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지고 사라지다

by girok

여러 감정들이 합쳐져서 이상한 감정을 낳았다. 이 낳음 당한 감정들을 아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깊숙이 구겨 넣었다. 그런데, 이것이 자꾸만 튀어나오려고 한다. 사방으로 튀어버린 점들이 큰 원을 그려내면서 그 원 안에 나를 가둔다.



묻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대답들이 많다.



그것을 아니,

속이 죽은 자의 색이 무엇인지 아니,

그 떠돌아다니는 영혼을 본 적이 있니,

그것을 본 자만이 그 색을 알 수 있어.



보며 웃고 먹으며 즐거워하고 들으며 행복했던 것들을 한데 모아 흘려보낸다. 간간이 찾아서 나는 느끼는 행위를 한다. 그 잠깐의 순간으로 일주일을 견딘다. 순간을 떠올리며 그 장면에 색을 간직하는 것 그 색을 잃고 싶지 않다.



무기력한 자의 방은 언제나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들을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너는 그것들을 치우며 무슨 생각을 했니, 그게 살아내는 방법이었던 거지. 그게 유일한 삶이었던 거다.



나는 아직 갈 수 없다.

마주 보며 안녕 이 한 마디 할 수 없다.



삶은 무엇인가, 죽음을 향해 걷는 것 그 과정 속에 우리는 느린 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 길고 긴 과정들이 삶 그 자체인 삶인 것일까.



우리네 인생을 위해 봄에 피는 꽃 한번 보자고 곱게 치장하며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것,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좋아서 밟는 것, 첫눈 왔던 날을 간직하는 것, 그렇게 각자마다 소중히 간직하며 곱게 피어날 꽃을 위해 삶을 단장하며 살아내고 있다.



사실은, 삶이란 살아냄과 동시에 사라지는 것 아닐까, 영원을 믿으며 사는 사람과, 영원을 믿지 않는 사람들 그 두 존재 사이에서 우리는 영원이 아닌 찰나의 순간들 속에 살고 있다.



펑 하고 터져버리는 불꽃,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 피다 만 꽃,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 물을 주지 않아 시든 마음,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 영원이 아닌 찰나의 순간들에만 존재하는 것들과 사람들. 나도 그 찰나의 순간에 있다. 살아내는 삶 속에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우리는 상실을 논하지 않기로 한다.

믿을 수 없고, 믿기 싫고, 부정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이 삶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삶인 것.



천천히 느린 속도로 걸음을 옮기고 싶다가도 성큼성큼 걷고 싶고 뛰고 싶을 때가 있듯 삶도 그렇다.



그러니 이 무기력을 논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

나는 잠시 여기에 머물다 갈게.

머물며 보는 모든 것을 사랑해.

사랑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우리는 그것을 멈추면 안 된다.



그런데, 나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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