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의 인상에 자신 있으십니까?
곧 80을 바라보고 계시는 지인과 5년 만에 만났다.
다른 주에 살고 계시다 보니 내가 그분을 알게 된 것은 15년이나 되었지만 정작 그분과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을 포함해서 고작 5번이 전부다. 사장님은(편의상 사장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 호주에서 이민 1세대로 20대 후반에 오셨으니 이미 50년 가까이를 이곳 호주에서 사셨고 자녀들도 이곳에서 출생하여 이미 호주에서 뿌리를 내리고 다음 세대를 이어나가고 계시다. 속된 말로 정말 이민 성공케이스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내가 사장님과 만나게 된 계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사장님은 내가 이민 생활을 하는데 참 많은 도움을 주시는 멘토시기 때문이다. 사실 이민자로 낯선 땅에 와서 살다 보면 사장님 같은 분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도움을 받게 되는 일은 늘 사장님의 의견이나 생각이다. 나이 80의 노년의 분에게서 나오는 그 경험으로 인한 지혜가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또한 사장님께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그 오랜 시간 계속해서 사장님의 곁에 머무는 더 큰 이유이기도 하다.
5년 만에 사장님과 만나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사장님께서 물으셨다. "제 인상이 변했나요?" 사실 오랜만에 뵙긴 했지만 사장님의 인상은 늘 변함없이 편안하셨다.
"나이가 들면 가장 두려운 게 내 인상이 변하면 어떡하지? 하는 겁니다. 제가 오랜만에 한국엘 갔다가 예전의 친구들을 만났는데 깜짝 놀랐어요. 왜냐면 제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부자든 가난하든 얼굴에 주름이 많든 적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나이 들면 당연히 생기는 거니까요. 근데 인상이 변해서 아예 얼굴이 바뀐 사람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하신다.
사실 나도 이제 5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자주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이야기하곤 한다. "이제 미모는 없다. 인상만 남았다"라고. 선한 인상으로 늙을 수만 있다면 내 목표는 이미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상은 내 삶의 방식과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모는 부모로부터 혹은 요즘 많은 사람들이 받고 있는 시술이나 성형으로 만들어질 수 있지만 인상은 다른 이야기다. 온전히 본인이 살아온 길, 걸어온 길 그리고 삶에 대한 열린 생각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만들어지는 것 같다.
또 언제 사장님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에도 몇 시간 안 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참 많은 지혜를 나누어 주시고 가셨다. 나와 남편이 고민했던 그러나 경험하지 못해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사장님의 경험과 느낀 점들 그리고 사장님의 시선까지 함께 공유해 주셔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사장님처럼 80대가 되어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으로 남은 시간을 채워갈 수 있을지....
관상은 과학이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 어느 회사는 면접 보는 자리에 관상가를 앉혀두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관상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인상이 내 마지막 육체에 씌워질 얼굴이라면 정말 선한 인상으로 내 고집이 드러나지 않고 선하게 가려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