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ptember Sky May 07. 2023

피천득 詩 오월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



詩人의 눈으로 본 오월은 어떤 날들인지 보여주는 시다. 젊음 날에 대한 예찬도 아니고 눈부신 계절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억지로 '오월의 시 알려줘' 하고 chatGPT에게 물어보면 프롬프트와 함께 화면에 나오는 일상적인 가벼운 단어들, 초록을 노래하는 익숙한 표현을 줄줄이 적은 오월의 시가 아니다. 삶이 지루해서였는지 흔한 것들에는 고귀함이나 품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인은 고귀함이란 무엇을 보고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시인은 오월에서 '찬물로 세수한 청신한 젊은 얼굴'을 보고, 스물한 살의 나이에 갑작스레 죽으러 간 바다를 보고 고통을 배우고 살아 돌아왔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나이는 세서 무엇하랴는 마음을 드러낸다. 곧 다가울 '원숙한 여인'의 모습을 보고 더욱 열정에 찬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나이 듦과 젊음에 대한 묘한 대비와 어쩌면 다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쓸쓸한 마음까지 읽을 수 있다.  


끝 부분에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이라는 작가의 표현이 마음에 걸린다. 젊은 사람은 시간을 날, DAY로 표현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세월로 말하곤 한다. 어린 사람에게는 하루가 아주 길고, 나이가 들면 계절이 짧다. 지금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참으로 적당하게 흐른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월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 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이 부분을 직역하면 "사랑을 얻음도 고통이요, 사랑을 잃음도 고통이라."정도로 해석 



모네의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