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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ptember Sky Mar 10. 2023

2023 고구려 마라톤 32 km 완주

좋은 날은 늘 짧다.



마라톤 대회 완주 메달이 화려하고 예뻤으면 좋겠다. 


2017년 겨울이 끝나갈 때 마라톤 입문하고 달리기를 몇 번 나가자마자 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국내에서 가장 큰 마라톤 대회 세 개중에 하나인 서울 동아마라톤이 열리기 한 달 전에 열리는 대회다. 잠실 보조 경기장에서 출발해 한강 변을 달리고 돌아오는 경주다.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대회에 나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처음부터 동호회 그룹의 일원이 되고자 했고 시간이 가면 더 잘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운 날씨에 자원봉사를 하러 나갔고, 2월 마지막 주였으니 추운 날이었다. 당시에도 동호회 부스를 마련해 주어서 천막이 둘러쳐진 부스에 회원들이 남긴 짐을 보는 일이 자원봉사가 하는 일이다. 달리기 시작한 지 7년 차에 접어든다.


2023 고구려 마라톤 대회, 일명 고구마


동료들은 쌀쌀한 날씨에 긴팔과 긴바지, 그 위에 동호회 이름이 적힌 싱글렛을 입고 모두 달려 나가고 텐트 안에서 책을 보며 지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어떤 거리를 달리는지, 왜 추운 날 대회에 참가하는지, 싱글렛은 머고 달리기 복장은 어떻게 하는 건지 정말 하나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정확히 같은 길을 밟는다. 처음엔 서툴고 어색하고 용어에 대해서도 모르는 상태로 입문하는 상태를 거쳐 조금씩 배우고 알게 되고 자주 하다 보면 몸에 익숙하게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열심히 하면 서서히 중급 수준의 반열에 오른다. 적당히 요령도 피울 줄 알고, 몸 상태를 의식해 달리기 거리와 빠르기를 조절할 줄도 안다. 특히 어떤 운동을 오래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갖추는 예의와 배려라는 것들도 배우고, 높은 장벽을 만나 자신의 한계를 보면서 겸손이라는 좋은 태도도 배우게 된다.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을 시작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단 열의와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시선을 그것에 조정해 삶에서 큰 부분이 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을 겪는다.



고구마 배번


3월 말에 열리는 서울마라톤 대회에서 풀 코스를 달리기 전에 보통 장거리 훈련을 한다. 약 32km를 마지막 훈련 삼아 달리는 대회가 역사 지키기 고구려 마라톤 대회다. 요즘 젊은 러너들은 고구마라고 부른다. 러너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대회고 겨울 막바지에 꼭 참가하는 대회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마라톤 대히를 시작으로 여름이 오기 전까지 본격적인 러닝 시즌을 맞이한다. 지금은 몸과 마음이 처음 하고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대회에 참가하고 즐기고 걷지 않고 완주하는 목표를 가지고 달리고 있다. 겨울도 다른 계절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할 일을 다 하고 봄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잠실 종합 운동장이 공사 중이라 한강 뚝섬유원지 한강시민공원 수변마당에서 8시에 집결해 9시에 출발한다. 6시에 일어나 기온을 체크하고 몸을 돌아본다. 큰 대회든 작은 대회든 모든 마라톤 대회는 약간의 설렘과 기대가 있고 긴장감이 든다. 이젠 담담할 만도 한데 아직도 아이처럼 군다.


32km B군에 배정을 받고 오랜만에 동료들과 함께 달렸다. 가장 잘 달리는 식자 선배와 현자는 풀코스를 달린다고 해서 한참 앞에서 달리거 있을 것이다. 민자, 경자, 선자, 원자와 함께 반환점까지 16km를 6분 30초에서 5분 50초까지 서서히 달렸다. 먼저 앞서 달리려는 원자를 꾹꾹 찍어 누르고, 500미터 앞서 달리던 경자를 민자가 잡아왔다. 초반에는 무조건 에너지를 아껴야 하고, 아낀 힘과 지구력은 후반에 써야 한다. 자신의 페이스를 잘 아는 것은 러너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서, 처음부터 속도를 높이거나 우왕좌왕 달리면 후반에 힘을 낼 수 없다.


고구려 마라톤 코스 맵



16km 반환점에서 늘 그렇듯이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간다. 이제부터가 후반 레이스 시작이다. 함께 달리던 동료들은 그들대로 잘 달리라고 인사를 하고 서서히 속도를 높인다. 시계를 보면 기록에는 도움이 안 된다. 주위에는 페이스러너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달리다 보니 가톨릭 마라톤 모임 회원 한 분이 달리고 있다. 운이 좋을 것 같았다. 옆에서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둘이 교대로 구령을 붙이고 기합을 넣고 서로 응원하며 계속 달렸다. 가끔 페이스를 확인하니 5분 10초 이내로 나온다. 역시 그들은 지루하고 힘든 마라톤 구간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구세주'같은 분들이다. 작년 강남 마라톤과 춘천마라톤에서도 이분들을 뵈면 뒤에 슬그머니 붙어서 따라 달렸다. 도저히 함께 따라가지 못하는 결국에는 헤어져야 하지만 그 순간까지는 적어도 결승점까지 남은 거리는 좁혀지기 마련이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할 때까지 둘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달렸다. 결승선에 들어와 서로 악수를 하고 감사함을 전했다. 둘이 동시에 생각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함께 달리지 않았으면 퍼지거나 걸었을 텐데 덕분에 잘 달렸어요."라는 마음이다. 몸과 마음이 가득 찬 달리기가 끝났다. 서둘러 짐을 찾고 나보다 늦게 결승선에 들어오는 동료들 사진을 찍어준다. 10km와 하프를 달린 동료들이 부스에 모여있다. 막걸리를 한 잔 하고 무용담을 이야기하고 매번 하는 일인데도 할 때마다 재미있고 언제나 즐겁다.


두루두루 신경 써 몸과 마음을 잘 관리했다. 달리기는 빨리 달리는 일만 잘해서 완성하는 운동이 아니다. 아니 모든 운동이 그렇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일이 그렇다. 너무나 연결되어 있고 복잡하기 때문에 정말 제대로 섬세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계략이 필요하다. 꾸준히 관리하는 일 자체가 힘들다. 중간에 포기하기 쉽고 지치기도 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것을 이겨내는 일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달리는 내내 온몸의 근육에서 힘이 넘쳤고 페이스 조절도 잘했다. 그 기쁘고 감동적인 마음도 오래가지는 않지만 내가 이룬 성과들, 부단히 관리하고 꾹꾹 누른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고구려 마라톤 32km 완주 기록증



대회 홈페이지에서 기록을 조회하니 기록증을 출력해준다. 가민 시계의 기록은 31.83km를 달리고 시간은 2시간 59분 42초로 나온다. GPS 측정과 팔의 움직임 등을 감지해 거리와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는 약간 오류가 있다.  마라톤 시계를 사용하고 달리기의 나서 즐거움이 조금 줄었다. 우리의 주의와 시선이 분산되어 그렇다고 선배들이 말한다. 시계로 페이스를 자주 확인하니 달리는 데 집중하는 기쁨이 줄고, 일정한 페이스를 맞추려 이리저리 혼란스러워 힘은 힘대로 들고 기록도 잘 나오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시계를 무시하고 확인하는 시간 간격을 최대한 늘려 주로를 모두 달린 후에 SNS나 통계용 자료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날씨는 맑고 낮에는 따뜻하고 한강은 반짝인다. 고구려 마라톤 대회는 아주 편안했고 기록도 좋았다. 무엇보다 동료와 함께 착착착착 발을 맞춰 달려서라고 생각한다. 아직 남은 대회도 많고 달려야 할 거리는 길고도 길다. 남자가 오르고 싶어 하는 곳에 오르고,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또 얼마나 힘든 거리를 달려야 할지 상상할 수도 없다. 남자는 아직 전부를 보여준 적이 없다. 아직도 남자는 보여줄 것들이 더 남아있어 보인다. 잘 달리고, 높이 오르고, 마지막엔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32km 완주 메달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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