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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Dec 03. 2021

주먹구구식 별똥별.

별똥별.


밤 하늘에 수놓인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한 획을 그으며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별.


무척이나 보기 힘들기 때문에 이를 보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좀처럼 보기 힘든 것.


이 별똥별을 난 지난 달 말 회사 옥상에서 봤다.


항상 ‘밤 11시 혜성 비가 쏟아진다.’, ‘하늘을 수놓는 별똥별의 밤.’이라든가 하는 뉴스를 보고 밤늦게까지 목이 뻐근해져라 하늘만 쳐다보다가 허탕을 치기를 몇 번. 그 이후 ‘내 인생에서 별똥별을 보는 일은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관심 밖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 별똥별을 보려는 기대가 컸던 만큼 보지 못한 실망도 컸으니까.


당시 별똥별을 보려던 나는 간절한 소원을 빌기 위해서 그렇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든, 벼락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터무니없는 소원이었든 말이다. 그렇게 내 능력 밖의 소원을 밤하늘에 공허히 걸던 일을 몇 번, 이후는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랬던 별똥별을 갑자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뭔가를 생각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별똥별은 밤하늘에 포물선을 그렸다. 말 그대로 찰나(刹那)의 순간. 그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밤하늘이 회사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을 무렵 옥상에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며칠 뒤의 회사 행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어 이를 연습하고 있었다.


임원들이 모이는 큰 월례행사에서 15~20분간의 비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 발표를 준비하라는 과제가 팀에 주어졌다. 전문적인 내용의 발표는 아니었고 분위기는 교양 수업 같은 분위기이되 청중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내용의 발표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래. 사실 교양 수업이라는 것은 어떻게 들으면 가벼우면서도 또 얼마나 즐거운가. 대학 시절의 교양 분위기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임원이 모이는 월례행사의 객석은 대부분 50대의 남성들이 차지한다. 표정이 굳어지고 반응도 없는 분들이 대다수이다. 그런 자리에서 그렇게 가볍고 즐겁게 발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솔직히 말을 못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소규모 친목 모임에서나 그런 것이었고, 평소에 여러 사람들 앞에 서면 머릿속이 하얗게 될 정도로 나는 숫기가 없다. 그런데 발표라니? 그것도 아직 경력도 얼마 없는 내가 임원들 앞에서?


 ‘내 인생 마지막 발표가 언제였더라….’ 하며 대학교 다니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학생 때에도 몇 번의 발표 수업은 있었다만 그것도 학년이 낮았을 때의 이야기였고, 그나마 졸업반에 들어가고 나서는 무조건 온라인 강의나 교양으로 학점 때우기나 한 나머지 파워포인트 파일을 만들어 본 것도 최소 7~8년은 된 옛날(?) 얘기였다.


그나마도 했던 발표들은 전부 대학 동기들 또는 선후배들 앞에서 것들이었다.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는 막말처럼, 친숙한 얼굴들과 어차피 피차 내용도 모르는 전공수업 등의 발표는 부담이 덜 했다.


하지만 그런 발표에도 나는 2주 전부터 내용을 외워가며, 쉼표 하나하나 살려가며 또 문장의 끝마침까지 입에 달라붙을 정도로 정말 철저히 익혀가며 10분, 15분의 발표를 준비했다.


그 후 발표 당일에는, 남들 앞에 선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지금 목소리 톤은 어떤가. 당황해서 말이 빨라지는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입에 붙은 대로 남들 앞에 서서 무엇인가를 쭉 읊어 내려갔다.


손은 미친 듯이 떨려 단상을 잡고 있어야만 했고 평소에는 따뜻하다 못해 뜨끈하기까지 한 내 손은 하얗게 질린 사람의 그것보다 더하게 새하얗고 차가워졌다. 정말 그만큼 숫기가 부족하고 또 모자란 나였다.


그런 내가 임원들 앞에서 발표라니. 준비를 하면 전처럼 어떻게든 해낼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스트레스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목구멍이 포도청(捕盜廳)이라지 않는가. 회사에서 시키는 일은 해야 했고, 또 잘만 한다면 이렇게 능력을 증명해가는 기회는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팀장님의 달콤한 꾐에 넘어가 나는 그렇게 발표를 떠맡게 된 것이다.


별똥별을 만나던 날은 발표현장에서 내 몸이 떨릴 것을 감안하여,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일부러 떨어가면서 발표용 스크립트를 읊어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준비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준비하는 것이 성격인지라 다른 선택은 없었다.


가지고 올라온 보온 텀블러의 뜨거운 물이 미지근해질 무렵 즈음, 15분짜리 발표 스크립트를 두 번 정도 읊었을 즈음 갑자기 내 인생의 첫 별똥별을 마주한 것이다.


놀람도 잠시, 소원을 빌었어야 했다. 준비된 채로 만났다면 좋았을걸. 머릿속은 갑자기 엉키고 당장 뭘 빌어야할지도 모르겠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별똥별이 꼬리를 남기며 사라져가고 있는 순간, 나는 소원을 빌었다.


‘이번 발표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해 주세요.’


소원을 빌자마자 다시 밤하늘은 잠잠해졌다. 남아있던 꼬리가 말끔히 없어지기까지 채 0.1초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소원을 빌자마자 허탈함에 쓴 웃음이 나왔다. 겨우 ‘발표 성공’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소원이었다니. 갑자기 100억이 생기게 해 달라는 것도, 가족들의 행복과 건강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아닌 ‘발표 잘 하게 해 주세요.’라니.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웃다가 옥상을 내려왔다.


그날 밤은 참 입맛이 썼다. 제대로 된 소원을 빌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의 내가 답답했다. 왜 더 멀리 바라보는 소원을 빌지 못했을까? 왜 항상 눈앞에 닥친 일만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에 밤잠을 설쳐가며 본인을 미워했다.


사실 그날 밤의 나에게 가장 간절한 소원은 발표 성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성공을 위해서 초겨울 날씨에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 입술을 깨물어가면서 스크립트를 외우고 있던 스스로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왜 항상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만 사냐면서 나는 나를 자책했던 것이다.


소원을 빈 것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인지 이후는 무척 자신감이 생겼다. 반복되는 연습에 흐름은 점점 매끄러워졌고, 연습 중 실수를 하더라도 당일은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나를 채워갔다.


꾸준한 연습 덕분인지 별똥별 덕분인지는 몰라도 발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나는 생각했다. 별똥별에 소원을 비는 것은 어쩌면 본인의 소원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일 거라고. 그만큼 노력한 사람이 자신감을 갖고 본인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거라고. 별똥별은 그저 잠깐이나마 나타나 그런 사람을 응원해 주는 것이라고.


그치만 다음 번에는 꼭…. 로또 1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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