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김병운 소설 감상평
[총평]
“퀴어가 가진 그림자를 보여주면서 과연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
이 단편집을 정리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가장 어려웠던 이유는 너무 내 이야기 같은 부분들이 있어서 오히려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머릿속에서 흩어지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연결’이었다. 다양한 연결관계들이 등장하는데 퀴어커뮤니티에서 친했던 경주, 어린 시절 친구 홍주 같은 느슨한 연결, 퀴어 삼촌, 친구의 조카 찬오, 선생님과 학교후배 등 세대 간의 연결, 그리고 엄마 같은 뜨거운 연결이다. 그냥 인간인 것만으로도 우린 불완전하고 불안한 존재인데 거기에 퀴어는 세상과 타협하고 외부의 시선과 어쩔 수 없이 불안을 증폭시키는 내부의 시선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한층 더 복잡스럽고 불안하다. 그렇기에 그 느슨한 연결들의 힘으로 인해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교분’에 등장하는 선생님이 윤범을 이끌고, 다시 또 다른 후배를 소개하는 장면은 그 연결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처럼 보였다. 이후에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선생님이 영화 감상평을 쓰고, 윤범의 소설을 쓰고, 후배가 그 소설의 감상평을 쓰듯 우리의 미래를 써 내려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엄마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조용히 믿고 응원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엄마가 나에게는 굉장히 판타지 같고 이상향의 엄마의 모습이라고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이 불안전하고 불안한 관계들 속에서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엄마의 자리가 더 필요하다고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에서 보여준 것처럼 결국 우리가 돌고 돌아 돌아가야 할 곳이 가족의 품이라는 것. 그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결국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근래에 읽은 퀴어 소설 중 누군가 나에게 퀴어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소개해주고 싶은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박상영의 소설을 ‘빛의 퀴어’로 김병운의 소설을 ‘어둠의 퀴어’로 소개하고 싶은데 이 작품이 ‘온건하고 용납가능한 게이들만 보여주면서 헤테로들의 승인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거나, 애인이 있으면서 번개를 하고, 퀴어라는 이유로 일상에서 지워지기도 하는 존재라는 불편한 부분들도 다루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완전한 이해나 안정된 관계가 아니라 불안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채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런 연결들 덕분에 우리의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각 단편을 좀 세세하게 감상한 내용이다. 참고용
[봄에는 더 잘해줘]
주인공에게는 영묵이라는 애인이 있다. 엄마에게는 영묵을 소개시켜주고 가끔 집에도 데리고 올 정도로 발전한 사이이다. 퀴어커뮤니티에서 친하게 지내던 경주와 M, 그리고 주인공과의 관계는 M이 좋아하던 영묵이 주인공과 연인이 되면서 재편된다. 엄마와 영묵이 함께 웃으며 서로 노력하며 잘 지내는 모습을 바라보는 주인공은 가슴이 저릿할 정도의 행복을 느낀다.
퀴어에게 자신의 애인을 가족에게 소개하고 그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이 단편은 읽으며 나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을 할머니에게 데려간 것이 기억났다. 애인이라고 소개하진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 할머니에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 그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순간이 주는 행복감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영묵과 엄마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 행복과 동시에 주인공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친구가 좋아하던 사람을 빼앗았다는 죄책감. 이야기 속에서 M은 메신저 대화를 통해 자책도 후회도 하지 말고 스스로 용서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 말은 죄책감을 없애지 말고 계속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의 사랑이 불완전하고 불안하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그런 경쟁에서 먼저 빠지는 쪽을 선택해 왔기 때문에 주인공의 선택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이 특별하게 다가온건, 정체성의 동질감을 넘어선 보편적인 퀴어의 인정욕구와 결국 우리가 필요한 건 경주 같은 사람들의 느슨한 연결을 위한 손내밈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
농인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청인이었던 엄마와 주인공.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이후 그는 기일마다 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한편 어릴 적 같은 집에 살며 친하게 지냈던 홍주는 자신의 아들 원기를 주인공 어머니에게 맡기며 서로 왕래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관계의 결핍은 그의 연애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이다. 전 애인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방황하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는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이해와 사랑을 다른 관계에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 이 이야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홍주와의 특별한 관계가 등장한다. 서로 비밀을 만들어가며 이어온 시간 덕분에 그들은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힘든 순간을 버텨낸다. 어쩌면 이런 연결은 삶을 힘듦 속에서도 유지시킬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에 진심]
전애인과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피아노를 친구인 용이의 조카 찬오에게 넘긴다. 찬오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주변사람들은 걱정하지만 용이는 그런 찬오를 더욱 애틋하게 챙긴다. 찬오는 주인공에게 용이가 자릴 비운사이 의미 심장한 말과 함께 용이와 더욱더 친하게 지내라는 당부를 전한다.
나는 아마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 아이가 없을걸 가정하고 혹시라도 나의 조카가 여성스럽다거나 어떤 징조들이 보인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할까 같은 실질적인 고민을 잠시 담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우리가 누군가들을 이미 이성애자로 규정하고 있고, 혹은 이성애자가 아닌 징조를 보이는 누군가를 볼 때 안쓰러운 감정과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될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동시에 들었다. 용이처럼 그런 정체성을 갖는 것이 용기 있고 아름다우며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한 가지 더 짧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결국 피아노가 나에게서 찬오에게 넘어갔듯이 세대로 이어지는 어떤 연결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주인공은 장희의 제안으로 장희의 게이 삼촌을 병문안 가기로 한다. 그동안 엄마의 말에 따라 죽은 줄만 알았던 삼촌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에 있는 요양원으로 그를 만나러 가자는 것이었다. 삼촌의 간병인이었던 이영서 씨의 가이드로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화상통화로 연결이 되고 특별한 가족이었던 장희와 삼촌은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
이 이야기는 사실 나를 가장 많이 울게 한 작품이었다. 삼촌과 장희의 화상통화 장면은 구태의연한 대사들이었지만 그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간의 그리움과 오해 서로에 대한 마음과 미안함이 동시에 일어서 한동안 먹먹해진 채로 감정을 진정시켜야 했다. 생사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이 뜨거운 연결은 결국 서로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느껴졌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 뜨거운 연결은 고장 났던 카메라가 필름을 모두 소진해 0으로 돌아오듯 새로운 챕터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교분]
윤범은 우연히 국어선생님을 만나고 함께 학교로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교지편집부를 맡고 계시고 그중 편집장인 후배를 소개해주는데, 알고 보니 윤범의 책의 감상문을 적어서 낸 학생이었다. 선생님과는 학창 시절 둘만의 비밀처럼 서로의 정체성을 알게 된 사이었고 선생님을 의지하며 보냈으나 한편으론 의문점들이 남아있었는데…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선생님-윤범-후배로 이어지는 세대 간의 연결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성소수자 선배가 있었고 그 선배가 닦은 길을 결국 후배들도 걷게 될 것이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서로의 등대가 되어 잘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과도 같이 느껴졌다.
[오프닝나이트]
다운> 업> 하수 > 센터> 상수> 하부 이렇게 소챕터가 분류되어 있었는데 이유가 궁금
인플루언서 배우 변진서의 커밍아웃 다큐를 찍는 오프닝 파티에 주인공 친구 대오의 전시회가 함께 열린다. 그 오프닝파티에서 대오의 지인을 만나는데 그 지인과는 안 좋은 추억이 있다. 그러다 잠시 취기가 올라 자리를 피한 자리에서 오프닝파티에서 눈이 마주친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비밀스런 만남을 하게 된다.
짧은 단편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정리하는데 애를 먹었다. 특히 이 이야기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나 역시 이렇다 저렇다 답을 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었다.
작가인 전애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그것을 확인하는 작업은 어떤 문제를 낳을 수 있는 거며, 당사자성이 없는 퀴어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일까에 대한 의문. 그리고 애인이 있는 사람과의 만남 혹은 섹스가 잘못된 것인가 아님 허용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나 역시 이야기의 답을 빌려 노코멘트하겠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
코로나19에 걸린 엄마의 입원으로 주인공은 잠시동안 집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회사를 핑계로 집을 떠나 살았는데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그는 많은 걸 느낀다. 학교 후배이자 데이팅어플로 만난 장현을 그가 장사하는 만두집을 방문했다가 재회하게 되고 동네에서 진행하는 워크숍까지 함께 참여하게 된다. 엄마와 자주 왕래가 있었던 이웃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등 우연한 기회로 다시 돌아오게 된 집과 동네에서 다시 그곳이 좋아질 만큼의 일들을 겪는다.
익숙함에 젖어 모르고 넘어갔던 그리고 지겨워했던 일들이 결국 다시 돌아왔을 때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떠나는 건 다시 잘 돌아오기 위한 예행연습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