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꿈에서 바라본 나는 불행했다

제삼자가 되어 나를 지켜본다는 것

by 지젤리

새해를 보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맞이하고 싶어서, 나는 연말에 여행을 떠났다. 한 해 동안 지치고 해진 마음을 깨끗하고 찰박이는 바닷가에 씻어서 맑고 투명한 마음으로 갈아 끼운 뒤 돌아오고 싶었다. 새로운 잠자리가 낯설어서인지 나는 일주일 내내 잠을 만족스럽게 자지 못했다. 충분히 숙면을 취하지 못해 오전 시간이 몽롱하고 피곤했지만 침대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잠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꿈을 너무 생생하게 꾼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꿈을 종종 꾸기는 했으나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는데, 눈을 뜨면 꿈이 남아있었다. 문제는 늘 우울하고 기분이 나빠서 잠에서 깬 나도 그 기분에 전염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꿈속에서의 내가 인지를 했다. 이건 꿈이라는 걸. 생생하게 보이는 꿈속의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무력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자꾸 일이 반복적으로 꼬이고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설마 설마 하다 보면 정말 그 상황이 일어나거나 더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왜 이렇게 이 꿈들은 불행할까.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침으로 베이글을 먹으며 꿈들을 복기해 봤다.


깨달았다.


어차피 이건 내 꿈이라서 내 생각과 상상대로 모든 이야기의 전개가 흘러간다.


이 꿈의 배경과 인물, 내용들은 외부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가져올 수 없다.

이건 오로지 꿈의 주인공인 내 머릿속에서만 만들어진 세상이기 때문이다.


왜 나는 이런 꿈을 꾸게 됐을까.

나는 원체 걱정이 많기는 했어도 낙천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훌훌 털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겁은 많은데 호기심이 더 많아서 나는 줄곧 도전을 했고, 나를 시험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때는 괴롭고 힘들어도 돌이켜보면 내가 그걸 해냈다는 것 자체가 마일스톤이 되어 훗날 새로운 두려움을 마주쳐도 확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젤리는 매사에 적극적이라서 어디에서든 환영받을 거야, 내 이전 사수님이 말씀해 주시던 한마디 었다.


그랬던 내가 새로운 회사에서 다니게 되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작은 회사라 회사 내 모든 루머와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고, 이곳에 오자마자 자주 혼나고 자주 미움받았으며, 최초로 타지에서 독립을 하면서 나 스스로를 남부럽지 않게 이끌어야 한다는 은근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사실상 모든 것이 된 회사 내에는 많은 변화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아 우리는 자주 상처를 받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본인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 작은 톱니 정도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지만, 자아가 제법 컸던 나는 내가 이렇게나 별거 아닌 존재라니, 푸대접을 받다니 라며 비참함을 느꼈다. 내가 책임질 건 너무 많았는데 또 이게 잘못되면 다 나의 잘못이고 그 피해가 너무 큰 상황이었다. 우리에겐 안전망이 없었고, 그래서 매번 시작하기도 전에 불안했다. 매 맞을까 봐 걱정하는 아이처럼, 나는 행복한 순간에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그 무언가의 눈치를 봤다.


직장동료에게 연말에 여행에서 겪은 꿈 이야기를 넌지시 했다. 조용히 듣던 그녀는 내게 심리학적 용어 중 '재앙화(Catastrophizing)'라는 단어에 대해 얘기해 줬다. 이는 사고왜곡 중 하나인데,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게 망가질 거라고 상상하는 등, 실제보다 상황을 더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고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지젤리, 사고의 재앙화를 멈춰야 해. 네가 생각하는 상상들이 이전 과거에 있었던 반복적인 패턴을 바탕으로 한다지만, 아직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덜컥 겁먹고 우울해져선 안돼.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회사를 나의 전부로 만들지 않기로.

더 진심이고, 더 애써서 나는 그 모든 것에 상처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 말고 더 중요한 나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 회사가 나의 모든 게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회사를 마치면 이전부터 궁금했던 데이터 툴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를 상처 입힐 수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 바닥 아래에는 지하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