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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Nov 22. 2021

내 안의 포효. 하품.

요 며칠 격무(激務)에 시달리면서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아니면 집에 가서도 일 생각에 푹 쉬지 못한 탓인지 이른 오전부터 계속 하품이 났다.


이 하품이라는 것은 참 거추장스러워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늘어지게 하면 ‘아, 쟤는 한가하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고, 너무 자주 하게 되면 하품이 가진 전염성으로 인해 내 옆에서 잔뜩 긴장한 채 업무에 집중하던 다른 사람까지 맥이 탁 풀어지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뇌에서 산소가 부족하다고 보내는 신호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어서, 입을 꾹 다문 채로 양 볼에 힘을 잔뜩 주어가며 입을 닫은 채,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뇌를 잠깐씩 쉬어주고 있었다.


그 순간 ‘으아아아악!’하는 괴성과 함께 내 뒤 편에 앉아있는 과장님의 하품 소리가 났다. 직급도 직급인 데다 나이도 있는 만큼 누구 하나 눈치 볼 것 없이 크게 터져 나오는 하품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으레 저 나이대의 아저씨들은 저렇게 하품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던 한 분이 떠올랐다.


20대 중반, 한 기관에서 반년 정도 일했던 때가 있었다. 기관에서는 갑작스러운 운전기사님의 공백이 생겨 급하게 사람을 채용했는데, 60세가 훨씬 넘은 분께서 지원해왔었다. 별다른 후보가 없던 터였고 지원자의 업무관련 이력이 훌륭했던 터라 기관에서는 해당 지원자를 운전기사님으로 채용했다.


본인이 다니던 운수회사에서 은퇴하고 나서 이후 가정 부양을 위해 여기저기 직장을 찾아 떠돌다 우리 기관까지 온 기사님. 기사님은 20대 중반이던 나보다 늦게 우리 기관에 들어왔으나 기관장보다도 나이는 많은, 일명 ‘사연 있는’ 신참내기였다.


그러나 업무능력은 출중했다. 앞서 말한 훌륭한 이력이 45인승 버스를 20 넘게 운전한 것이라는 것은 기사님 자신 어떤 일을  왔는지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본인의 입을 통해 금방 알게 되었다. 그런 분에게 기관 공용 차량,  봤자 스타렉스였던  차들을 운전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떻게보면 기사님은 조직 내에서 최약자였다. 운전과 수행업무가 ‘잡무’로 취급받던 기관 내에서 기사님의 지위는 다소 낮았다. 나이는 최고령이지만 직급은 최하위로 취급받는 그런 불균형의 상황에서 기사님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직원들도 항상 존중하고 배려했으며 때로는 ‘해병 출신’임을 강조하며 일에 대한 열정도 보여주셨던 다소 거칠면서도 따뜻한 분이었다. 원치 않게 조직 내 피라미드 계층의 하위에 자리했지만, 기사님이 업무를 배우고 지역을 익히며 적응하는 데에는 채 한 달 이 걸리지 않았다.


기사님은 운전업무가 없을 때는 사무실에서 대기를 했다. 본인 말대로 ‘밖으로 쏘다니던’ 사람이 종종 사무실에만 앉아있으려니 고역이었을 것이다. 의자에 기대 조는 모습도 몇 번 보았다. 가끔 견딜 수 없는 무료함에 하품을 할 때 기사님은 ‘으아악!’ 하며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듯 우악스럽게 소리를 내곤 했다.


평소 기사님의 모습을 보고 기사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지만, 그런 하품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저렇게 되는 걸까?’ 하고 생각했었다. 조용히, 그리고 남들에게 피해가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교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으며(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라면 내 속(?)을 다 내보이는 그런 민망한 순간에 남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요즘에 들어서야 기사님이 내뱉던 것은 그저 단순한 하품이 아니었다고 느껴진다.


이 시대의 노년에 가까운 사람들 즉,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했으며 자식들은 가정을 꾸려 독립해 나가고 이제 집에는 배우자와 오직 단 둘만 남았을 무렵의 나이대의 어른들이 본인의 목청을 통해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어디가 있을까.


본인의 위용이 자자하던 직장에서는 이제 반갑지도 않은 손님이 됐을 뿐더러, 가정 내에서 위세를 떨치려고 해도 이제는 동반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버린 배우자에게는 의미도 없을 뿐이다.


기사님이 내뱉은 그건 일종의 외침이었다. 하품을 하던 순간에 터져나오는 ‘큰 소리’는 본인이 살아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소리이며, 아직까지도 전성기의 건재함을 가지고 있다고 알리고 싶은 일종의 포효(咆哮)였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요즘에서야 그때의 억척스럽고 거칠던 하품의 단말마가, 남들의 이목을 다 끌 정도로 조용한 사무실을 크게 울리던 그 하품이 그렇게까지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으며, 더러는 마음 깊이 공감이 되기도 했다.


여기저기 치이고 움츠러들어 살다가 가끔씩 터져나오는 인생의 피로감을 그렇게 큰 하품의 포효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고단한 몸과 마음을 달랠 곳이 없고, 아직까지 본인이 건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런 소리를 낼 곳 없이 밀리고 밀려와 억눌린 감정을 그 ‘하품’ 하던 때의 외침 한 마디로 승화해서 내뱉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보다는 더 어른에 가까워졌고, 더 나이를 먹은 나는 아직까지도 큰 소리로 포효하는 것은 조금 부끄럽지만, 조금씩 하품의 소리가 커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도 내 나름대로 치열한 일상 속에서 내 안의 야성이 살아있음에 대해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시나 아직까지는 큰 소리를 내서 주목받는 것은 조금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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