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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Nov 19. 2021

모아이 석상들이 불러온 엄마.

평소와 다름없는 점심이었다. 회사 근처 국숫집에 가서 팀원들과 자리를 잡았다. 예닐곱 평 남짓한 공간에 놓인 테이블은 총 5개. 우리 팀 사람 다섯이 두 테이블 자리를 잡고 나니 몇 테이블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주머니들, 그러니까 아주머니라기보다는 아주머니에서 할머니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나이대, 여덟 분이 들어오셨다.


손바닥만한 식당의 몇 안 되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근처 공업사에서 온 젊은 아저씨 둘, 그리고 지나가다 들른 것처럼 보이는 통신선 유지보수 아저씨 둘. 그리고 우리 팀원들과 일명 경계의 여사님(?)들. 방문객의 구성은 이렇게 단출했을뿐더러, 다른 테이블의 아저씨들과 우리 팀원들은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으니 뭔가 이야깃거리도 없던 마당에, 아주머니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데 취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조용한 식당에서 높은 톤의  무리가 내는 소리를 무시하기에는 내 귀가 다소 예민했다.


“… 이번에 OO 채널에서 하는 OO프로그램에서 우리 조카가 노래를 하는데, 이걸 네이버를 통해서 투표를 할 수 있대. 투표 좀 해 줘. 부탁 좀 할게.”


내가 여사님들의 대화에 빠져든 것은 한 여사님이 대화의 서두를 열었을 때였다. 아마 가까운 가족 중 누군가가 요즘 TV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연 프로그램 중 하나에 참여한 건지, 같이 온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었다.


“네이버에 들어가서 요거는 이렇게 누르면 되고, 이렇게 누르면 투표하는 데가 나오고, 으응. 그렇지. 그렇게 누르면 돼.”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열심히 코치해가며 아주머니는 투표방법을 알려주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플랫폼은 어르신과 아주머니의 경계에 있는 여사님들께는 퍽 어려운 모양이었는지 ‘이거 왜 안 되냐.’, ‘로그인은 어디서 하냐.’ 등등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아유, OO씨 아들이야?”

그 중 한 여사님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투표하는 곳까지 어떻게 들어갔는지, 열심히 다음 사람을 코칭중이던 아주머니께 물었다.


“아니, 조카라니까. 내 조카야. 우리 오빠 아들인데 원래 OO대학을 다니다가, 원래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었는데, 어디서 공연을 했고, 이번에는 TV에 나와서….”


여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조카의 자랑을 시작했다. 트인 말문은 마치 저수지의 열린 수문처럼 열심히 조카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준비했다는 둥, 원래부터 노래를 잘해서 가수가 꿈이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둥, 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왔으나 학업을 위해 마다했다는 둥…. 태초부터 읊어대는 조카의 연대기가 지금 이 자그마한 식당에 눈에 보이는 듯이 조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번 자랑을 시작한 여사님은 시킨 음식이 나올 때까지 이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창 본인이 조카 자랑에 몰두하는 동안 사람들은 이미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지가 오래였다. 같이 온 여덟 명 중에 실제 투표까지 실행한 사람은 두 명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긴 연대기는 비로소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며 끝을 보이는가 했으나, 그 여사님은 식사를 하면서도 조카에 대한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팀이 먼저 시킨 음식을 반이나 넘게 먹었을 때 즈음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할 말이 남았는지 마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교장선생님의 조회대 연설과 같은 느낌.


같이 있던 다른 여사님들은 곧 말을 잃었다. 스마트폰은 아예 본인들이 들고 다니는 작은 손가방에 집어넣어 버리고 음식에만 몰두한 채 자랑하는 여사님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식사에 빠져들었다. 애초부터 입이란 것은 오직 음식물 섭취를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처럼 여사님들의 구강은 음식을 흡입하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나에게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비슷비슷한 머리스타일과 비슷한 느낌의 옷차림을 한 여덟 명의 무리 중, 열심히 말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 이제는 미약한 반응조차 하지 않는 무생물 같은 나머지 일곱.


그 모습들이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내 퍽 우울해졌다.


그 여사님이 안쓰러웠나 싶은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자기 자식도 아닌 조카를 가지고 그렇게 열심히 홍보하는 것은 본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었으며, 그 이유가 가족 간의 유대감이든 잘난 조카가 본인 배경의 뒷받침이 되든 어쨌든 간에 홍보에 대한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 역시 각오했을 것이다.


그 여사님에 너무 감정이입했나? 만약 내가 뭔가를 저 여사님처럼 열심히 이야기하고 어필하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저렇게 미적지근하다면 난 말을 그치고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생각나기도 했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우리 어머니도 이제 할머니 쪽에 가까운 경계에 서 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저런 모임에 참여한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 저렇게 냉담한 반응을 짊어지는 사람이 되려나, 아니면 싸늘하게 식어있는 일곱 명 중에 하나가 되려나. 우리 엄마는 누구 앞에서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니까 일곱 명 중에 하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가족이 저렇게 반응 없는 사람들 속에서 열을 띠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조카는 자기 이모(또는 고모)가 저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본인을 열심히 홍보하고 다니는 것을 알까?


덧붙여 느낀 것은 여사님들이 구성한 조직의 유대감은 그렇게 깊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령 서로 정말 친한 사이였다면 사람들이 말문을 닫고 반응을 잃어가기 시작했을 때 즈음에는 누군가 나서서 열심히 떠들고 있는 자기 친구에게 핀잔이라도 먹여 그만두게 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말리는 사람 하나 없이 한 명의 여사님의 조카 자랑을 배경으로 밑반찬을 리필해 먹거나 냉수를 뜨러 가는 다른 여사님들의 모습에 나는 ‘저 조직은 일종의 목적에 의한 개더링(gathering)이다. 친밀한 유대의 역사를 가진 모임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도 여느 무딘 중년의 아저씨처럼 ‘거, 자기 아들도 아니면서 그냥 적당히 하고 식사나 하시지.’하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도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사님이 처한 상황이 퍽 불편했던 것은 아마 다른 모임 구성원들의 표정을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창 말하는 여사님은 구성원들과 옆쪽으로 앉아서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나는 다른 구성원들이 조카자랑을 들으며 얼굴에 지은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 나이대 즈음에 처한 경계의 여사님들은 대개는 입꼬리가 내려가 있고, 또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표정은 많이 굳어서 마치 모아이 석상(石像)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표정을 지은 여러명의 여사님들이 한 명의 긴 연설을 들으며 침묵하고 나머지 하나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이런 공감이 부재한 테이블의 상황에 마음이 좀 불편했는지도.


자랑을 쉬지 않는 여사님도 조금 너무했다는 느낌은 있었다. 본인이 모임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혼자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남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최소한 누군가와 대화를 이루고자 했을 때 화자는 발화를 듣는 대상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야 하지 않나? 여사님의 조카 자랑은 대화라기보다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에 가까웠다. 그런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약 15분(체감상은 거의 한 시간)동안 쉬지 않고 본인 가족 자랑에 심취한 여사님의 근성은 또한 얼마나 위대한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긴 했으나, 그 풍경은 결국 명확히 판단되지 않는 내 마음의 무엇인가를 촉발시켜 그 우울은 하루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타인들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본인의 이야기만 펼치고 있는. 공감과 소통의 부재가 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우울을 끄집어내어 한가득 펼쳐놓은 것 같았다.


또 엄마 생각이 났다. 일이 끝났을 무렵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함없는 목소리로 항상 즐겁게 전화를 받아 주는 우리 엄마. 집에는 언제 오냐, 오면 뭐를 먹으러 가자느니, 선물로 뭐가 들어왔다느니 신이 나서 내가 집에 가고 싶도록 꼬시는 우리 엄마. 자식이 그렇게도 좋을까 싶다가, 문득 ‘우리 엄마도 여느 모임에 나가서 그렇게 열심히 나를 어필하고 자랑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이 떠올랐다. 자랑할 것도 없는 자식인데, 조그마한 것도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말이다.


오늘의 점심은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집에 오랫동안 가지 않은 나에게 엄마를 떠오르게 하는 촉매(觸媒)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번 달 말에는 집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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