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강박장애에 대해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남는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요컨대 맥락은,
- 강박장애는 그 증세가 악화되었다가 호전되기를 반복하다 보니 상담실이나 병원에 찾아오는 게 느리다
- 겉으로 표출되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가 더 괴로운 병이다
라는 점이다. 강박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나조차도 강박에 대해 진단을 받거나 병원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나 혼자 힘들어하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괜찮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전문가와 대면해보지 않은 것은 또 아니었다.
난 늘상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았는데, 언제 한 번은 '강박 전문가'가 되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박 전문 상담소라던가 프로그램 개발자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경험해서 알고 있기에 공부에도 흥미가 있었고, 잘 갈고닦으면 나만의 전문 분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정신질병은 한 가지 맥락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런지 그 당시에는 강박 전문 상담소라는 개념도 많이 보지 못했었다. 한 마디로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시장 안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곳이 있었으니, 말 그대로 강박을 전문으로 공부하고 상담하는 연구소였다. 거기서는 강박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 상담뿐 아니라 때마다 강연도 진행했었고, 관심 많던 나는 어느 하루 강연을 신청했었다. 강연은 부산에서 진행되었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강연을 위해. 그러면서 겸사겸사 가족 여행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아쉽게도 그날 강연은 인원 미달로 취소가 되었고, 연락이야 전날 받았지만 가족들과 바람도 쐴 겸 부산행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동시에 혹시 하는 마음에 연구소에 연락하여 강연을 위해 서울에서 왔으며, 가능하다면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강연을 위해서 온 수강생을 위해 시간을 낼 의무도 필요도 없었지만 대표님은 호의적으로 응해주었다. 나를 만나주기로 한 것이다. 새하얗고 깔끔한 연구소(라는 이름을 내건 상담실). 그 안에서 대표님과 단 둘이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그렇게 나누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
"보니까, 강박증을 앓고 있으신 건 아닌 것 같네요"
라는 전문가의 말.
물론 진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를 '강박장애 환자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명확한 증세는 나를 스스로 진단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난 강박증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대표님은 그 길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게 여태껏 마음에 남는 이유는 제 아무리 겪어보고 공부하고 환자를 만나본 전문가조차도 간단히 봐서는 강박증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 그게 내가 가진 병의 깊고, 외로운 면모를 두각 시킨다는 쓸쓸한 이유에서였을까? 아니, 사실은 완벽하게 누군가를 속이고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이 대면을 가장 마음에 남게 한 이유일지 모르겠다.
이토록 때로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고통이 더 괴롭고 큰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