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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Nov 09. 2021

사랑의 총량.

사랑은 총량이 정해져 있다.


먼저 쓰는 만큼 나중에는 고갈되어 쓸 양이 부족해진다.


그렇다고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이나마 남은 사랑은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라고 하는 흘러간 옛 노래가 마음에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 초반부터 중반까지.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연애를 두 세 번 정도 거치고 나니까, 어느덧 나에게는 남은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말했듯이,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누군가를 만나면서 이성이 좋아하는 행동들을 익히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내 옆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로 거듭 채워졌다.


결혼한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결혼할 때 즈음에는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절대로 그런 잔열(殘熱)같은 사랑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풀 꺾인 여름 더위의 맥없는 위세와 같은 마음으로 누구랑 평생 함께할 각오를 다지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인 것은 이맘때즈음 만나는 상대도 나와 비슷하다는 것. 적당히 나를 사랑하는구나. ‘이 사람도 남은 게 얼마 안 되는구나.’ 하고 느껴지는 것이 그나마 내 마음 속에 드는 죄책감을 줄이는 수단이었다.


상대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렇게 적당히 내 옆자리의 연인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그걸 모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내뱉을 만큼 어리지도 않았고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 사람도 애쓰고 있구나.’ 하는 측은한 생각이 들 때가 문득문득 있을 뿐이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넘고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마음 속 한 켠에 드는 의문은 항상 걷히지 않는 안개처럼 머릿속을 뿌옇게 흐려온다. ‘정말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


뜨겁던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니다. 그 시절의 내 모습이 그리운 것도 아니다. 단지 그때와는 사뭇 다른 지금의 사랑이 가진 모습이 조금은 어색할 뿐이다.


흘러간 시간들은 당연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 때는 세상에 단지 둘 뿐이었고 세상 모든 풍파에 시달리지 않고 서로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으니 그때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이 된다.


두세 번 그런 세상이 무너지고 난 슬픔 뒤에 남는 것은 언제나 원망보다는 허탈함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의 상대방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한두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법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랑의 그릇을 볼 때, 후회하는 감정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덕분에 행복했다고. 확신이 드는 순간 나머지까지 다 털어 쓰겠다고.


그 마지막 확신이 언제쯤 찾아올지는 모르겠다. 옆자리가 매번 누군가로 채워짐에도 불구하고 입맛이 쓴 이유는 약간이나마 아쉬워서일지도. 조금만 아껴 쓸걸 그랬나?


역시 사랑은 총량이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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