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관찰수첩 : 특이점

by 기로

첫 번째. 식수


호랑


물그릇은 화장실에 둔다.

처음 데려왔을 때 사정이 있었다. (원룸시절)


물을 채우면서 흐르는 물을 더 잘 먹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습관이 됐다.


내가 없을 때는 알아서 먹는다. 내가 있으면 기다린다.

물그릇 앞에서 하염없이.


호두


내가 있든 없든 그냥 잘 마신다.

호랑이가 흐르는 물을 마시는 걸보고 따라 해본 적이 있다.

몇 번 시도해 보더니 그만둔다.


그냥 물그릇 안의 물을 먹기로 한다.




두 번째. 낯선 이를 대하는 태도


호랑


데려오고 얼마 안돼서 사회화를 시킨답시고 출퇴근을 같이 했었다.

직원들 손을 타고, 잘 지내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철석같이 믿었다

사회성이 길러졌다고


웬걸, 손님을 들이자마자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손님이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만 들어도 숨는다

캣타워, 침대밑


가끔 하악질도 서슴없다.

다만, 내민 츄르는 받아먹는다. 다행이다


아주 가끔 지가 숨는 게 지치면 기어 나온다.


호두


처음부터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가 무릎이고 책상이고 가서 앵겼다.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편이었다.


낯선 사람에게는 먼저 다가갔다.

숨지 않고.


몸 냄새를 먼저 맡고, 그다음 소지품 냄새를 맡는다.

주변을 맴돌다 흥미가 사라지면 떠난다.


아, 그리고 부르면 온다.


세 번째. 중성화


호랑


데려온 지 5개월쯤 되었을 때 수술을 했다.

호랑이는 생각보다 얌전하고 덤덤했다.

(아마 몰랐겠지)


문제는 오히려 나였다

수술하는 동안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마치고 만났을 때도 케이지였지만 안고

하늘에 감사함을 전했다.


다행히 특이점은 없었다.


호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원래 데리러 오라는 시간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일단 빨리 오라는 말에 달려갔다.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가보니 병원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마치 사이렌처럼

웃긴 건 내 손에 옮겨온 순간 울음을 멈췄다.


애틋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데려왔다.

0

네 번째. 자리


호랑


낮에는

침대, 캣타워 1층, 내 발부근


잠들 때는

같이 잘 땐 머리맡, 혼자 잘 땐 소파


호두


낮에는

내 무릎, 내 품, 내 옆 의자


잠들 때는

다리 부근, 혹은 침대 옆 스크래쳐


각자 고유의 자리가 있지만

공동의 영역은 돌아가며 차지한다.




다섯 번째. 지병


호랑


맞는 사료를 찾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방귀와 설사가 맞지 않는 사료의 증상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여러 군데의 병원을 돌아 겨우 증상을 알아냈다

장이 좋지 않다는 것.

처방 사료로 바꾼 후 방귀를 뀌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의 가장 큰 대립은 다른 문제였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항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하지만 닿지 않는다.

결국 여기저기 묻히고 다닌다.

나는 닦아주려 하지만 호랑이는 끝까지 거부한다.

우린 매번 이걸로 날을 세운다.


호두


눈꼽이 낀다.

코딱지도 낀다.


다행인 걸까?

지금까지는 그것 외에는 없다.


인간


호랑이를 데려오고 1년쯤 지났을 시점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엔 스트레스인 줄 알았다.

정신과 진료도 받고 처방도 받았다.


차도는 없었다.


어느 날 밤 증상이 심해졌다.

정신을 부여잡고 응급실로 갔다.


천식이었다.

지금은 약과 흡입기를 쓰면 문제없다.


우리가 같이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그냥, 이렇게 같이 산다.

https://youtube.com/@gilhoranghodu?si=7aZGPflMs3dADi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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