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소설 감상평
들어가며,
단편 7편의 감상평을 구상하며 한 가지 얻은 건 그동안 감상평이 ‘확정된 해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계속 확장되는 해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이걸 읽으면서 김애란의 책을 읽게 된다거나, 자신만의 해석으로 확장하길 바라며.
[홈파티]
연극배우인 이연이 친하게 지내는 성민의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 모임에 초대받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연과 그 모임의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그어진 선을 잘 지키다가 사회적인 이슈문제로 이연이 발언을 하면서 균열이 생긴다. 결국 이연은 다음날 일정을 빌미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실수로 오대표가 아끼는 잔을 깨고 만다.
이연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소신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서로의 사회적 가면을 잘 쓴 채 모임은 마무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연이 끝내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 결국 균열이 드러나고 만다. 더불어 오대표의 잔을 깨뜨리면서 균열은 확실한 파열음이 되어 서로에게 각인된다.
살면서 한 번쯤은 자발적으로는 가지 않을 모임이나 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모임에 가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린 불편함과 긴장감, 그리고 묘한 열등감마저 느끼기도 한다. 이 단편은 그런 공간이나 상황이 주는 묘한 긴장감을 잘 묘사하고 있다. 홈파티라는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허용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대 허용되지 않을 불평등의 공간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사회의 위계로 느껴지기도 했다.
- 과연 이연처럼 그런 균열을 드러내는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숲 속 작은 집]
주인공 부부가 낯선 외국의 숲 속 작은 집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숲 속 작은집의 주인이 고용한 그 나라의 가사도우미가 수건을 새것으로 갈아주거나 쓰레기를 비워주는 등의 청소를 맡아서 해준다. 부부가 외출을 하고 돌아온 어느 날, 묘하게 숙소의 물건들의 위치가 달라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지호와 달리 주인공은 주의 깊게 살피게 되고, 그 이후 조그맣고 사소하지만 너무나 거슬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 모든 게 결국 돈, 팁을 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팁을 주기 시작하는데 마지막날 물건이 사라지는 소동이 일어난다.
타국에서 모든 게 낯선 상황에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어떨까? 아마도 고국에서보다 멘털이 2배쯤은 나갈 것 같다. 결국 가사 도우미의 그 행동들이 팁 즉 돈을 바라는 행위였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를 가장 씁쓸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만이 아니길 바랐는데 말이다. 팁, 즉 돈은 단순히 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라 위계를 드러내는 장치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에서는 돈으로 인한 위계가 몇 가지 등장한다. 주인공과 엄마의 관계, 그리고 부부와 가사도우미 사이의 관계가 그렇다. 모두가 오고 가는 행위에서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각자 주는 돈으로 서로의 위계가 정해진다. 고맙다는 말은 주객이 전도된 도구인 돈에 밀려 도구가 되고 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쓴맛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 돈이 개입하는 순간 변화하는 관계의 모습은 어떠한가?
[좋은 이웃]
곧 이사를 앞둔 부부의 위층에 신혼부부가 들어오게 되면서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고 알려온다. 호준의 아내는 독서교실이 있는 날은 피해서 공사를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 부탁은 어겨진다. 또 독서교실의 유일한 방문가정 학생인 시우에게 베풀었던 것이 사실은 오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단편이었다. 40대에 자가를 갖지 못하게 된 주인공이 결국 윗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가 일으킨 균열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게 되는 부분은 큰 동질감을 불러온다. 거기에 자신보다 낮은 위계에 있었다고 느껴 호의를 베풀었던 대상이 결국엔 자신보다 나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오는 씁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실된 축하보다는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비교 열등의 감각은 인간이 돈 앞에서 보는 자신의 위계일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 집니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우리 모두가 겪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이물감]
기태가 그 식당까지 찾아간 건 사랑이 아니라 존재 확인에 가까웠다.
한 번쯤은 사랑이라고 착각하거나 오판하는 감정을 겪어봤을 것이다. 헤어진 상대를 이제는 사랑하는 건지, 아님 내가 없이 잘 지내는 것을 보며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 알길 없는 마음을 기태처럼 표현하고야 마는 순간들을.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착각이고 오만이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기태가 결국 그 남자의 식당까지 찾아가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아직은 자신이 희주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레몬케이크]
기진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작은 책방을 연다. 책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작가의 책모임을 열고자 하는 날 엄마의 정기검진이 겹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느낀 점은 두 가지였다.
‘자신에게 무척 가깝고 생생한 현재가 누군가에게는 빛바랜 과거처럼 아득하고 낯선 일임을’ 기진의 부모님인 선주와 경수가 이제는 관공서에서 하는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일에 대해 언급되는 부분이었다. 기진에게 엄마의 일은 이제 현재이고 어쩌면 다가올 미래인데 아직 그것을 겪지 못한 이들은 그것이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곤 한다. 우리는 종종 아니 자주 회피하듯이 그 사실들을 잊고 살아간다. 한편으론 나는 기진과는 다르게 생각했다. 모두에게 찾아올 미래는 기진도 나도 그리고 그걸 남의 일인 것처럼 말했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찾아올 것임을.
다른 한 가지는 기진에게 너무 중요한 일이었던 작가와의 대담이 결국 작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무산되고 만다.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나는 어떨지에 대한 생각을 한참 했던 것 같다. 손익을 따지는 것은 당연할 테고 분명 왜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누군가를 원망했을것이 분명하다. 이런 종류의 천재지변에서 인간을 ‘지키고’ 싶을지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안녕이라 그랬어]
주인공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장례에 모든 걸 접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애인 헌수와도 그 일을 계기로 관계를 정리한다. 어쩔 수 없이 고향집을 지키던 주인공은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되고 남은 기간 언어를 배우기 위해 화상영어를 시작한다. 고향으로 내려오기 전 헌수와 커피를 마시며 들었던 팝송에서 ‘안녕’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에피소드가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같은 노래를 함께 들었지만 서로 다른 말을 들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이 관계를 상징하는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같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어쩌면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 사실을 이 작품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착각들은 결국 균열로 인해 수면으로 드러나고 만다. 같다고 생각했던 오만 같은 착각들은 관계의 끝을 부르고 그 끝에서 인사조차 혹은 진심조차 전하지 못한 채 끊어지고 만다. 마치 로버트와의 대화가 시간에 쫓겨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끝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건네는 안녕을 헤어짐의 인사로는 종종 혹은 자주 담지만, 평안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는 안녕은 끝끝내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이 작품은 그토록 열심히 삶을 살아온 모두에게 그런 ‘안녕’ 말고 평안하길 바란다는 ‘안녕’을 건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빗방울처럼]
지수와 수호는 신혼부부로 지수가 맘에 들어한 신축빌라에 전세로 들어간다. 하지만, 전세사기로 인해 집을 떠나게 되지 못한 부부는 결국 그 집을 매매하게 되고, 늘어난 대출을 감당하기 위해 수호는 더 많은 일을 하다 과로로 세상을 떠난다. 혼자 남겨진 지수는 어느 날 천장에서 물이 세서 도배를 새로 하려고 사람을 부른다.
집에 도배를 하기 위해 찾아온 도배사가 외국인인 것을 보고 지수는 외모와 국적으로 상대를 단정짓는 오만을 저지른다. 그런 시선이 익숙한지 도배사는 반박하듯이 자신을 증명한다. 그 증명에 지수는 자신이 얼마나 쉽게 타인을 단정 짓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은 때론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이 단편은 한때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를 고통 속에 살게 하는 현실 속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사를 가기 위해 전세를 알아보던 중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공인중개사에게 동일한 수법으로 신축건물의 전세사기를 당할 뻔했다. 다행히인지 불행인지 얼마 안 되는 계약금만 날렸지만, 당시 나에겐 큰돈이어서 큰 충격이었던 기억이 있다. 그 장면을 의도치 않게 만나니 더 감정이입이 되어 한참 울기도 했다. 그리고 지수를 빗방울처럼 응원했다. 도배지를 발라 깨끗해진 벽처럼 마음에도 도배지를 발라 새롭게 살 수 있는 마음이 생기길 간절히 바랐다.
[총평]
이 단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일상의 사건이나 상황들은 우리도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김애란 작가는 그 평범한 일상 이면에 숨어있는 인간관계의 미묘한 위계, 다 안다고 믿는 오만, 자본에 의해 재편되는 질서를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특히 내가 주목한 지점은 우리가 사랑하고 소중하다고 믿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쉽게 오만의 함정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잘 안다는 착각은 질문을 생략하게 만들고, 확인하지 않은 판단은 결국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든다. 우리는 그 균열을 사회적 가면으로 덮어두려 하지만, 작가는 송곳 같은 문장으로 그 자리를 찔러 파열음을 만들어 자각시킨다.
김애란 작가는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지점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독자들은 조명되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일상을 깊이 공감하게 된다.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오만이었음을 작가는 조용히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관계속에서 자신을 증명한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모든 작품에서 관계를 통해 드라나는 '나'가 있다. 홈파티에서는 내것이 아닌 공간과 관계속의 나, 좋은 이웃에서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나, 숲속작은 집에서는 타지에서 맺은 낯선이와의 관계속에서의 나, 레몬케이크에서는 가장 가까운 가족앞에서의 나, 그리고 선망했던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나. 결국 이 소설은 내가 누군가와 관계 맺을때 어떤 태도와 자아를 드러내는지, 그 관계들 안에서 나를 어떻게 증명하고 있는지를 이야기 하는지도 모른다. 이물감의 기태가 그 남자의 식당까지 찾아가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제목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말하는 ‘안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안녕’은 누군가의 안위를 바라며 건네는 따뜻한 인사라기보다 어딘가 씁쓸하고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는 인사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애란 작가는 그 ‘안녕’을 통해 우리에게 평안하길 바라는 또 다른 의미의 인사를 건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