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직장문화와 원격근무
원격근무는 생산성을 높인다. 콩나물 시루처럼 끼여서 출근할 필요도 없고, 상사 눈치를 보며 불편한 옷을 입고 책상에 앉을 필요도 없다. 그냥. JUST. 내가 편한 환경에서 일하면 된다. 해외에서는 원격근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원격근무를 도입한 기업이 거의 없다. 전 국민 인터넷 이용률 90%(2017년 기준), 인구 대비 이동통신 보급률 122%(2017년 3분기 기준)을 넘어선 IT 강국. 대한민국이 인터넷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원격근무에는 보수적이라니. 이럴수가. 최근에서야 정부 주도하에 클라우드 발전법,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과 유연근무제 도입을 시작했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원격근무 보급률은 매우 낮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더불어 생산성을 높이는 근무방법에 대한 고민은 많아지고 있지만, 실제 도입을 위해서는 문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점이 많다.
우리나라의 직장문화는 1970년대 근대화를 거치며 빠르게 형성되었다. ‘잘 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의 구호 아래에서 개인보다는 조직이 중시되었고 자율보다는 규율에 따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러한 근대화 발전과정과 유교문화의 접목은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권위적으로 만들었다. 수직적이며 상급자에게 많은 권한이 부여되었으며 하급자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 상급자의 지시를 따르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권위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눈치를 부른다. 회의시간에 팀장님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면 회의실의 모든 시선이 이의를 제기한 사람에게 몰린다. ‘적당히 눈치껏 하자.’, '유두리 있게 하자.'는 말이 자연스러운 조직 내에서 어떻게 원격근무를 도입할 수 있을까? ‘오늘은 집에서 일할게요’라는 말을 위해 눈치 보며 할 바에야 그냥 출근해서 일하겠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원격근무의 도입을 방해하는 요소는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인사평가. 원격근무가 도입된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업무에 중점을 둔 평가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조직의 인사평가는 상급자의 의견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상급자가 인사평가 시 매기는 점수뿐만 아니라 진급 시에는 팀 내 서열에 따라 분배되는 고과 점수 등 공정함과 거리가 먼 평가방식이 은연중에 존재한다. 심한 경우, 실적을 쌓기 위해 상급자의 눈에 들기 위해 야근(일하는 척), 깜짝 회식, 주말 호출 등에도 군말 없이 응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의 성과가 혼자 일을 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평가에 있어 업무능력이라는 본질이 호도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원격근무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못하는 것에는 개인의 성향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영향이 크다. 주입식 교육은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험과 성적 중심의 교육은 더 높은 성적으로 더 큰 조직에 들어가겠다는 목적만 남긴 채 개인의 자발성을 깎아내렸다.
그래서 막상 원격근무를 시행했을 때 조직원들이 스스로, 스스로의 과제를 설정하고 수행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현상이 발생한다. 조직 내에서 개인에게 충분한 모티베이션이 가능한 HR 없이 원격근무를 도입하면 실패사례만 늘어날 것이다.
원격근무는 또 하나의 선택지다. 원격근무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IBM의 경우, 사무실 근무가 혁신과 창의성을 고취시킨다는 근거로 2009년부터 8년간 시행해오던 원격근무 제도를 폐지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은 원격근무 대신 더 많은 창의성의 발휘될 수 있는 사무실 구조나 복지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격근무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잘만 활용한다면 자율성을 최대로 발휘하고 비용적으로도 사무실 임대료나 개인의 이사/통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강점이 있다.
최근에는 원격근무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적 저성장이 유지됨에 따라 개인이 평생 동안 영속 가능한 회사가 없다는 점, 기업이 개인에게 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대두된 워라벨(Work & Life Balance) 열풍, 따라서 일을 직업이 아니라 내가 수행해야 할 평생의 업이라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더 이상 조직에서 월급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개인으로서 살아야 할 이유를 제시해주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현재, 일을 하는 척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그만큼의 자유를 주는 것이 기업의 효율성과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뭘 해도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그 분위기 속에는 획일화된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된다면, 눈치보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조금은 더 도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물론 시간은 꽤 필요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