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빠의 프사가 나였다

아빠를 실망시킬 순 없지

by 지젤리

또 다른 출장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비즈니스 트립이지만 이번엔 가고 싶은 지역에 배정받아 새벽부터 들뜬 마음으로 일어났다. 기내에서 일을 조금 하고 내려서 일을 조금 했다. 퇴근 후 저녁에 근처 지역을 돌아다니고 로컬 맛집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상쾌한 바닷공기, 처음 먹어보는 음식, 웃음이 나왔다.


조금 늦은 시각 호텔에 돌아왔다. 샤워를 하려고 따뜻한 물 온도를 체크하고 욕조안에 들어갈 때였다. 욕조가 지나치게 미끄럽다고 생각했는데 미끄럼 방지턱이 없었다. 발을 헛디디고 우왕좌왕하다가 욕조 옆 턱에 떨어졌다. 아프다고 인지하기도 전에 신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주저 앉은 자세라 무엇보다 일어날 수 있을지 손을 뻗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데 물이 계속 차올라서 공포스러웠다. 이대로 물에 잠겨서 일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나는 간신히 물을 잠궜다. 다행히 일어나는 것까지도 문제 없었으나 늑골이 무서울 정도로 아팠다. 외상에 흉터가 없다는 게 더 무서웠다. 내부에서 부서진 것같아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나는 내일 새벽부터 업무 일정이 있었고, 이 시각에 연 병원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컨디션을 위해 일찍 자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혹시나해서 다친 부위와 숨쉬는 영상도 찍어뒀다. 침대에 눕자 자세가 본격적으로 바뀌면서 몸이 부서질 것 처럼 아파서 무서웠다. 눈을 감으며 몸이 달달 떨렸는데 이게 아파서 떨리는 건지 무서워서 떨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땐 침대시트가 핏자국으로 선명했다. 붉은 자국들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나는 뒤척이며 내 몸을 확인하다가 왼쪽 발 뒤꿈치가 완전히 벗겨진걸 봤다. 뼈가 너무 아파서 느끼지도 못했는데 완전히 까져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핏빛 비쥬얼에 놀랐는데도 여전히 갈비뼈 보단 덜 아팠기에, 난 마저 골절 치료 영상을 봤다.


그 이후에는 평범했다. 일은 역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지연이 있었고, 중요한 일정이 틀어질뻔했지만 이번에도 다행히 해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푹 잤다. 늘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엄마아빠에게 어제 오늘의 사진 몇개를 보냈다. 하늘이 예뻤던 저녁 풍경, 맛있다고 노래를 부른 음식, 업무 사진 정도였다.


다음날 별안간 사촌언니한테 지젤리 되게 멋있다고 연락이 왔다. 나랑 10살 터울이 나는 제법 언니같은 사촌언니로 1년만에 온 연락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멍한 나는 카톡을 보다 아빠의 프사가 나로 바뀌어져 있는 걸 확인했다. 업무를 하면서 옆 동료가 찍어준 사진이었는데, 주요 컨벤션 행사 앞에서 회사 로고와 함께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 내 모습은 사뭇 전문적으로 보였다. 아빠는 그 사진을 저장해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았던 것이다. 스스로의 사진도 프사로 해놓지 않는 나는 화들짝 놀라 아빠에게 당장 내리고 딴 풍경 사진으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아빠는 '이것도 이쁜데. 그래 좋은 사진 보내줘라'라며 프사를 바꿨다.


당시엔 불에 덴 듯 놀라서 아빠에게 사진을 바꾸라고 종용하기 바빴지만, 돌이켜보니 그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빠는 늘 나를 자랑하고 싶어했다. 내가 힘들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며 스스로를 자책할 때에도, 진짜 잘하고 있는 거라고 자랑스럽다며 매번 내 사진을 프사에 올리고 싶어했다.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했다. 이번에는 결국 당신의 마음을 이기지 못해 허락도 받지 않고 올려버린 셈이지만, 아빠의 나를 향한 자부심은 내가 일을 더 자랑스럽게 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내가 보는 나는 지루하고 힘든 순간들로 고통받고 있을지라도, 아빠는 지금 내 모습을 멋있게 생각한다는 게 나를 일어서게 했다. 가끔은 나를 애정하는 제 3자의 모습에서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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