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를 마라토노마코스(마라톤의 전사란 뜻)라 불렀다.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좋은 사람은 나이가 많든 적든, 성(性)이 틀리든, 많이 배웠거나 적게 배웠든, 나보다 뛰어나든 뛰어나지 않든 그런 기준에 놓이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한 분야의 스승이면서, 친구처럼 막 굴기도 하고, 가끔은 그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매서운 다그침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만약에 운이 좋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오랜 기간 좋은 우정을 쌓아가기도 한다. 물론 그런 스승은 여러 명을 가질 수도 있다. 명상을 가르치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마라톤 전사를 만난 것은 인생에 몇 안 되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아름다운 마라톤의 세계로 초대한 건 여자였지만, 나에게 러너의 삶을 가르치고, 끊임없이 달리며 성장하게 만들어준 사람은 바로 마라톤 전사였다. 나이는 같았지만 마라톤 동호회 선배였고, 밥벌이를 위해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고, 집은 멀었지만 정모나 훈련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Sub-3(3시간 내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모든 마라토너의 꿈이다. 그는 풀코스 완주가 2시간 59분 12초라는 놀라운 기록을 가진 사람이다. 마라톤 전사를 만나 그의 지도를 받고, 함께 훈련하며 모든 주로를 달리던 때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많이 깨닫고 배우고 성장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러너는 달리기가 일상적인 생활인 사람이다. 혼자 달리는 사람도 있고, 동호회에 소속되어 함께 달리는 러너도 있다. 마라톤 동호회에서 그는 조용한 사람이다.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름 빛내려 하지 않고, 멋진 복장과 폼도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자기의 페이스를 지키며 달리는 사람이다. 자기의 훈련 시간엔 오직 자신의 몸과 기록을 위해 훈련에 집중했고, 나와 같은 초보자와 함께 달릴 때면 느리면 느린 대로, 전력을 다해 질주하면 정확히 그 속도에 맞춰 달려주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는 정기모임 때나, 훈련이 있는 날이면 일 분 일 초도 어기지 않고 제시간에 나와 준비 운동에 열심이었고, 먼저 인사하고, 처음 나온 회원의 이름을 외우고, 함께 달리면서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달리기에 대해 가장 많이 알았지만 자세나 고칠 점을 제외하고는 질문하기 전엔 먼저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달리기의 경험이 가장 많아도 초보자나 이제 막 중급으로 실력을 키우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관철하려 들지 않았다. 달리기의 규칙과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그리고 가장 소중히 자기 몸을 다루는 방법에 관해서 귀가 따갑게 이야기했다.
그가 달리는 모습을 누구든지 보았지만, 그의 기록을 알 수 없듯이, 마라톤 전사는 우리와 함께 달리며 시간을 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달리는 거리와 훈련의 목표가 정해지면 빠르기는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달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은 사람처럼 보였다. 트랙이나 장거리 LSD(Long Slow Distance, 긴 거리를 천천히 달리는 일) 경주할 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일을 싫어해서 거칠고 사납게 다그치는 그의 모습에 힘을 내 완주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그는 가장 먼저 회복하고 부상을 피하는 일을 우선했다. 경주를 마칠 때가 되어 근육을 풀어주고 스트레칭을 할 시간이 되면 그는 멀리 떨어진 곳이나 운동장 반대편에 가서 혼자 몸을 풀고 있었다. 그를 부르거나 아니면 몸을 이완하고 근육을 푸는 일을 방해받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자기 몸은 자기가 돌보아야 됨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격려와 칭찬은 사탕발림이라서, 그런 소리에 기분 내다가는 훈련 과부하에 힘들거나 부상이 올 수 있다고 늘 이야기했다. 하나의 훈련이 끝나면 그는 항상 다음 훈련을 준비했다. 일정을 확인하고, 참석자를 확인하고, 어떤 종류의 연습이 필요한지 기계적으로 생각했다. 훈련을 마칠 때 그의 얼굴에 기쁜 표정이 보인다면 모두가 스스로 정한 목표를 무사히 다 뛰었을 때라고 보면 된다.
대회가 열리는 날엔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큰 대회건 작은 대회건, 좋은 일이건 궂은일이건 가리지 않았다. 천막을 치는 일,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 현수막과 준비물을 챙기는 일 등 조직에서 필요한 일은 계획을 세우고, 질서와 체계를 세워 빈틈없이 일했다. 그에게 사소한 일은 단 하나도 없었고, 하찮은 일도 없었다. 마치 달리기는 그의 즐거움이지만 동료를 성장하게 하고, 보살피고 함께 달리는 일은 그의 사명인 것처럼 보였다. 달리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자랑 삼을 만한 게 아니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훈련이건 대회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할 때 그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은 보석처럼 빛을 발했다. 기상이 좋지 않거나, 낙오자가 생기거나, 준비물이 여의치 않을 때도 그는 침착하고 기민하게 반응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 훌륭한 리더는 지식이 많거나 경험이 많은 데서 오는 게 아니라 함께 달리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기장 기본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마라톤에 관한 한 그는 완벽한 교과서였으며, 질문에 대한 답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한 말로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이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이윽고 대회에 나가 거대한 포성과 함성으로 주로를 나설 때, 그는 무엇보다 함께 달리는 팀을 바라보고 천천히 나간다. 기분에 들떠 너무 성급하게 달리는 팀원을 누르기도 하고, 달리는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파워젤이나 테이프 등 빠뜨린 게 없는지 확인한다. 서서히 자기가 속도를 내야 할 때를 잠깐 기다린다. 손을 높이 들어 함께 전장에 나선 동료에게 인사를 하고 바람보다 빨리 달리기 시작한다. 그의 뒷모습은 바람을 타고 나는 갈매기나, 사냥에 나선 치타를 보는 듯 가볍고, 날렵한 모습이다. 발은 가볍게 땅에서 튕기듯 번갈아 올리고, 짧고 빠른 보폭은 수면을 스치고 나는 새와 같았다. 마라톤은 풀코스 42.19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려 완주하는 운동이다. 모든 러너는 약 35킬로미터 지점부터 달리기가 전혀 다른 운동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극한의 인내력 테스트'나 '누가 누가 걷나?' 하는 운동으로 이름을 붙여도 될 법하다. 멀리 결승점이 보이고 기진맥진한 채로 완주하면 기분은 날아갈 듯하다. 3시간 10분대로 가장 먼저 들어온 그는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동료를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며 격려한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간에 마지막 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심지어 다시 주로를 반대로 달려가서 퍼지거나 포기하기 일보직전의 회원을 구출해 함께 결승선에 도착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라톤에 관한 그의 모든 장점에 대해 일일이 칭찬이라도 하게 되면 자신도 선배로부터 배웠다는 말만 하며 웃기만 한다. 그도 역시 마라토너로 태어난 사람은 아니다. 마라톤 전사가 선배로부터 배우고, 다른 종류의 수련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의 정신과 육체에 의지해 달리면서 깨달은 것은 고스란히 나와 회원에게 전달된다. 마라톤 전사도 언젠가 달리지 못할 때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사실이 지금 우리가 달리는 일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다른 마라토너는 우리가 달리는 주로에 스며든 땀방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고, 우리가 지금 이루고 있는 전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들은 늘 마라톤 전사가 달린 길을 즐거운 웃음과 활기찬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달릴 사람이다.
인생에서 좋은 것은 영원하지 않기에 오래 남는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노을이 붉게 물드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문득 헤어질 때가 되었다. 전사는 조용히 말했다.
너는 몇 년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변화가 곧 너 자신과 달리는 길이 만들어 낸 의미의 전부다.
네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면 깨닫게 될 것이다.
인생이란 늘 자신과 달리는 길의 대결임을···.
도전하라.
너는 혼자가 아니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다.
기억하라.
네가 달리는 길에 항상 마라톤 전사의 기운이 함께 할 것이다.-見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