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상관없는 영화와 드라마들
가끔 나는 상식 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의 상황에 새삼 놀라곤 한다. 흔한 소재들로 얘기하면 한 국가의 대통령이 (그것도 헤이트 스피치를 소재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이 트위터라거나, 유명 정치인이 아무런 근거나 논리 없이 주장만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거나, 일기장에 쓸법한 이야기를 사설로 쓰는 오피니언이 우리 주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주류 언론이라거나, 이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 마다 "유튜브에서 봤는데..."로 시작하고 있다거나. 이런 일들은 겪는 그들이 잘못된건 아니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현실 아닌 희극을 보고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런 일들을 보거나 듣게 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단 한 발 물러서서 남의 일처럼 보게된다.
이 드라마는 배우들의 연기는 진지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희극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중반부터 진행되는 판타지스러운 전개가 보는 이로 하여금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기보다, 식상하면서 머리 아프지 않은 희극스러운 마무리였다는 점.
나는 한 템포 쉬어가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보는 이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고 한 장면을 놓친다고 영화를 보는데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영화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데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영화를 보는 내내 배경음악을 듣고 있을 필요도 없다. 내게는 '기생충'이 완성도는 높을지언정 '플란다스의 개'가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느낄 수 있었던 몇몇 일본 영화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영화.
예전 딴지 시절에 유엠씨가 음악방송을 진행했었는데 90년대 추억속의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컨셉이었다. 특히 '수학여행 가며 들은 음악들', '음악 한 곡으로 유명세를 떨치다가 사라진 원 히트 원더들', '미국의 90년대 컨츄리 음악들' 같은 추억팔이 컨셉은 이 음악방송의 아재들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한편으로 활동 당시 평가절하되던 본조비, 썸 포리원, 에미넴 같은 뮤지션들이 전설로 취급받는 지금의 현상도 비슷한 심리일까)
그 시절, 순수하지만 마음 속에 열정이 있고 그로 인해 상처받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영화에 대한 소개를 찾아보면 갈수록 급 전개되는 후반부와 고뇌하는 주인공의 연기에 높은 평을 한다. 나는 졸린 앞부분과 오래됨을 느끼게 만드는 연출이 인상 깊었다. 옛스러운 화면 전환 방식, 수십마리의 말과 아랍의 군중들, 촌스럽지만 웅장한 배경 음악, 신비롭고 황량한 사막 위 사람의 모습을 담은 영상. 이제는 유튜브 영상조차도 세련됨이 당연시되는 요즘에는 만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한편으로, 영화를 만든 이들로부터 은근히 문명화됨에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역시 60년대 영화를 그린 이들의 촌스러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