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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새롭게 Jun 13. 2023

결혼생활 33년이 말해주는 것

어떤 분이 이런 우스깨 소리를 했다. 

"한 남자랑 20년 이상 같이 사는 거 아니다"라고.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농담에 20년 빼고 13년이라고 말하겠노라 받아쳤었다. 

한 사람과 세월을 오래 보냈다고 결혼 생활이 길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사내커플이어서 회사생활을 같이했고 비슷한 시기에 사표를 쓰고 같이 사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다른 부부들과 달리 하루 24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부부가 되었다. 

나는 다른 부부들에게 우리는 일반적으로 60년을 같이 산 부부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있었노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출근도 퇴근도 밥도 같이 먹고 휴일도 같이 보내고 진심 하루 24시간을 함께 했다. 그렇게 33년을 보내고 보니 우리 부부에게 몇 가지 붙일 수 있는 수식어가 생겼다. 


우리는 서로에게 참아주는 일이 없는 부부다.

우리는 서로에게 요구를 하지 않는 부부다.

우리는 서로에게 화를 내지 않는 부부다.


우리의 생활에서 서로에게 참아주는 일이 없는 이유는 이젠 그런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남편이 싫어하는 것 같으면 나 스스로 그것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참아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냥 안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불편하다거나 내가 이런 것까지 신경 써준다거나 하는 생각도 전혀 없다. 남편 또한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나 말을 싫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서로가 본 대로 서로가 느낀 대로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 같으면 그 행동자체를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서로에게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러는 걸 보면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어느새 길들여진 건지도 모르겠다. 이건 아마도 33년의 세월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준 탓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딱히 요구하는 일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잔소리를 서로가 서로에게 할 일이 없다. 그냥 어떤 일이 생기면 그 일이 필요하면 하고 필요 없으면 안 하는 것 같다. 남편이 지나간 자리, 예를 들면 욕실, 침실, 거실, 주방 혹은 서재.. 그 어떤 곳을 그가 어질어뒀더라도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것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 남편은 자기가 미처 정리하지 않은 것 때문에 아내가 일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미안해한다. 그러나 나 역시 그의 사과에 "괜찮아"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보통의 부부라면 "그러니까 앞으로 이렇게 어질러 놓지 마, 혹은 내가 청소하기 전에 미리 정리해"라는 요구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 또한 우리의 33년의 세월의 흔적으로 쌓인 것이리라.


우리는 서로에게 화를 안 낸 지가 정말 오래된 것 같다. 33년 전 결혼 전에 죽자고 싸운 기억은 있는데 막상 결혼 후엔 남편과 싸운 기억이 없다. 처음엔 삐지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뭔가 서운하고 속상했던 일이 생기면 차마 말은 못 하고 삐져서 속상해하고 울적했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신혼이 지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상의를 할지언정 화를 내고 싸운 적은 없는 것 같다. 

아이들 양육방식에 대해 서로 상의하고 의견 일치를 보면 그대로 했던 것 같고, 집안에 생긴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서로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상의하고 우리가 만들어낸 그 결정에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따랐던 것 같다. 때로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그 결과가 나빴다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화를 내고 따지고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 우리가 잘못 판단했구나 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우리의 실수가 무엇이었는지만 서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렇게 33년이라는 시간을 붙어살고 보니 우리는 서로가 곁에 있어야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일이 생기든 우리는 서로만 있으면 안정적인 상태가 되고, 덕분에 삶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를 크게 흔들어대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는 둘이 합쳐진 하나여서 좀 더 단단한 탓일 것이다.

60년 같은 33년은 이렇게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을 함께 잘 걸어 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다져진 시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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