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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Jan 15. 2022

씨몽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지금이야 ‘과학’이라고 불리는 것과의 접점이 거의 없지만, 유년시절 나는 어울리지 않게(?) 나름대로 과학에 흥미가 있었다. 그 때는 ‘자연’시간이라고 불렀던 그 과목. 해당 과목이 있던 시간에는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점이 좋았고, 내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된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었다. 또 동네 코흘리개들이 으레 여름에 남녀 가리지 않고 또래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서는 곤충채집에도 나는 항상 앞장섰었다. 한때는 학년 초기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장래희망이 곤충학자라고 적어내기도 했었으니까.


 그때 당시 우리 엄마는 그래도 어린 자녀가 과학이라는 것에 흥미를 보이는 것이 대견했는지, 어려운 형편에도 어린이 과학 잡지(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를 구독해 주셨었다. 아마 주변 내 또래 누구네 엄마에게 들었을 것이다. 그런 잡지가 있다는 얘기를. 기억을 더듬어보면 구독비가 꽤나 비쌌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자식이 학문과 연관된 것에 흥미를 보이자 엄마는 무리해서라도 자녀의 견문을 넓혀 주고 싶었나 보다. 대신 “너, 이거 꼭 읽어야 된다.”는 당부의 말씀도 함께 주셨었다.    


 그 잡지에는 어린이가 과학에 흥미를 가질 만한 여러 주제의 글이 실렸었다. 지금은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중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씨몽키’라는 과학 관련 상품 광고였다. 매달 받아보던 잡지에 매번 한 페이지를 차지하며 실려 있었던 광고. 기억으로는 ‘물만 부어서 잠자는 생명을 살려낸다.’ 뭐 이런 캐치프레이즈였던 것 같은데…. 어린 나는 내가 물만 부으면 어떤 생명이 탄생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이를 눈 앞에서 꼭 보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그 ‘씨몽키’는 높으신 몸값이었다. 부화 패키지가 다 해서 한 30,000원 내외였던 것 같은데, 그때가 벌써 20년도 더 된 시절임을 생각하면 지금 체감 가격은 한 69,900원 정도 아니었을까?    


 매달 잡지에 실려서 내 시선을 잡아끌고 ‘아, 언젠가 한 번은 꼭 해 보고 싶다.’ 생각했던 씨몽키는 결국 집안 사정이 더 좋지 않아져서 기본 소비 외의 모든 지출을 줄여야 할 때, 엄마가 눈물을 머금고(?) 과학 잡지 구독을 취소하게 되며 나와의 거리가 멀어졌다. 모든 물욕(物慾)이 그렇듯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아니면 나도 그렇게까지는 염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렇게 한동안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잡은 채로 켜켜이 먼지만 쌓이며 잊혀져가던 씨몽키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났었다. 생활용품을 1,000원 ~ 5,000원에 판매하고 있는 한 대형 잡화점 구석에서 씨몽키를 발견한 순간, 너무나도 놀라서 “어! 이거!” 하고 반갑게 집어들며 가격을 보았더니,     


‘3,000원.’


적혀있는 가격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게 이렇게 쌌었나? 아니면 몸값이 낮아진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너무 커 버린 탓에 이 가격이 하찮게 느껴지는 건가? 나는 크고 있었는데 너는 그대로였니?    


이런 저런 의문이 든 채 씨몽키 상자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옆에서 같이 다른 물건을 구경하던 연인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왜? 사 보고 싶어?”    


“아니,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에는 되게 비쌌던 것 같은데….”    


말꼬리를 흐리며 상자를 내려놓으려고 하자, 옆에서 연인이 상자를 집어들었다.    


“내가 사 줄게. 미리 주는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해.”    


씨익 웃으며 씨몽키를 들고 씩씩하게 계산대로 나서는 연인을 뒤따라 걸었다. 곧 내 손에 어린 시절 한때나마 간절히 원했던 그 ‘씨몽키’가 쥐어졌다.    


“이따 집에 가서 해 볼 거지?”하고 옆에서 연인이 물어왔다.    


 그 순간, 나는 내 손에서 물만 부으면 생명이 살아난다는 사실에 조금 머뭇거렸다.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는 자기 뜻대로 오지 않지만, 막상 세상에서 하직할 때는 누구보다도 더 살고 싶은 원초적인 삶에 대한 욕망이 있지 않나? 그렇다면 이 씨몽키들 역시 비록 우리에겐 하찮게 보이는 단지 과학 실험 도구일지라도 내가 물만 부으면 그 씨몽키의 삶이 시작되고, 또 이후에는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지며 더 살기를 원할 거라는 생각에 ‘내가 물만 붓지 않으면, 알에서 깨어 부화했다가 생명을 잃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기본적인 감정의 기조가 우울하고 부정적이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고초(?)를 겪어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던 때라, 지나가는 중년들을 보며 ‘시간이 훌쩍 흘러버려 기억이 없는 채로 정신을 차려보니 저 나이대였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도 했었으니까.    


 앞서 말한 생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연인에게 말하며, 지금은 씨몽키를 부화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연인은    


“네가 준비가 되면, 그 씨몽키들이 생명이라는 축복을 받으며 힘차게 헤엄칠 수 있는 기회를 줘.”라고 하며 내 어깨를 다독여줬다.    


 그때의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연인과는 서로 바라보는 미래가 달라 이별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나 선물받은 그 씨몽키는 아직까지 내 책상 서랍에서 부화의 때를 기다리며 깊은 수면을 취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이 친구들을 세상에 내놓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전보다 삶의 고단함은 줄어들었지만 ‘무엇인가 생명을 받고 죽는 것을 내가 감히 관장(管掌)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며 따라와 다시금 그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단지 서랍 속 씨몽키 패키지를 만지작거리다 내려놓고 서랍을 닫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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