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 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 달려가더니” - 다니엘서 8장 5절 ~ 6절
지금부터 쓸 글은 성경의 배경사 그것도 신약 성경의 시공간적 배경이 되는 역사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인물과 사건을 위주로 글을 진행할 것이며 많은 부분에서 생략을 해야하기 때문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 제국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젊은 나이에 그리스 세계를 통일하고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며 대 제국을 세운 이가 있으니 사람들은 그를 알렉산더 대왕 Alexander the Great이라 불렀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왕이었으며 필레포스 2세의 아들이었다.
기원전 357년경에 태어난 그는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교육을 받은 제자이기도 했다. 그의 나이 스물. 아버지가 암살 당하자 마케도니아 곧 그리스 북부의 왕으로 추대된다. 고대 사회에서는 권력의 공백이 생기면 혼란의 상황 속 군대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알렉산더에겐 그런 군사력이 있었다.
테베를 중심으로 고린도 동맹을 맺은 그리스 도시들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본보기로 테베를 초토화시키고 포로 6천명을 사살한다. 이에따라 민주 국가인 아테네 역시 생존을 위해 스스로 무릎을 꿇으며 마침내 그의 그리스 세계 통일의 과업이 이뤄진다. 하지만 그곳은 알렉산더의 그릇을 담기엔 너무 작았던가. 이후
대왕은 그리스를 통일하고 밖의 세계로 눈을 돌리며 “페르시아 원정”의 막을 올린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상대로 첫 승리를 올린 이 전투는 그라니쿠스 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전쟁이며, 훗날 헬레니즘의 시발점이라 부른다. 이후 다리우스 3세와 맞붙은 이소스 전투에서는 3:1이라는 불리한 전투비에도 불구하고 그의 탁월한 전술로 승리를 거둔다.
알렉산더는 해안선을 타고 남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로부터의 보급이 육로보다 배를 통해 받는게 안전했기 때문이다. 이 해안선은 성경에서 말하는 가나안 즉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을 잇는 곡창 지대로 “레반트”라 불렀다. 알렉산더는 병참 확보를 위해 이집트 까지 남하 하였으며 이집트의 최고신 ‘아문라의 신전에서 제사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이집트는 자신들의 종교를 존중해주는 알렉산더를 크게 반기며 “파라오”라 부르기 시작한다.
이로써 그는 이집트 출신 장교들의 충성을 받아냄과 동시에 그 땅에서의 징병에 대한 정당성 까지 확보한다. 또한 파라오라 불리게된 이 사건은 먼 훗날 로마 황제 신격화 역시 이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신격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황제의 신격화. 이는 태양신 파라오와 제우스 신이 곧 알렉산더임을 의미하며 황제 신격화의 중요한 예가 된다.
이집트의 환영을 받은 알렉산더는 이집트 최고신인 아문을 위한 제사를 드리며 파라오로 추대된다. 이로써 그는 이집트의 출신의 부하들의 충성심을 가져가기 위한 정통성을 얻는다.
이는 성경의 비유에서도 알 수 있는 헬라 제국의 등장과 연관이 있다.
프로퀴네시스는 황제를 알현할때 절을 하거나 손에 입을 맞추는 동방의 풍습이었다. 페르시아를 점령한 알렉산더는 내부의 혼란을 누르고 충성심을 높이기 위한 방책으로 박트리아 출신 록산나라는 여인과 결혼한다.
시리아와 이집트를 손에 넣고서 마침내 알렉산더는 북동쪽을 향해 진군 한다.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승리하는 시점에는 이미 모든 승세가 알렉산더에게 기울어버린 이후였다. 왕궁에서 나고자란 다리우스 3세는 이미 어려서부터 숫한 전투 속에서 살아온 알렉산더에게 승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벨론, 수사, 페르세폴리스까지 차례로 그의 수중에 들어가며, 히다스페스 전투를 마지막으로 바벨론에 돌아오기까지 알렉산더의 진군은 멈추지 않고 인도 펀자부 지역까지 이르게 된다.
그라니코스 전투로부터 10년. 그의 나이 33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기 까지 알렉산더는 역사상 유례 없던 세계 제국을 건설하며 그 짧고도 위대한 삶을 마감한다.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가 33세로 추정되는데 이 역시 의미 있는 비교가 가능하다.
온세상의 왕이라 불린 알렉산더와 예수. 그러나 한쪽은 창과 칼을 앞세운 군사적 힘으로 다른 한쪽은 사랑이란 고차원적 윤리를 가르치며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가치를 추구했다. 바벨론의 황궁에서 최후를 맞이하며 그의 제국은 디아도코스들에 의해 분열된다.
예수의 사후 그의 12 제자들과 초대 교회를 통해 기독교는 세계에 퍼지게 되며, 로마의 핍박 아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간다.
알렉산더의 헬라제국과 분열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헬레니즘이란 거대한 사상은 신약 성경의 형성과 전승 그리고 신약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된다.
알렉산더 사후 그의 제국은 급격하게 분열한다. 후사를 정하지 못한 제국은 디아도코스라 불리는 휘하 장군들에 의해 4개의 왕조로 갈라지게 된다.
여기서 신약 성경에 영향을 미친 왕조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시리아의 셀류코스 왕조 두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