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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Feb 20. 2022

예측가능한 아웃백의 맛

“이것도 하자.”


친구와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열심히 메뉴를 살피던 중, 메뉴 하나를 더 고르며 친구가 말했다.


“투움바? 좋지. 아웃백은 이거 먹어줘야지.”

흔쾌히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손을 번쩍 들어 직원을 불렀다.


“일단 기브미 파이브 하나랑 투움바파스타 주시고, 샐러드는 감바스 샐러드로 할게요.”


“천 원 더 내시면 수프와 에이드 추가 가능한데 그렇게 해 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에이드와 수프까지 고르고 나서야 주문이 끝났다. 실로 오랜만에 방문한 아웃백.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마지막 방문을 따져 보니 거의 4~5년 전인 것 같았다. 사람들의 외식 패턴이 변해서인지는 몰라도, 00년대부터 10년대까지 유행이던 패밀리 레스토랑은 지금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 많던 체인점들은 거의 정리되고, 아웃백은 그나마 드문드문 눈에 보이는 편.


 갑작스럽게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를 방문한 것은 다른 게 아니고 두 해 전 쯤, 친구가 생일이라고 보내준 5만원짜리 식사권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식사권을 받자마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서 일하게 되며 아웃백을 방문할 기회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하염없이 기프티콘 선물함에서 사용기간 연장만 당하다가 가까운 친구에게 신세를 진 것도 갚을 겸해서 드디어 날을 잡은 것이었다.


“난 여기 진짜 오랜만인데.” 직원이 가져다 준 식전 빵을 자르며 내가 말했다.


“나도 한 5년 만인가? 어두컴컴한 분위기 여전하네.”


“왜 자주 못 올까?” 자른 빵에 스프레드를 발라가며 내가 물었다.


“가격이 일단 비싸잖아? 아까 토마호크 스테이큰가 가격 살벌하더만.” 친구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하긴…. 그거 하나 시키면 거의 20만원 나오겠던데.” 메뉴판을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


“요즘은 아웃백에서 지불해야 하는 가격대에 다른 선택지가 엄청 많잖아. 그런 점에서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려나는 거지.” 식전빵 한 조각을 입에 털어넣으며 친구가 말했다.


“옛날 우리 고등학생 때는 아웃백 갔다 오면 자랑거리였는데. 그치?”


“와, 그게 언제야…? 최소한 10년 전?”


“그 왜, 우리 누가 사준 적도 있었는데. 무슨 경진대횐가 갔다가, 터미널 근처에서 고생했다고.”


“어, 그거 누구였더라. 무슨 법… 법 관련 시험이었는데. 선생님이 사 줬었어! 맞아!”


친구와 과거 아웃백의 위상을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가기도 잠시, 곧 수프와 에이드가 제공되었다.


“수프 맛있다.”


“그러게. 맛은 여전하네.” 수저를 내려놓으며 친구가 말했다.


이어 샐러드와 기브미 파이브라는 여러 가지 튀김과 립이 식탁에 올랐으며, 투움바 파스타도 그 뒤를 이었다.


“다 올려놓고 보니까 엄청 많은데?”


“일단 먹기 전에 사진 좀 찍고.” 친구가 휴대전화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넌 SNS도 안 하면서 사진은 왜 맨날 찍니?” 내가 물었다.


“이건 어디 올리는 게 아냐. 그냥 내 기록용 사진이지. 나중에 자기 전에 누워서 며칠 간의 갤러리 보면 되게 재밌어. 우리 셀카도 하나 찍자.” 열심히 음식 사진을 찍은 친구가 휴대전화를 높이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제 먹어도 되겠는지요?” 몇 번의 셀카 테이크 끝에 내가 물었다.


“넵. 고생하셨습니다.”


이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식사에 열중했다. 감바스 샐러드는 새우와 채소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외의 것들은 하나같이 모두 맛있었다.


“맛은 있는데, 예전만큼의 뭔가 확 와 닿는 건 없달까….” 차려진 접시가 반 이상 비워졌을 무렵 친구가 말했다.


“나도 그 생각하긴 했어. 약간 보이는 그대로, 예상되는 맛.”


“왜 그럴까? 분명 맛은 있는데.” 입맛을 다시며 친구가 에이드를 빨아들였다.


“‘경험’의 차이. 아마도.” 내가 말했다.


“우리가 늙었다는 얘긴가?” 친구가 씁쓸하게 물었다.


“아니. 우리가 그만큼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도 했고, 아까 네가 말했던 것처럼 아웃백을 대신할 다른 맛있는 음식들도 많이 먹고 했으니까. 처음 아웃백 음식을 먹었을 때만큼의 감흥(感興)이랄 게 없다고 봐야겠지.” 내가 답했다.


“지금이야 아웃백 음식에서나 느끼고 있지만, 난 나중에 이런 스탠스가 내 삶 전반에 퍼져나갈까 봐 조금 겁나.” 친구가 하나 남은 새우롤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어? 대신 새로운 것이 없으니 좀 더 태도가 여유로워지겠지.”


 그날 식탁에서 느낀 권태(倦怠)는 뭔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이제 나는 ‘먹을 만하다.’ 정도로 평가할 만큼 나이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경험이 늘어나서 감흥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새로울 게 없이 어느 정도 일상이 예측가능해진 것인지는 몰라도, 인당 4만원에 버금가는 식사를 하면서 느낀 감정이 권태로움이라니. 예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추억에 잠기게 해줄 줄 알았던 식탁에서 오히려 나는 앞으로 내 삶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나의 태도를 예측하게 되었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럭저럭.’ 정도? 예측가능한 내 인생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새로운 경험을 할 일은 몇 번이나 남았을까? 후식으로 제공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야, 아까 우리 비싼 거 안 시켜서 그런 거 아냐?” 커피까지 다 마신 친구가 킥킥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지도 몰라. 우리가 성장한 것에 비해 아웃백은 여전히 비싸다 야.” 나도 같이 웃으며 친구를 따라 일어났다.


“그래도 투움바는 맛있더라. 간만에 먹으니 진짜 맛있네. 잘 먹었어. 다음엔 나다?”


그렇게 친구와의 식사를 마무리했다. 무척이나 긴 식사시간이었다.

그날 식탁의 MVP. 투움바 파스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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