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 대한 기준은 연애 중에도 드러났다. 스무 살. 십 대의 앳됨을 벗어내고 새로운 시대로의 설렘이 드리우는 시기였다. (그리고 새로운 양상으로 강박이 나를 좀 먹는 시기이기도 했다.)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강박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옅어지고 많은 부분이 사라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식당에 가도 간판을 다 훑어보지 않았고, 새로 받은 교과서에 뭐가 묻지는 않았는지 검수하지 않았다. 손은 대체로 필요할 때만 씻었고, 로션도 적당량만 덜어 피부에 잘 도포하고는 더 바르지도 않았다. 아직 자잘하고 남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나만의 강박행동이 있기는 하지만 나를 괴롭게 할 정도는 아니다. 왜 사라졌을까, 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귀찮아서'인 것 같다. 강박 행동은 나를 너무 피곤하게 했다. 3분 안에 끝날 것을 5분 동안 끌어가고, 5분이면 끝날 것을 10분 동안 끌고 갔다. 어쩔 때는 규칙적 행동을 위해 숨을 참거나 쉬고 내쉬는 숨의 길이를 조절해야 했고 난 그 모든 것들에 지쳐버리고 만 것이다. 그 지쳐버림에, 그 귀찮음에 강박 행동들은 오랜 상처가 드디어 아무는 것처럼 옅어져 갔다. 그리고는 반대급부처럼 질적으로 심화된 강박이 마음을 들이받았다. 나를 더 옥죌 '강박 사고'였다.
"나를 사랑하기는 해?"
스무 살이 되어 처음 사귄 사람이었고 고작 100일쯤이었다. 종종 갈등이 있었던 관계에서 그는 나에게 내다 물었었다. 과연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충격처럼 다가온 그 순간의 감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다 걸린 것처럼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그 느낌. 마음의 온도계에 이상반응이 일듯 무섭게 달뜨는 심장의 온도.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낭만이 아니었다. 사랑이라고 하면 그 사람밖에 안 보이는 듯 오로지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는 몰입 상태가 아닌가? (비합리적인 것은 알지만) 그렇다면 난 과거의 연애는 떠올려서는 안 되며, 과거의 연애나 장면이 떠오른다는 것은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렇다면 난 지금 이 사람을 속이고 있는가?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왜 나는 이 관계를 끊어내지도 못하고 배회하고 있는가. 관계는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논리적이지 않은 인과관계가 끊임없이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강박 사고가, 침투적인 사고가 나를 지배해 왔다. 강박행동은 마치 어린 시절 장난이었던 것 마냥 더 크고 무겁게 말이다.
그 사람과 연애 관계를 이어가다 혹 예전 만났던 사람과의 장면이 떠오르면, 그 장면에 수반된 오묘한 감정(추억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떠오르면 나는 당장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화장실에, 직장일을 하다가도 화장실에 가 변기에 앉아서 생각한다. 스쳐 지나갔던 사고들을 조직화한다. 떠오르는 감정들을 해부한다. 모든 것을 추리하듯 조합하고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은 후 나는 화장실을 벗어난다. 스스로 안심할 때까지. '괜찮아. 넌 괜찮은 사랑을 하고 있고, 누구도 속이지 않았어. 지금 이대로도 잘하고 있고 괜찮아'라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도 화장실에 앉아있고 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