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망각하세요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단편집 감상평

by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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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로 우리에게 알려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집이다. 총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깊이에의 강요]

재능 있던 여류화가가 평론가의 기고글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것. 그녀는 그 기고글 이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삶 속에서 깊이를 추구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자신을 삶의 저편 깊이로 추락시킨다. 이후 그 평론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기고하는데, 그녀의 작품들이 깊이가 있다고 평론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우리는 살면서 외부의 평가에 자주 노출되곤 한다. 현대사회에선 sns를 통해 주변사람만이 아닌 온세계의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애초에 누군가의 예술작품을 동등한 사람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명확한 기준이 없는 예술작품은 그 고유의 것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비단 작품의 평가뿐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로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평론가 역시 동일한 작품을 처음엔 깊이 없는 것으로, 그녀의 죽음 후 깊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 것을 보면 우리는 그 평가의 기준을 종종 외부에 외주주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이제 그 평가의 기준을 내 내부로 가져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면서 이젠 타인이 아닌 지피티나 제미나이에게 나의 평가를 외탁하기도 하는 아이러니.


[승부]

공원에서 체스장인과 신예 젊은 도전자의 체스 대결이 벌어진다. 장인과 젊은 도전자의 대결에 그동안 체스장인과 대결했던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젊은 도전자의 패기 있는 말놀림에 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지만, 결국 젊은 도전자는 패하고 만다.


결국 젊은 도전자는 패기와 기세, 관객들의 염원으로만 경기를 치른 것일 뿐 그들의 생각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국민 엠씨로 칭송받는 한 연예인이 떠올랐다. 그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항상 승리해 왔지만, 그만큼 안티와 그가 무너지길 바라는 사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때로 바라는 건 지루한 유지보단 참신한 승리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 서사적으로 재밌으니까 말이다.


[뮈사르의 유언]

모든 것, 그니까 이 지구는 사실 조개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것은 조개가 될 수도 있으며 조개가 될 수 있는 것을 밝혀서 자신이 조개가 되어 죽어간다는 뮈사르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크게 공감했다기보다 좀 무서웠다. 이렇게 자신이 탐구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 심취해 자신을 잃어가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물론 탐구가 먼저인지 질환이 먼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뮈사르는 조개가 되어가는 병(?)에 걸려 ‘세계는 무자비하게 닫히는 조개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너무나 열심히 몰두했기 때문에 그 연구에 자신이 먹혀버린 형국이 되어 버렸다. 마치 열려있던 조개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린 것처럼. 몰두하는 것이 어디에나 필요하겠지만, 결국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몰두는 자신조차 잃어버린다는 교훈을 주는 건 지도 모른다.


[문학의 건망증]

이 단편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오늘 읽은 이 단편조차 몇 시간이 지난 지금 아주 흐릿하게 잔상만 기억에 있다. 그러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찬사답게 바로바로 잊는 게 어쩌면 정해진 특성인지도 모른다. 집에 꽂혀있는 책 중 한 권을 무심히 꺼내 읽다가 거기 처진 밑줄을 보고 감명을 받지만 이내 깨닫는다 그 밑줄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또한 우리는 그 문학 작품을 잊는 것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롭게 읽게 됨으로 인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다른 관점으로 만나게 되기 때문에 기존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 각인시키는 매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총평]

양장본에 그럴듯한 표지와 <깊이에의 강요>라는 그럴듯한 제목의 이 책은 짧고 얇지만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히 표제작 이기도 한 ‘깊이에의 강요’는 타인의 평가가 얼마나 주관적이고 의미 없는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평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내면의 기준들을 잘 세워두는 것이 중요하다. 흔들리지 않는.


외부의 평가(깊이에의 강요)에 휘둘리다 보면,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부흥하고 싶은 심리 (승부)를 느끼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에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뮈사르의 유언) 그럴 땐 잘 잊어버리는 습성 (문학의 건망증)을 떠올려 잊고 있던 책장 속 책을 꺼내 내가 친 밑줄의 글들을 읽어보며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떨까. 그동안 잊고 있던 내면의 기준을 찾아 나의 길로 다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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