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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Feb 25. 2022

1년 지난 코로나19 자가격리 일기

※ 해당 코로나 확진기는 1년 전의 기록을 당시 작성한 일기를 토대로 구성한 내용입니다. 현재의 격리절차와 변경된 확진자 대응 지침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주초부터 시작된 감기기운으로 열이 37.5도로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몇 번, 잠에서 깨어나면 침대 시트를 흠뻑 적실 정도로 땀이 나고 몸살 기운이 좀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코로나 환자가 많지 않던 때였고, 내 동선은 당시 회사에서 맡은 일이 너무나도 바빠 회사와 집밖에 없고 사적 모임은 꿈도 꾸지 못할 때라, 내가 확진자일 것이란 생각은 못하고 ‘그저 감기겠거니’ 하며 간간히 약을 챙겨 먹으며 주말도 없이 일을 했었다. 감기기운은 약을 꾸준히 먹은 탓인지 주 후반부가 되어가며 점차 사라졌으나, 감기 기운이 사라지며 또 다른 증상을 하나 남기고 갔다.


“나 지금 코가 뻥 뚫려 있거든? 근데 아무 맛도 안 나.”


일요일 저녁,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내가 이야기하자 다들 나를 걱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내일 바쁜 업무 고비 하나 넘긴다며? 그거 끝나고 조퇴해서 검사 받아봐.” 아버지께서 측은해하며 나에게 말했다.


[2021.2.22.]

다음날, 정말 바빴던 일의 고비를 하나 넘기고 회사에 쿨~하게 던진 오후 병가. 내가 달려간 곳은 시내의 큰 병원이었다. 병원 입구에서 보호복(?) 같은 것을 입은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코로나19 검사받으러 왔는데….”


“확진자 접촉하셨어요?” 간호사가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증상이 좀 의심되어서요.” 멋쩍어하며 내가 대답했다.


“여기서 접촉자 아닌데 검사받으시려면 비용이 10만 원 나와요. 보건소로 가시면 무룐데.” 간호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가격에 입이 떡 벌어졌다.


“헉, 10만 원이요? 너무 비싼데….”


당시 월급날을 얼마 앞두지 않은 내 통장에는 10만 원의 검사비를 감당할 금액이 없었다. 더군다나 확진일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검사비용이 비싸다니? 머뭇거리며 망설이고 있자 간호사가 덧붙였다.


“그러면 보건소 가셔야 하는데, 거기는 검사 결과가 하루 있다 나올 거예요. 결과 나올 때까지 격리하셔야 하고요.”


“아, 저 검사 결과 진짜 빨리 받아야 하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저 내일 꼭 출근해야 해요.” 다급해진 내가 말했다.


“그러면 △△시 **병원은 조금 결과가 빨리 나온다던데, 그 쪽으로 가 보시는 건 어떠세요?”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병원 직원분은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시의 옆 △△시의 어느 병원에서는 코로나19 검체를 수시로 수송해가기 때문에 결과가 길어야 4시간이면 나온단다.


“아,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가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차를 돌려 △△시 병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는 길은 30분.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하자, 병원 내에서 말고 이번에 획기적으로 ‘드라이브 스루’ 검사를 도입했단다. 장소는 병원에서 차로 5분 떨어진 어느 공터. 커다란 천막이 쳐져 있었고, 한쪽 방향으로 내 앞의 차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 차례가 되기까지 약 10분 정도 걸렸다.


“이것부터 작성해주세요.” 보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차창 밖에서 종이와 펜을 넘겨주었다. 간단히 인적사항을 적고 나니 곧 가느다란 통 두 개를 들고 왔다.


“목부터 검사할게요, ‘아-’ 하세요.”


의료진의 명령(?)에 따라 입을 벌렸다. 면봉이 몇 번 목 안쪽을 건드리고 빠져나왔다.


“이번엔 코 할게요. 좀 아파요.” 의료진이 미리 경고했다.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겠어?’ 하고 창문 쪽으로 코를 가져다댔다. 곧,


‘쑥-’


“어어어어!!! 어어!!”

자동으로 소프라노 가수가 되어 고음을 뽑아냈다. 방금 내 코에 꽂은 면봉이 뇌까지 찌른 느낌. 눈에서는 연신 눈물이 났다.


“아우, 너무 아픈데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내가 말했다.


“원래 좀 그래요. 이제 댁으로 가셔서 결과 나올 때까지 격리하시고 기다리세요.”


“결과는 언제쯤 나올까요? 지금이 오후 3시인데.”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내가 물었다.


“아마 저녁 늦게 쯤 나올 거예요. 문자 확인하세요.” 의료진은 기다란 검체 채취병을 들고 다시 천막에 이어진 컨테이너 안으로 사라졌다.


얼얼한 코를 문지르며 집에 도착해 안방에 자리잡았다. 격리하려면 전용 화장실도 필요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긴 시간을 보내려면 푹신한 침대와 TV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메신저로 동거 가족들에게는 ‘안방 출입 엄금. 검사자 격리 중.’을 써 보내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을 뒹굴거렸을까?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은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문자는 오지 않았다. 조바심이 나 병원 측에 전화를 걸었더니, 병원 측에서는 아직 검사 중이니 내일 오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이 왔다. ‘그래. 마음은 조급하지만, 내일 오전까지만 병가를 내고 오후부터 가서 다시 열심히 일해야겠다.’ 생각하고 그동안 바빠서 미루었던 잠을 치렀다(?).


[2021.2.23.]

다음 날 아침, 문자로 와 있어야 할 검사결과는 여전히 와 있지 않았다. 언제 나오려고 하는 걸까? 마음이 조급해져 9시가 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어제 OO병원 드라이브스루 검사소에서 검사한 OOO이라고 하는데요, 제 검사 결과가 언제쯤 나올까요? 저 오후에 출근해야 하는데.” 이 질문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양성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검사결과가 나와야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결과를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 OOO님. 안 그래도 문자 드리려고 했는데. 검사 결과 양성이세요.”


하늘이 내려앉는 것만 같은 소식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양성… 양성이라고요? 그럼 확진인 건가요? 저 큰일 나요, 저희 회사 사람들 다 검사해야 해요, 그러면. 확실하게 말씀해 주세요.” 충격도 잠시,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재차 수화기 너머로 질문을 던졌다.


“몇 번이고 다시 검사해봤는데, 결과 양성이세요. 확실히 검사하느라 통보 늦어진 겁니다. 문자 보내드리고 보건소에서 곧 연락 갈 테니, 동선 역학조사에 협조해주세요.”


수화기를 통해 전달된 것은 저게 마지막 대화였다. 곧 휴대전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OOO 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검사결과 [양성]입니다.’ - **병원 -


문자는 너무나도 덤덤하게 충격적인 정보를 전해주었다. 뭐부터 해야 하지? 회사는? 가족들은? 최근에 누구랑 밥을 먹었더라? 경황이 없는 채로 가족들에게 정보를 전한 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찰나, 회사 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OO씨, 검사 결과 나왔어~? 뭐~래?” 수화기 너머로 팀장님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높은 톤의 목소리는 이 일이 별 거 아닌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정도 묻어 있었다.


“어, 그게, 저기…. ‘양성’… 이라는데요….” 말끝을 흐리며 내가 답했다.


짧은 침묵. 곧,


“뭐!? 진짜!? 내가 다시 전화할게! 일단 집에 잘 있어! 몸조리 잘 하고!” 팀장님은 다급한 와중에도 내 걱정을 해 주며 전화를 끊었다. 아마 회사 내에 확진자 발생사항을 전파하고 대처를 준비하느라 바쁘시겠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시골이었지만, 다니는 회사는 그래도 수백 명이 다니는 제법 큰 규모의 회사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들을 다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만, 회사 내 ‘1호 확진자’가 생긴 것은 다소 큰 화제였을 것이다. 그렇게 ‘1호만 아니면 된다.’ 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고, 강해진 사내 규제에 내심 ‘누가 시범 케이스로 나서야 하는데….’ 하고 우스갯소리를 동료들과 주고받던 나였는데, 그게 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팀장님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마 옆 동네인 △△시 보건소 직원 번호인 것 같았다. 전화를 받자 그간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서 카드결제 내역을 조회하겠다는 안내와 함께, 내 셀카를 찍어서 사진을 보내고 종이를 구해 지난 일주일간의 동선을 나에게 적으라고 안내해 주었다. 역순으로 가까운 요 며칠간의 식사 장소와 몇 명의 접촉 명단을 적어내기를 몇 번, 지난 주 초반부터는 정말 기억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아, 저, 정말 죄송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월요일에 누구랑 뭘 먹었는지가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다시 보건소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면 일단 작성한 접촉자 명단이랑 동선 사진 찍어서 제 번호로 보내주세요.” 짤막한 답변을 받고 통화는 끝이 났다.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번호로 전화가 왔다.


“OO씨, 안녕하세요. □□시 보건소예요. OO씨 동선을 좀 파악해야 해서 연락드렸어요.”


“어, 저 방금 동선 관련해서 △△시 보건소 직원이랑 통화 했는데요.”


“아, 그게 OO씨가 △△시 가서 검사를 받는 바람에, △△시 확진자가 된 거라 그쪽에서 조사를 한 거고요, 이제 실제로는 우리 □□시 거주자시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자체적으로 동선을 파악해야 해요.” 보건소 직원이 설명했다.


“아, 알겠습니다. 동선 적은 거랑 다 보내드릴게요.”


짤막하게 답변한 후, 방금 △△시 보건소 직원에게 보내준 것들을 똑같이 보내주었다. □□시 보건소에서 또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동선은 이걸로 파악해서, 다니신 곳은 다 방역처리 할 거고요. 그리고 또 OO씨가 적어내신 밀접 접촉자 분들은 검사 받고 다 2주간 격리되실 거예요.”


밀접 접촉자는 약 15명가량 되었다. 업무 차 만난 외지인 3명, 우리 팀 직원 4명, 주말에 출근해서 같이 식사한 2명, 회사 관련자 3명, 이틀 정도 같이 카풀한 직원 1명. 이들도 다 검사를 받아야 하고 이후 동선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나 때문에 이게 무슨 민폐인가.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수화기를 붙잡고 보건소 직원에게 내가 물었다.


“내일 앰뷸런스가 격리 시설로 모셔다 드릴 거예요. 시설 입소 관련해서는 저희가 문자 보내드릴 거니까 그거 보시고 입소 준비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그렇게 격리가 시작되었다. 내 격리일은 10일. 10일 정도가 지난 후에는 전파력이 없다고 판단되어 격리가 해제된단다. 다만 나랑 접촉한 사람들은 잠복기를 고려해서 14일 격리. 접촉자가 확진자보다 더 긴 격리기간은 약간 아이러니했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회사와 가족들. 어떻게 해야 하나. 나 하나 때문에.


점심 무렵부터 안면이 있는 직원들이, 우리 부서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우리 회사 1호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확진자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려던 그 통화들은 ‘그 1호가 나다.’라는 내 답변과 함께 머쓱해지며 종료되기가 몇 번. 저녁부터는 전화도 오지 않았다.


[2021.2.24.]

다음 날은 나와 접촉해서 격리된 사람들로부터 오는 전화로 시작되었다. 검사 결과 모두 음성. 전파시키진 않은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와 동시에 의구심도 들었다. 내가 바로 그 ‘확진자’인데, 내 주변에는 전파된 사람이 없다고? 그럴 수가 있나? 나는 정말 확진자인 것인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오전을 보내고, 엄마가 안방으로 밀어 넣어 준 점심 식사를 마치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격리시설로 데려다 드릴 앰뷸런스인데요. 지금 아파트 단지 내에 도착했습니다. 내려오시면 돼요. 내려오실 때 비닐장갑 같은 것 꼭 끼시고, 다른 시설 만지셔야 합니다.” 소방서에서 나온 건지, 의료원에서 나온 건지 모를 앰뷸런스 담당자는 간단하게 안내를 끝냈다.


“아, 저 지금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누가 타면 어떻게 하나요? 계단으로라도 내려갈까요? 근데 계단에서도 만나면 어쩌죠?” 다소 걱정이 되어 내가 물었다.


“어…. 괜찮을 거예요. 일단 내려오세요.”


불명확한 답변과 함께 통화는 종료되었다. 나와 만난 사람들을 검사하고 동선을 파악한다고 어제 한나절 소란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약간은 의문이 드는 대처였다. 전날 받은 문자를 입소 안내 문자를 바탕으로 간단히 짐을 꾸렸다. 입고 간 옷은 버리고 나와야 하며 퇴소 시 내가 입을 옷을 누군가가 택배로 입소시설에 보내주어야 한단다. 자주 입지 않던 옷으로 입고 휴대전화 충전기만 덜렁 챙겨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 집은 아파트 최고층. 제발 아무도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은 5층 정도 채 내려가지 못해 발생했다. 엘리베이터에 부녀가 탑승한 것이다. 이 분들은 내가 확진자인 것을 모르겠지? 알면 기분이 어떨까? 너무나도 마음속으로 죄송한 느낌이 들었다.


밖의 날씨는 2월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따뜻했다. 이틀 만에 집 밖으로 나와서 맞이하는 오후의 햇살에 나름 기분이 좋았다.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서니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그래도 이상한 비닐막이 씌워진 들것에 실려 나가지 않는 것이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앰뷸런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코로나 때문인지 밀린 피로 탓인지 잠이 꾸벅꾸벅 와서 의자에 앉아 졸았다. 그렇게 40분 정도를 달려 앰뷸런스는 옆 ◇◇시의 입소시설에 나를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아마 또 다른 확진자를 태우러 가겠지?


입소시설 외관은 평범했다. 어떻게 보면 병원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수련원처럼 생기기도 했었다. 시설 입구에서 누군가 맞이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디로 가야할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OO씨, 화살표 따라오시면 됩니다.”


입소시설에 도착한 확진자에게는 방송으로 동선을 안내하는 모양이었다. ‘오~ 런닝맨같은데.’ 하면서 게임의 지시에 따르는 캐릭터처럼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마치 버스 매표 부스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고, 안에는 보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OO씨, 이쪽입니다.”


부스 옆에서 간단한 증상 설문과 엑스레이 검사(?)를 마치고, 칸막이 너머로 시설 생활 안내가 시작되었다.


“다 됐습니다. OO호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퇴소일 당일 아침에 입고 나가실 옷을 가지러 오실 때 빼고는 절대로 방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아, 저, 그건 알겠는데, 결과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제가 확진이라는데 제 주변 사람들은 전부 다 음성이거든요? 검사 다시 한 번만 해 볼 수 없을까요?” 전날부터 들었던 의구심을 해소하고자 내가 물었다.


“다 음성이시면 다행인 거죠. OO님은 확진 맞으시니까 물품 챙겨서 해당 호실로 입소해 주세요.” 돌아오는 대답은 생각보다 간결해, 뭐라 더 말을 덧붙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 확진자 입소생활이 시작되었다. 방에 도착해서 본 입소시설은 약간 작은 콘도 느낌이었다. 책상이 있고 화장실이 딸려있었으며, TV와 침대도 하나씩 있었고 또 발코니가 있었다(문은 열리지 않았다.). 호실 입구에는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휴지, 비누, 샴푸, 세탁세제 등이 들어있고, 손가락에 끼워 산소포화도를 재는 기기와 혈압 및 체온을 재는 기기도 같이 있었다. 이걸 이용해서 아침, 저녁마다 내 상태를 측정하고 이를 어플리케이션에 입력해야 한단다. 도착하니 곧 저녁인지라 밥을 나누어 준다고 방송이 나왔다. 저녁밥이 모두 배부된 것은 저녁 6시 쯤. 여전히 입맛은 없었지만 많이 먹어야 회복도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받은 도시락을 모두 욱여넣고 잠에 들었다.


[2021.2.25.]

다음 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웬 입소자가 호실 밖으로 나와서 기물을 파손하고 남의 방을 열려고 하는 등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을 제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 직원들은 감염의 우려 때문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고 후에 도착한 경찰 역시 접근이 어려워 보였다. 내 호실이 위치한 2층에서 시작된 난동은 1층부터 4층까지 전부 다 훑기까지 3시간이 걸렸고 이후 소강상태가 되었다. 난동이 마무리되자 아침 배식을 시작했다. 아침은 죽과 과일. 밤에 배고플 것을 생각해 받은 사과를 남겨두었다. 꽉 찬 입소생활의 시작이었으나, 코로나의 여파인지 자꾸만 잠이 쏟아져 밥먹고 자기를 몇 번 끝에 저녁까지 마무리되었다. 조금이나마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팔굽혀펴기도 하고 스쿼트, 플랭크도 하며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2021.2.26.]

여전히 증세는 미약하게나마 남아있었다. 기침이 나고 가래가 끼고 여전히 사라진 후각과 미각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더 심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기침이 심해져 입소시설 담당자에게 연락해 약을 전달받았다. 코로나 치료제는 아니고 대증(對症)요법을 위한 감기약과 해열제 등이었다. 오늘 보건소 직원과 통화를 했는데, 나는 확진이지만 무증상자로 분류되어 이곳 시설에 입소한 것이라고 한다. 무증상까지는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의사 한 명 만난 적 없었으며, 누구 하나 나에게 아픈 곳이 있는지를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나는 증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잘못 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정월대보름이라고 나물이 들어간 밥과 함께 부럼이 나왔다. 달을 보며 부럼을 깨고 싶었으나 내 호실 발코니에서는 달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밤인데도 환한 달빛만은 느낄 수 있었다. 감상에 젖어들며 잠에 빠졌다.


[2021.2.27.]

시설에서 회복에만 전념해야 하는데, 자꾸만 일이 떠올라서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내가 어디까지 해 놓고 왔더라?’. ‘먼저 하고 있던 건 어떻게 됐지?’. ‘지금 내 업무는 누가 보고 있지?’ 등등. 내가 확진이 되며 나와 밀접하게 접촉했던 부서 사람들이 모두 격리되는 터에 지금 우리 부서는 정말 적은 인원으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날아든 직원 한 명의 부고 소식. 그 직원마저 빠지면 우리 부서는 일이 되기는 할까? 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저런 걱정에 마음이 너무 불안한데, 입소시설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택배가 와서 문 앞에 놓고 갔단다. 퇴소 때 입을 옷이 벌써 오진 않았을텐데? 뭘까, 하는 생각에 문 앞에 놓인 택배를 열어보니 친구가 보낸 택배였다. 내가 어디 시설에 입소했는지 물어봤던 친구가 오한에 덜덜 떨고 있는 내 모습이 상상되어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고 있으라고 보내준 것이었다. 참 고마운 친구다.


[2021.2.28.]

아침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방송에서는 퇴소예정자는 1층 로비에서 퇴소복을 수령한 후 아침 9시까지 방을 비워줘야 한다고 난리다. 그 이후에는 신규 확진자들이 로비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퇴소가 불가능하다나? 그렇게 얘기가 나오고 나면 여러 사람들이 문을 여닫고, 이후 발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려나? 올 때야 앰뷸런스에 실려왔지만 갈 때는 알아서란다. 보통은 콜택시를 불러서 댁으로 돌아간다는데, 어느 택시가 확진자 입소시설에서 나온 사람을 태우고 싶겠냐고. 여기서 집까지는 4~50분 거리인데. 그런 장거리를 뛰는 사람이 있나? 9시 전부터? 이런저런 걱정거리만 늘어갔다.

 오후에는 위층에 새로운 시설 입소자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쿵쾅거리는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여기가 호텔도 아니고 층간소음으로 항의할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간혹 들리는 높고 얇은 톤의 아이들 웃음소리. 아마 확진자가 아이와 함께 들어왔거나, 아이가 확진이 되어 보호자가 따라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한창 뛰어놀고 신나야 할 아이들이 10일씩이나 지내야 한다니. 아이도 보호자도 고역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1.3.1.]

삼일절인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이제 연락오는 곳도 없고 간만에 비를 구경하는 것 같아서 바닥에 누워 발코니를 통해 내리는 비를 하루종일 구경했다. 밖에서는 시간이 잘 안 가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누워만 있어도 시간이 잘 간다. 어쩌면 매 시간마다 할 일이 있고 밥도 가져다놓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창밖으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니 한없이 우울해져만 왔다. 나름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봄비인데, 내 처지가 답답하고 앞으로의 일이 막막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땅 속으로 스며드는 비를 따라 한없이 내 기분도 땅 밑으로 꺼져가고 있었다.

 저녁 즈음 되어서 재미있는 방송이 나왔다. 이라크 국적의 입소자가 있어서 이라크어로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을 전달하더니, 스피커를 통해 누가 봐도 한국인이 읽는 이라크어가 송출되었다. 아니, 요즘은 TTS(Text to Speach) 프로그램으로 다 되지 않나? 이라크어는 지원이 안 되나? 고생하는 의료진을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또한 정성을 다한다는 생각도 들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저녁을 먹고 방 정리를 했다. 나 혼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루 세 끼, 문 앞에 놓인 도시락을 먹다 보니 배출되는 일회용품의 양이 상당했다. 문제는 분리수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냥 주황색 폐기물 봉투에 음식물이고 용기고 구분 없이 집어넣는 수밖에 없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라도 따로 줬으면 했는데, 괜히 요구를 더해 의료진 분들을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방 정리를 끝내고 나니 벌써 9시가 되었다. 이제 잠이 쏟아지는 일은 덜하고 사라진 미각도 약 20%정도는 돌아온 것 같았다. 짠맛만 느껴지던 혀가 조금씩 다른 맛을 느끼고 있는 게 느껴진다. 조금만 더 회복에 집중하자.


[2021.3.2.]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당연히 엄마도 현재 자가격리 중이다. 나보다 기간이 더 긴 14일. 집에서 두 부부가 너무 답답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단다. 두 분은 증세는 전혀 없다고 해서 한 시름 덜었다. 엄마는 나의 퇴소일에 이동이 어떻게 되냐고 우리 시 보건소에 문의했더니 퇴소시설에서 터미널까지 데려다주는 셔틀버스가 있을 것이라고 안내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시설에 확인해 본 결과 여전히 같은 대답. 콜택시 이용 뿐이었다. 시설과 보건소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워낙 일이 많으니까 혼선은 당연히 있겠지. 어쩔 수 없이 입소시설 인근 지역의 콜택시 번호를 안내받았다. 안내를 받으며, 전화를 건 김에 혹시 퇴소 전에 다시한번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불가. 내가 살던 시로 돌아가서 검사를 받든지 하되, 지금 나는 바이러스 보균자라 당연히 양성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단지 여기 시설에서 10일간 격리하는 이유는 10일 이후에는 전파력이 없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라나. 그래도 시설에서 나가면서 ‘음성’ 또는 ‘완치’ 판정을 받아서 내 주변사람들을 안심시켜주고 싶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나가서는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2021.3.3.]

입소시설의 유일한 낙은 때가 되어 들어오는 밥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여행 다큐 프로그램을 실컷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채널만 돌리면 여러 곳에서 방송하고 있는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속으로’같은 여행 다큐를 보며 ‘한때는 나도 저렇게 세계 곳곳을 다니는 직업을 갖고 싶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늦은 것은 아니다. 단지 용기가 없을 뿐이었고 매번 준비할 것이 많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던 내 잘못이었다. 세계테마기행 스페인 편을 보면서 여행이든 어디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현재 전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해외여행은 당분간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점심 무렵에는 외할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다. 내가 입고 나갈 옷을 택배로 부쳤다고 한다. 사실 부모님도 동시에 격리되어 있으니 당장 퇴소할 때 입을 옷을 내가 있는 곳으로 보낼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할아버지께서 평소에 배, 포도 등 농산물을 택배를 통해 판매하시면서 택배 시스템에 익숙하신 분이라는 것이었다. 엄마가 우리 집 문 밖에 내놓은 옷을 고이 포장해서 택배를 보내주신 모양이었다. 나 때문에 할아버지까지 고생이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동시에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2021.3.4.]

아침에 체온 등 어플리케이션 입력을 끝내고, 씻으러 들어갔던 터라 전화를 못 받았는데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3통 정도 와 있었다. 회사 업무 관련 번호인가 싶어 전화를 걸어보니, 시설 퇴소 담당 직원이란다. 퇴소 안내를 위해 전화를 했는데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며 아픈 곳은 없는지 연신 질문을 했다. 그러면서 내일 퇴소에 대해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안내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드디어 이 시설에서 나가는구나. 나가면 나 때문에 자가격리를 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확진자가 접촉자보다 먼저 격리가 끝난다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오전 중에는 우리 시 보건소에서도 전화가 왔다. 내일 퇴소 관련해서 안내를 하는데, 생각해보니 10일만 격리하는 나는 지금 시설 밖을 나가지만, 접촉자로 분류된 우리 부모님은 14일 격리로 인해 아직까지 누구와 접촉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집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머무를 공간은 없었다. 보건소 직원분께 이런 상황을 설명하니, 그냥 집에 가서도 마스크 잘 쓰고 최대한 격리하라는 안내를 해 주셨다.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내일 퇴소 전 정리를 위해 시설 담당자에게 쓰레기봉투 몇 장만 더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세탁 세제는 옷을 세탁하는 데 종종 썼으나, 샴푸와 치약 같은 것은 거의 새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용했던 물건인지라 전부 다 소각처리 해야 한단다. 동시에 입고 온 옷도. 내일 퇴소복 수령 시 입을 옷만 제외하고 전부 다 추가로 받은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았다.  드디어 사회로 돌아간다. 사실 밖에서 나를 바라볼 눈초리들이 조금 무서웠다. 확진자다, 바이러스 보균자다 하면서 나와의 접촉을 꺼릴 것 같기도 했고 모두에게 민폐를 끼친 사람이라는 낙인도 찍힐 것 같았다. 나 정말 일밖에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디 놀러가서 방역수칙을 위반했다든가 혹은 평소에 마스크를 잘 안 쓰고 있었다거나 하면 억울하지나 않았을 것 같았다. 내가 확진자로 분류된 △△시 보건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내가 확진된 날짜와 감염경로를 파악해 보았다. 경로는 ‘원인 미상’. 당연했다. 정말 일밖에 안 했고 내 동선을 파악하려고 해봤자 ‘회사-집’이라는 간단한 동선만 나왔을 것이었다. 나 빼고 내 주변이 모두 음성인 것을 보니 어쩌면 지속된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지나가다 살짝 스친 코로나 균에 감염됐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되었든 주변에 전파시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제 자고일어나면 사회로 나가겠지. 민폐끼치는 것 같아서 이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콜택시 번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부르면 올까? 지금 내가 격리되어있는 이 시설은 우리 시의 경계와 인접해 있었다. 우리 시 외곽에 있는 버스터미널까지만 이동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2021.3.5.]

아침 7시부터 잠에서 깨었다. 먼저 목욕을 한 후, 산소포화도, 체온, 혈압을 측정해 어플리케이션에 입력했다. 결과는 모두 정상. 곧 방송이 나왔다. 퇴소자는 퇴소복을 받으러 해당 장소로 마스크를 끼고 나와달라는 내용. 나가면서 누굴 만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내가 나가는 날의 내 층에는 나밖에 없었는지 아무도 동시에 나오지 않았다. 퇴소복이 놓여있다고 안내받은 장소에 도착하니 택배 상자가 여러 개 있었다. 그중 내 이름이 적힌 상자를 들고 속히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중 9시 전까지 퇴소를 마쳐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퇴소자는 퇴소복 위에 보호복(?)을 덧입고 덧신까지 신은 채 밖으로 나와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어 퇴소가 불가능하게 될까봐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들고나갈 수 있는 전자기기와 충전기만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나오기 전에 내 호실을 배경으로 셀카 한 장을 찍었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했고, 또 ‘우리나라의 방역체계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의료진분들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시설을 나섰다.

 처음 들어올 때 지났던 1층으로 내려가자 로비에서 퇴소를 담당하는 직원이 나를 맞이했다. 고생 많았다고 격려해주며, 증상은 없는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고 나서 시설 밖으로 나가면 보호복(?)을 벗어둘 수 있는 쓰레기통이 있다며 옷 위에 덧입은 옷들을 벗어놓고 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10일 만에 밖으로 나왔다. 밝은 햇살은 변함이 없었고 초봄의 시원한 공기가 마스크 안쪽으로 훅 파고 들어왔다. 이제 집에 가는 일만 남았는데…. 선택은 없다. 콜택시 뿐. 택시회사로 전화를 걸어 여기 입소시설인데 □□시까지 XX지역까지 가는 택시를 잡아줄 수 있냐고 물었다. 택시회사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쿨했다. 10분 정도 걸릴 거라며 차량 번호를 안내해 주었다. 곧 내 앞에 도착한 검은 택시. 택시 아저씨는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으로 60대는 족히 넘어 보였다.

“□□시? 맞죠?” 조수석 창문을 열고 택시기사님이 나를 보고 물었다.

“네.” 하고 대답하자 기사님이 차량 뒷좌석으로 타라고 손짓을 했다. 차에 타니까 곧 질문이 쏟아졌다.


“격리시설에서 나오는 거유?” 기사님이 물었다.

“네.” 혹시라도 말하다가 아직 남은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은 아닐까 하여 짤막하게 대답했다.


“원래 집은 어디고?” 기사님은 재차 물었다.

“□□시 OO지역이에요.”


“근데 왜 XX 지역까지만 간다고 하셨대?”


“아, 그냥 택시 오래 타면 뭔가 좀 걱정되기도 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요.” 실제로 나는 우리 집앞까지 가는 길이 아니라, 중간에 어느 지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을 택했다. 시설에서도 전파 우려는 없다고 했으니까 택시 비용으로 나갈 금액을 아끼고 싶었다. 대신 아낀 돈으로 부서 내에 약소하게나마 선물이라도 준비할 생각이었다.


“에이그. 말을 하지. 그랬으면 얼마 정도 선에서 합의를 보고 집 앞까지 가는 건데….” 기사님은 아쉬운 듯이 말을 했다. 그 이후로 대화는 단절되었다. 20분 정도가 지나 내가 요청한 XX지역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우리 집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 수월히 갈 수 있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죄송해요. 아침부터….”

혹시라도 내가 마수걸이 손님이었는데 환자 손님을 받은 건 아닐까 해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아저씨는,


“학생(?), 괜찮아. 다 나았으니까 나온 거잖아? 아픈 게 죄도 아니고…. 당당하게 살아. 기운 내고! 고생했어!” 하며 되레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 말을 듣는데 정말 가슴 속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기운이 있어 이를 억누르느라 애먹었다. 사실 기사님께서 해 주신 말은 그동안 바깥 일을 걱정하며 눈치만 보던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 내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아무리 부인해봤자 나는 이미 주위에 상당히 민폐를 끼친 인물이 되어있어 계속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기사님의 말 한 마디가 조금이나마 웅크려있던 내 마음을 펴 주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최대한 격리하고자 하였으나, 부모님과 마스크를 쓰고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간략하게 시설 입소 생활 브리핑을 하고 주변에 연락을 드렸다. 걱정하셨을 직장 동료분들, 또 업무 관계자분들, 그리고 마음 써준 친구들. 모두에게 연락을 돌리고 나니 드디어 길고 길었던 내 코로나19 격리기가 끝나는 느낌이었다.


길다면 길지만 생각보다 체감은 짧았던 내 생에 1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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