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어른이 된 제자와의 이야기
한동안 방황을 했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찾아 헤매던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SNS를 통해 연락이 닿아 오랜만에 대화를 하다가 현재 어떻게 지내냐는 말이 나왔고 나는 그날 5시간에 걸친 녹음으로 녹초가 되어있을 때였다.
"세상에, 고생하셨네요."
비아냥도 아니고 비꼼도 아니라 이 시기를 보내는 정말 내가 큰 결심을 해서 녹음을 하고 왔다는 걸 알고라도 있는지 제자는 진심 어린 위로를 내게 건넸다.
"맞아 오늘만큼은 나도 고생했다 할래."
다른 이들이 특히 눈앞에 있는 옛 제자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나는 쉽게 내게 고생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괜찮아'라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살았으니까. 참 웃긴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는 건데, 사람들은 내가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 게 내가 연기를 잘한 건지 그만큼 내게 관심이 없었던 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습관이었다.
습관처럼 고생했다고 말하고, 습관처럼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날은 둘 다 진심을 꺼내보려고 했다. 오늘만큼은 나도...
"그럼요."
"하루하루 공허하지 않게 보낸 거 만으로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쉽지 않잖아요."
참 따뜻한 어른으로 자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도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나아지진 못했었다. 고민이 많고 아픔도 많은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더 마음이 갔고 때로는 정말 형처럼 이 아이를 챙겨주고 지켜봐 주곤 했다.
서로에 대한 응원에 진심이 담길 때, 사람의 마음 한편에선 예쁜 꽃망울이 드디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사람을 향해 사랑을 전할 수 있을 때가 되었단 걸 알았는지 이제 그 향기를 세상을 향해 펼칠 준비를 한다. 그 아름다운 꽃잎이 마침내 주변을 향해 뻗어 나갈 때 세상엔 사랑이 더해진다.
오늘만큼은 당신도 고생했다 말할 수 있길. 오늘만큼은 힘들었다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럴 수 있는 곳이 없고 그럴 사람도 없다면 내게로 와 힘들었다 말해줘도 괜찮다. 그걸 하는 게 나의 일이고 수고하고 짐 진자 들을 돌보는 게 나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 너의 노력도 보답받을 거야."
요즘 반수를 시작했다는 그 친구에게 내가 전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와 응원이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하고서 나는 힘내라는 말도 기운 내라는 말도 잘 쓰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내겐 그런 게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좋은 일, 웃을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기길 바라"라고 말한다. 어떤 일에 웃을지 알 수 없고, 어떤 일이 그대에게 좋은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는 말을 한다. 그대의 선택에 달렸고 그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노력해보지 않은 날들이 후회돼서 열심히 살아보는 걸 목표로 시작했어요."
참 어른스럽고 마음이 깊은 친구였는데, 못 본사가 생각이 더욱 깊어져 있었다. 노력의 보답에 앞서 노력 자체에 가치를 두고서 그저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정말 어려운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충실하게 열심히 채워 사는 일이다. 자신을 포기하고 세상을 포기한 아픔 속에서 이러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노력하기로 했다. 요즘 노력이란 말을 쓰기가 많이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우린 노력의 가치에 스스로 집중해보기로 했다. 다른 무엇이 아닌 자신의 영혼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우린 서로를 응원하고 자신의 길로 다시 떠나기로 했다.
"감사해요 선생님"
오히려 내가 더 고맙고 또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 많은 제자들과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바치는 말이다. 나도 오늘만큼 고생했다 말할 수 있길. 그런 최선을 다한 시간을 보내 충만함 속에서 마무리하는 좋은 하루가 있길 바란다.