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중정원 Nov 11. 2021

안녕하세요. 젊지 않은 사람입니다.

평소처럼 직원들과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OO씨, 주말에 머리 했나봐? 어디서 했어?”

입에 무말랭이 반찬을 집어넣으며 김 대리가 날 보며 말했다.


“머리요? 딱히 정해놓고 다니질 않아서요…. 그 OO동 근처 있잖아요? 거기 미용실에서 했어요. 그 젊은 사람들 많이 다니는 데 있잖아요.”


대답을 하고 나서 곱씹어보니 말이 이상했다. 젊은 사람? 그럼 나는 젊은 사람이 아닌가? 젊은 사람이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나온 게 어색해서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까,


“젊은 사람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늙어가는 거래요.”


라고 옆에서 같이 밥을 먹던, 말 그대로 ‘젊은(또는 어린)’ 신입 직원이 한 마디 덧붙였다.


후식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도 방금 전의 그 어색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나이든 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 계기도 없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나이가 많은 편도 아니거니와 스스로가 끊임없이 뭔가 배우려고 하고 있으며 꾸준히 젊은(?) 세대의 문화를 향유하려고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BTS 멤버의 이름을 한 명이라도 대 보라고 한 친구의 말에 말문이 막혔던 경험 이후부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이 넘어버린 나이에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나를 요즘 ‘젊은 사람들’과 구분 짓고 있었나보다.


매해 연말마다 ‘내년은 OO띠의 해.’ ‘내년은 OO년.’ 왁자하게 떠벌리지만 막상 이는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도 내가 맞이하는 하루하루는 항상 반복되던 것처럼 진행되니까. 그러나 오늘처럼 일상 속에서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느껴질 때는 내가 나와 분리되는 기분이 든다.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를 것 없는 ‘나’이고, 그 어제의 나는 그저께의 나와 다르지 않은 ‘나’이며, 그렇게 거듭거듭 올라가다보면 내가 ‘젊다’고 칭하는 나이대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 것이 없는데, 어느 순간 무수히 많은 벽이 생겨서 나라는 하나의 존재를 여러 칸막이로 나누는 느낌이랄까?


오늘의 발언은 일종의 표지판이었다. 국도를 타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 보이는 표지판에 ‘안녕히 가십시오. OO시.’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어서오십시오. 여기서부터 OO시.’라고 적혀 있는 친절한 안내 멘트처럼, ‘젊은 사람’이라는 단어는 내 스스로 젊은 나와 나이든 나를 구분하는 경계의 역할을 했다. 그 사실이 한 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약간은 쓰기도 해서 한참을 곱씹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어려지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 미숙했던 시절의 마음과 생각으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몸에 냄새가 배는 것과도 같아서 스며드는 중에는 본인은 알 수 없다가도 그 장소를 벗어나 다른 환경에 놓였을 때 즈음에나 스스로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고 문득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다만 이번 사건이 준 충격은 다소 커서, 나는 ‘아, 고향에 내려와서 너무 나이 많은 사람들하고만 지내서 그런가보다. 그 분들이 이해할 만한 표현을 찾다가 그런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만들었다. 그래. 아직까지는 나도 ‘젊은 사람’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코스모스에 대한 감사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