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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결노트

<연결노트-19> 나를 긁히게 하는 사람들

by 이진희

'긁는다'는 말이 자주 등장해요. 누군가 혹은 뭔가가 나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기분이 상했을 때 쓰는 표현이죠. 절묘합니다. 긁히면 아프고 거슬리지만 상처가 나서 피가 줄줄 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대놓고 화를 낼만큼은 아니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불편한 자극이 분명 있습니다.


저는 이 표현을 듣고 '적 이미지 프로세스(The enemy image process)'가 떠올랐어요. 비폭력대화 연습 중 하나인데요. 타인이나 상황에 대한 판단과 부정적인 인식을 더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전환하는 과정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적(敵)'으로 인식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다뤄보는 거죠.


맞습니다. 이번 연결노트 제목은 이 노래에서 왔어요.

이 연습의 첫 단계는 그룹을 이루어 각자가 자극받는 여러 말과 비언어적 요소를 꺼내놓는 겁니다. '스읍~' 침 넘기는 소리부터, 미간의 주름, '부분'이란 단어를 자주 쓰는 습관까지... 각자 불편하게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다양한지요. 아니 그런 게 자극이 된다고? 상상도 못 한 경험담에 여기저기 웃음이 터지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 자극으로 인해 우리가 하는 생각을 들여다봅니다. 가벼운 인지왜곡에서부터 편견, 때로는 증오에 이르기까지 넓고 깊었습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우리가 쉽게 서로 오해하고 갈등하고 긴장하는지도 발견합니다.


이어서 이유를 찾습니다. 대부분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더군요. 자극의 주체와 내용은 달랐지만, '안전', '편안함' 같은 욕구에서 만납니다. 긁히는 나와 연결되고, 나를 긁히게 하는 사람들 역시 실은 모두 안전하고 편안하길 원한다는 걸 알고 나니 한결 안심됩니다.


오늘도 긁히셨나요? 안전하고 편안하고 싶은 나와 만나세요. 긁히는 게 두려워서 포기한 도전이나 단절된 관계도 기억해 주세요. 용기와 호기심이 조금이나마 생겼다면 자극이 됐던 사람이나 순간을 잠시 떠올려보세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도 좋아요.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이요. 여기저기 긁히고 또 긁히고, 때론 넘어지지만 아이는 다시 낯선 길로 새 걸음을 내딛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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