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도시는 절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비싼 집에 아무리 인테리어를 잘 해 놓아도 도시가 건강하지 않다면?

by 이진희

61차 하우징쿱 포럼 <도시의 발견 : 도시재생에서 도시혁신으로>에서 듣고 느낀 바를 정리했습니다.

강연자는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입니다.



"도시는 절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이 명제는 강연의 서두이자 기억에 오래토록 남은 명제입니다. 도시공간은 자본과 그 자본과 한 몸인 정치권력이 좌지우지합니다. 강연자는 자본과 정치권력에 대응해 사회적경제, 마을기업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자체나 정부가 기업보다는 시민권력에 힘을 실어주는 시대가 열렸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우리가 비싼 집을 대출 받아 사서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큰 돈을 주어 리모델링을 한다해도 도시(공유/공공공간)가 쾌적하지 않다면 행복은 반쪽일 뿐입니다. 통학로가 위험해서 아이를 걸려 학교에 보낼 수 없고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써야한다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후진국도 부자들의 개인공간은 풍요롭습니다. 공유공간과 공공공간이 풍요로워야 진짜 선진국입니다.


우리는 내 집과 같은 개인공간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지만 길거리, 공원 같은 공유공간 대한 관리와 책임은 정부의 몫으로 일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강연자는 이런 현상을 '개인공간 과다집착증', '공유공간 불감증'이라고 명명합니다.


차고지 증명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 역시 공유공간에 어지간히 무감각했구나 깨달았습니다. 차는 당연히 골목길에 세워도 되는 게 아닌가요? 거주자 우선주차제도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고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개인이 점유공간을 확보해야만 개인자산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차고지 증명제'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 제조사를 비롯 여러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방해로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소유자산이 공유공간을 점유하는 상황이 당연시되면서 우리 골목길은 주차장이 되었습니다.


서울은 과거 개발논리에서 이제 '재생'의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지방창생(단순히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생한다는 의미)과 도시혁신의 단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는 지방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지방 사이의 세수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고향납세제도가 2008년부더 토입되었고, 국가가 지역에 대한 데이터를 충실히 작성하고 공개(http://resas.go.jp)함으로서 사람들이 지방에서 창업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합니다.


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공 교통서비스를 도입한 브라질 꾸리찌바는 도시계획에 관심있는 이들에겐 이미 유명한 도시입니다. 그 중심에는 Jaime Lerner라는 시장이 있는데요. 그는 1974년 땅 위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굴절버스를 도입해 개인 운송수단의 수를 혁신적으로 줄입니다. 그 후 25년 간, 이 시스템은 전세계 83개 도시로 확대됩니다. 그가 2007년에 했던 TED강연 <도시의 노래>는 비록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미있는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haKh9mCk3xk


그는 도시의 시설과 장소를 늘 다채롭게, 24시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쓰게 만들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청년허브, 시민청, 서울혁신파크, 따릉이 같은 서울시 정책에도 잘 녹아있습니다.


공간이 한꺼번에 다 바뀌기는 어렵지만 원동력이 될만한 한 지역을 바꾸면 주변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그는 이를 "도시침술(Urban acupuncture) 요법"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침은 그 자체로는 아주 가늘고 한 부위에 꽂힐 뿐이지만 경혈을 자극하고 몸 전체가 잘 순환되게 만듭니다. 이런 효과가 공간에도 적용된다는 뜻이겠지요.


일례로 지난 20일 문을 연, 서울7017이 떠올랐습니다. 잠시 들러보니 이제 막 개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서울 서부역, 중림동, 만리동 일대가 한결 밝아졌더군요.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공유주택도 지역사회에 약이 되는 한 방의 '침'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간의 도시개발은 시민이 아닌 자본의 욕구에 충실했습니다. 거기에 매체도 동참해서 브랜드 아파트에 살면서 멋진 자동차를 모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죠. 도시의 여건에 맞는 해법이 아니라 일률적인 개발논리로 신도시를 건설하고 재개발과 재건축을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도시는 팔아야 할 상품이나 근사한 작품이나 수익을 내야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자 자연, 역사, 사람이 어우러져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생명체입니다.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계속 돌보고 되살려야 하는 존재라고 강연자는 주장합니다.


대형 건설사가 시행하는 아파트 청약이나 분양시장에서 눈을 돌려, 공간을 되살리면서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거주공간을 만들어가보면 어떨까요? 당장은 겁이 납니다. 큰 돈이 걸려있고 우리 삶에 워낙 큰 영향을 주니까요. 반대로, 그러니까 더욱 지혜롭게 결정해야하지 않을까요? 저역시 한때 하우스푸어였고, 전세세입자와 월세세입자까지 서울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거주형태를 거쳤습니다. 그 때마다 '어쩔 수 없지', '남들도 이렇게 하는데'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돌아보고 결정하고 싶습니다. 1~2년에 한번씩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주거를 원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부채를 지고 싶진 않고 이웃과 타인처럼 모르고 살기보다는 관계 안에 살고 싶습니다. 물론 서로의 공간과 권리를 존중하는 선에서요. 마당이 있으면 좋겠지만 관리에 손이 많이 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이런 제 욕구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은 비단 개인공간 뿐 아니라 공유공간, 공공공간에 대해서도 제가 원하는 바를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자꾸 표현하고, 현명하게 소비하고, 결정하면 도시는 분명 달라진다'는 배움도 함께 선물받았습니다.



www.kmooc.kr

* 시민을 위한 도시학 개론 수업이 오픈강좌로 개설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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