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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테 Jun 03. 2021

새롭고 다양한 경험이 모여야 여행이 완성되는 것 같아.

산티아고 순례길 day 13 (씨루에냐→그라뇬)

저녁에 이어 조식까지 신청했기에, 오늘은 편하게 토스트에 티 마시면서 아침식사 완료.

매일 보는 표지판이지만 여전히 예뻐 보이는 표지판. 오히려 가면 갈수록 정이 드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조개 무늬들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고 정감 가고, 마치 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마 그만큼 내가 더 순례자 같아졌다는 소리겠지.

정말 작은 마을이었던 씨루에냐 안녕.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매일 다른 풍경이면서도,

매일 같은 설렘을 느낌과 동시매일 색다른 기분이 드는 이 아침 새벽.

아니, 하늘이 어쩜 이렇지!?

오늘은 더 유난히 핑크빛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핑크와 보랏빛의 향연이랄까.

너무 예쁘잖아!

한동안 이 길을 떠나지 못하고 하늘만 바라봤다.

이틀 동안 무언가 외로운 기분에 울적했는데, 그런 기분을 싹 비우고 채워주는 것만 같았다.

동이 트기 전 어두운 새벽에 길을 나서면 전혀 밝아지지 않을 것만 같이 어둡기만 한데, 해가 뜨기 시작하면 언제 어두웠냐는 듯이 순식간에 날이 밝아진다.


정말 순식간이다.

그 변화들이 정말 아름답다.


나의 방황하던 수많은 어둡고 긴 시간들도 어느 순간에 아름다운 변화를 맞이하지 않을까.

걷다 보니 어제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캘리포니아에 거주 중인 자매, 제니퍼와 르네를 만났다.


"오~! 거니 하이!"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또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그게 참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마치 '우리 서로를 기억하고 있어!' 같아서.


혼자만의 여정길이면서도, 결국 다 같이 걷고 있음에 의미도 있으니까.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보는 성당들도 이제는 제법 친숙해졌고 정감이 가기 시작한다.


파란 하늘과 성당의 대비랄까. 그런 풍경을 찍는 것이 재밌어지기 시작했고, 이런 것들이 쌓이면 순례길 여정을 끝내고 났을 땐 곧 성당과 관련된 나만의 추억거리가 생겨 있겠지.


나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이렇게 나만이 요소들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buen camino'가 아닌, '부엔 까미노'라는 낙서를 보게 되었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많은 낙서들을 보게 된다. 대부분은 외국어들이라 의미를 모르고 지나치게 되는데, 가끔 눈길이 가는 낙서들을 보게 된다.


물론, 해서는 안될 곳에 낙서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또한 어느 정도는 순례길 여정만의 문화가 아닐는지.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왜들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좋아할까 싶기도 하고. 인간의 본성인가? 나는 그렇다면 자잘한 낙서가 아닌

그 무언가라도 가치를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길이 참 예쁘다.


며칠째 같은 분위기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날의 기분과 날씨, 컨디션에 따라 내 마음 상태도 많이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컨디션과 기분을 잘 관리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다.

그라뇬.

오늘의 목적지.

마을 입구에 도착했는데 이 벽화 그림 뭐야.

너무 귀엽잖아! 뭔가 느낌이 좋은데?

12시쯤이었고 일단 간단하게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다. 쎄요(순례자 스탬프)도 찍고 싶었고!

(나는 내가 사 먹은 곳에서만 쎄요를 찍는다.)


또르띠아와 오렌지 스. 또르띠아는 속에는 감자고 위에는 계란이 덮여있는 요리다.


그렇게 점심을 먹다가 옆 테이블의 한국인 친구랑 미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미국인 아저씨는 브라이스고, 브라이스가 한국인 친구 이름을 잭이라고 소개했다. '타이타닉 잭'이라는 말과 함께.


잭은 발이 심하게 부어서 어제랑 오늘, 기부제 성당 알베르게에서 연박을 하고 있다고 했다. 브라이스는 아킬레스 통증으로 같은 곳에 체크인을 했다고.


점심을 다 먹은 후, 나도 그들을 따라서 처음으로 성당 알베르게에서 묵기로 했다. 사실 도네이션 알베르게는 처음인데 색다른 경험이기도 하고, 이왕이면 최대한 이것저것 다양한 추억거리를 쌓고 싶었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유튜브에는 영상으로 올렸다!) 노트에 이름, 여권번호, 국가, 출발했던 이전 마을을 적고서 다락방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는 신기하게 침대가 없고 매트리스를 깔고 각자 자리를 잡는 거였다. 아니 이 찜질방 느낌은 무엇임?!


아, 참고로 도네이션은 그동안 꽤 많이 쌓인 동전들로 기부를 했다.

잭이 얼음찜질 중이길래 (나에게도 추천해줌) '나도 해볼까~' 싶던 찰나에, 브라이스가 자기가 해주겠다며 손수 갖다 주었다.


말 많은 7살 어린이 같은 브라이스 아저씨, 땡큐!

다 같이 모여 저녁 준비를 하고서는 함께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메뉴는 샐러드, 빵, 렌틸콩, 볶음밥, 구스구스(?)

식사 후에는 분담해서 설거지와 뒷정리를 한다. 색다른 경험이었고, 런 새로운 경험들이 순례길 여정을 더 즐겁게 채워줌을 느꼈다.

San Juan Bautista Pilgrims 알베르게

(도네이션 성당 알베르게)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되게 친절하게 맞아주신다.

잭이랑 브라이스와의 만남도 즐거웠고!


그럼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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