블릿만 보는 게 아이들에겐 다소 충격적이었나 보더군요.

저도 이들이 스스로 걷지도 못하는 장면에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설마 걷는 능력까지 퇴화됐을 줄이야!


그래서 쉼 없이 대화하고, 해만 뜨면 뛰어놀고, 세상을 돌아다니고, 주저앉아 책을 봅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느라 모니터와 휴대전화에 눈둘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양육한다고 하면 좀 유별나다고들 합니다. 인공지능과 코로나와 스마트폰 출시 이전 아이들은 모두 이렇게 자랐었는데 말입니다. 너 혼자 버텨봤자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여전한 사실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 아닐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I와 함께 자라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