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책 읽기를 (본격적으로) 즐거워하게 된 것은 20대 중반쯤이었다. 나약한 모습 보이기도 싫고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마저 부담스럽던 나는 마음의 짐을 홀로 해소하기 일쑤였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독서인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추리소설, 20살 초반에는 심리학 도서, 20살 중반에는 일반 소설, 20살 후반에는 고전 문학.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이었지만 나름대로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서 오는 자기만족이 있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책을 빨리, 많이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귀찮음이 컸고 주위 유혹에 잘 흔들리는지라 독서를 게을리한 것도 한몫한다. 이거야 별 대수롭지가 않았는데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이유 중 '대수롭지 않은 이유' 한 가지는 바로 '책을 읽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이다. 혀가 경직되고 호흡이 느려지면서 숨이 가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경험을 종종 해왔다. 단순히 독서를 한다고 느끼기에는 너무 이상한 증상이었던 것이다. 남편에게도 언제 한 번은 의아하게 반문할 정도였다.
모든 깨달음이 경험 또는 우연에서 비롯되듯 증상의 사유도 우연찮게 맞닥뜨렸다. 이게 바로 '속발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속발음이란 말 그대로 '속으로 말하는 현상'이다. 속발음에 대해 네이버 블로그에 찾아보다가 속발음 또한 강박증의 일종이라는 글을 보고 '아차, 또 너였어?'라는 일종의 반가움과 같은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속발음에 대한 강박이란, 단순히 속발음을 하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완벽하게 읽어야 할 것 같은 압박과 그러지 못했을 때의 불안'을 수반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져오던 독서 습관,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완벽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강박이 성인기에도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잘 살고 있는 성인'이란 틀 안이라서 흐릿했을 뿐 여전히 강박행동이 또 다른 형태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속발음을 줄이기 위해서 '덩어리 위주로 끊어 읽기', '이해가 안돼도 일단 넘어가기'와 같은 방식들이 제안된다. 사람마다 체감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꽤나 유용한 요법이라고 생각된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속의 갑갑함은 줄어들었다. 과연 이 요법이 모든 연령층에 해당되는 요법일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완벽하게 읽는 것에 대한 불필요함을 인지하고 체득했기 때문에 더욱 수월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불안을 견디기 힘든 만큼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갉아먹는 것이 강박이란 놈이 부리는 폭력 같다. 나조차도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데 과연 타인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 힘듦의 정도를 알 수 있을까. 이토록이나 강박은 이해할 수 없는 깊이로 고독하고 홀로 이겨낼 싸움을 가뜩이나 벌려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